일하는 연구원 가까이에 미용실이 두 곳 있다. 처음 다닌 곳은 밖에서 보아도 깨끗한 미용실이다. 어느 날 그곳 문이 닫혀서 다른 곳을 들렀다. 값은 두 곳 다 5천원이다. 그런데 먼저 다니던 곳이 한결 쾌적했다. 그럼에도 덜 친절하고 솜씨도 다소 떨어지는 미용실을 달마다 가고 있다. 처음 찾았을 때 일하고 있는 엄마 치마를 흔들며 훌쩍이던 어린 딸 때문이다. 딸 아이에게 눈 부라리던 미용사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을 개탄했다. 그래서다. 늘 다녔던 미용실로 가고 싶은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미용사의 한숨을, 어린 딸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서다.
입으로만 양극화 해소하는 정권, 꼴 보기 싫다
투표일을 앞두고 들렀을 때 미용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누굴 찍을 것인가를. 난 반문했다. 서슴없이 이명박이란 답이 돌아왔다. 까닭도 분명했다. 노무현 정권 아래서 너무 살기 힘들단다. 그러면서도 말끝마다 양극화가 문제라는 노무현이 꼴 보기 싫단다. 부자인 이명박이 집권하면 잘 살게 해줄 거 같단다. 이명박이 BBK는 자신이 설립했다고 주장한 동영상을 보았느냐고 묻자 얼굴이 굳어지면서 내게 항의하듯 따졌다.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손님은 거짓말 안하세요?”
본디 잘 모르는 이에게 말 건네지 않는 성격이지만 차분하게 되물었다. 이명박 공약을 짚어 보면 가난한 사람을 잘 살게 해주지 못할 것 같다고. 미용사는 그럼 누가 있느냐고 물었다. 부익부빈익빈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후보로는 가령 민주노동당이 있다고 답했다. 미용사의 답은 간단했다.
“권영길은 당선 가능성이 없잖아요.”
대구에 강연을 갔을 때다. 민심을 살필 겸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60대 택시기사는 단연 이명박이었다. 이유는 같았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뒀는데 먹고 살기 힘들단다. 공부 잘해 늘 자랑이던 아들은 서울대를 졸업했다. 아들 학비를 위해 딸은 고등학교만 보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취업을 하지 않고 있단다. 서울대 나오지 않은 아들 친구들은 취업해 있는데 정작 아들은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며 한숨 쉬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었다. 이명박이 가난한 사람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할까를.
이명박 압승은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
늙은 택시기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도 노무현 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가난한 사람을 참으로 잘 살게 해줄 정당은 진보정당 아니냐고 떠보았다. 택시기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대답은 같았다.
“민주노동당은 당선 가능성이 없잖아요.”
이명박을 줄곧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도 그의 당선을, 압승을 예감한 까닭이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다수 민중을 고통에 잠기게 한, 신자유주의에 앞장서면서 말로만 진보를 외쳤던 정권에 대한 냉엄한 심판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심판의 열매가 왜 신자유주의를 반대해온 진보정당에 가지 않았을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3%, 창조한국당은 5.8%에 그쳤다. 실망스러운 표다. 하지만 절망할 일은 결코 아니다.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을 따름이다. 자칫 표가 분산되면 현 정권이 연장될까 우려했을 따름이다.
바로 그 점에서 이명박의 압승은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문제는 진보세력이 그 심판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고백하거니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정책을 공부하고 글을 써온 먹물의 한 사람으로서 대선 결과 앞에 참담한 까닭이다.
민중과 더불어 아래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조직할 때다
그렇다, 국민의 저 엄정한 심판 앞에서 진보세력 또한 비껴나 있지 않다. 대구택시기사와 서울미용사가 참으로 갈망하는 정치인은 이명박이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진보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오는 정치인, 표를 모아주면 당선 가능성이 보이는 정치인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고통 받는 민중은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했을 따름이다. 언죽번죽 진보를 자처해온 노무현 정권 못지않게 진보세력이, 이 땅의 진정한 민주세력이, 그 심판 앞에서 겸손하게 성찰해야 할 절실한 까닭이다. 고통 받는 민중 앞에 더 성실하고 더 미더운 세력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민중과 더불어 아래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조직할 때다. (손석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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