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노인들

녹색세상 2007. 12. 2. 20:13
 

  젊은이들이 하는 행동이 가끔 눈에 거슬리는 걸 보니 나도 나이 먹어가는 징조가 하나 둘 나타나는 것 같다.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어느 왕의 무덤에 적힌 상형문자를 해석해 보니 ‘요즘 젊은 것들은 안 된다’라는 내용이라고 하니 예나지금이나 ‘젊은 사람 탓’은 늘 있었던 일이건만 무슨 새로운 것이라도 되는 양 떠드는 것은 ‘꼰대 티’를 낸다는 소리 듣기 딱 이다.


  지하철 환승역이 생기면서 대구의 새로운 중심가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반월당 지하 분수대가 언제부터인지 은빛물결로 장관을 이루는 ‘미팅장소’가 되기 시작했다. 자주변 식당이나 찻집에 가면 일이년 전에는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자연스레 보곤 한다. 다방과 달리 자기가 주문한 것을 직접 가져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는 이유는 마땅히 갈만한 곳이 인근에 없기도 하지만 차 한잔 마시고 몇 시간 얘기하기 좋아 이용을 하는 것 같다. 약속 시간이 남아 시간 보내거나, 새로운 짝과 데이트 할 때는 딱 좋은 것 같다. 저녁 무렵이면 서서히 젊은이들이나 주변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장인들로 물갈이되긴 하지만 낮에는 대부분 노인들 차지다.

 

▲손자뻘 되는 대학생들과 같이 식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노인들. 돈 아끼려 대학구내 식당을 이용하면서 줄서기가 몸에 배어있다.



  나이 들었다고 어디가지 말란 법은 없으니 뭐라 해서는 안 되지만 주위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목소리 높여’ 세상 걱정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한두 푼이 아쉬운 나이인데 커피숍에라도 올 정도면 차림새도 괜찮고, 예전에 잘 나갔는지 ‘좋았던 시절’의 얘기는 거의 안 빠지고 나오는 ‘기본 안주’다. 열을 내는 분들에게 ‘공중도덕’ 지키라고 했다가는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란 소리가 돌아올까 싶어 못 들은 척 한다. 너무 심하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다나듯’이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다.


  버릇과 범절을 그렇게도 강조하는 연배이건만 정작 당사자들은 지키지 않는지 모르겠다. 세상 변하는 게 그렇게도 억울한지 억지로 붙잡으려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나이 육십이면 이순(耳順)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도 곧 이해를 한다’고 한 공자 말씀은 옛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의술이 발달해 평균 구명이 길어졌다고 하지만 칠순이 넘으면 인생황혼 길에 접어든 셈인데 젊은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뒤에서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법 하건만 잘 안 되는가 보다.


  하기야 사십대 중반에도 ‘젊은애들 버르장머리 없다’며 거품 무는 친구 녀석도 있었으니 노인들 탓할 것만은 아니다. 한국전쟁을 겪고 베트남전에 참전한 세대들이 마음의 상처가 깊었을 텐데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라 그 병을 치료할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보면 불쌍한 세대이기도 하다. 달리 불혹이 아니라 ‘사십이 넘으면 주위의 어떤 조언이나 남의 말에 전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라던 후배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는 더 싫어하고 자신이 가진 습관과 몸에 배인 것을 고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늙어서 저렇게 ‘세상걱정’에 열 내거나 핏대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잘 될지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꼰대 티’ 덜 내는 연습 수시로 해야겠다. 그래야 찬밥 신세 안 될 테니까. 자식 같은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 애쓰는 어른들이 내 주위에 많이 계셔 다행인 것 같다. 티 안내고 늙어갔으면 하는 게 노후를 향한 조그만 바램이고 예행연습이다. 그렇게 살다가 칠십이 넘은 어느 날 ‘잠자리에 들어 영원히 잔다’면 이 보다 더 좋은 복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 갈 수 있도록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