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고 ×같아도 ‘죽 쑤어 개주지 않겠다’고 한 목수정 연구원의 글이 떠오른다. 레디앙에 ‘프랑스남자와 결혼 안하고 살기’란 제목으로 연재물을 올릴 정도로 자신이 하고 하는 일과 선택에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해 부러웠다. 아마 기간활동가들 중에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대학다니면서 남들이 짱돌 던질 때 ‘연애만 했다’고 면접에서 말할 정도로 ‘변혁운동’과는 거리 멀었지만 민주노동당의 문화정책이 ‘마음에 쏙’ 들어 정책연구원을 하겠다고 들어왔다고 한다.
▲산에 오르는 것은 기쁨이 있기 때문이듯 사는 것도 나름대로 즐겁고 좋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육아휴가도 1년 보내줄 정도로 ‘깨인 곳’으로 알았는데 운동 오래한 인간들의 권위적이고 ‘싸가지 없는’ 짓거리에 질려 많은 연구원들이 당을 떠났지만 ‘내가 가면 어느 인간 좋은 일 시키느냐’며 끝까지 버티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임금 체불에 노동조합의 대화조차 거부하는 대표와 사무총장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졸지에 ‘민주노동당노동조합’ 사무국장이란 짐도 지게 된 모양이다. ‘ 든 사물은 변화 발전한다’는 철학의 기본 명제처럼 자신을 변하게 할 정도로 열려 있는 모습이 참 부럽다.
살아가면서 자주 느끼지만 무엇을 하던 우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원론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허물은 전혀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언제나 남의 문제만 지적하고, 남에게는 가혹 하리 만치 냉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그럴 때는 더 ‘목불인견’이다. ‘저런 꼴 안 보려면 떠나자’는 못난 생각을 수 없이 되풀이 했다. 무슨 팔자 고칠 일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돈 쓰고, 시간 내어 몸으로 때워 가면서 ‘이게 무슨 꼴인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젠 그런 생각 접기로 했다. 떠나거나 다른 곳으로 이적하면 다른 사람들 역시 피해를 입을 테니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하니 버티기로 작정했다.
곰곰이 돌이켜 보면 어느 놈 좋으라고 떠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신앙생활 잘 하다가 목사나 장로 같은 오래된 교인들로부터 상처받아 떠나는 교인들에게 ‘사람보지 말고 예수만 보라보라’는 말을 쉽게 한다. 쉽게 뱉을 수 없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하곤 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치울 수 없는 걸림돌인 사람과 얽히면 견디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조직이 건강하고 역동성을 가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난 끝까지 남아서 버티기로 했다. 실컷 죽 쑤어 개 줄 수는 없으니까. 우리가 같이 나누어 먹으려고 고생해서 만든 것을 엉뚱한데 갖다 마친다면 너무 억울하고 심장 상한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말처럼 남아서 끈질기게 버티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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