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인간답고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존엄사’ 보장해야 합니다.

녹색세상 2007. 11. 26. 21:42
 

한국사회 ‘근대 100년의 금기 깨기’에 권영길이 함께하겠습니다. 


1. 목사 등 ‘종교인 소득세 부과’, 종교단체 회계투명성 제고

2. 동성커플과 이성 동거커플 등을 위한 ‘동반자등록법’ 도입

3. 인간답고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존엄사’ 보장되어야



권영길의 ‘금기 깨기’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안락사’ 논쟁과 관련해서 인간이 인간답고 품위 있게 죽을 권리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삶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그 끝 역시 존엄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습니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에 대한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안락사가 아닌, 통증 완화치료를 통한 ‘존엄사’ 필요


존엄사는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환자 본인과 가족들에게 보장하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자력으로 호흡이 불가능한 환자라도 인공호흡기 등에 의지하면 생명은 연장시킬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생명유지 장치를 사용하는 경우를 ‘연명치료’라고 합니다.


연명 치료를 하지 않고, 수분과 영양공급, 통증완화 등 ‘완화 치료’만으로 환자가 고통 없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 바로 존엄사입니다. ‘연명치료 중단’이 ‘치료 중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연명치료를 중지하더라도 통증관리나 생리기능 유지 등의 완화의료 시술을 계속해 자연적인 임종을 환자의 뜻에 따라 존엄스럽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존엄사는 안락사와는 다릅니다. 안락사는 독극물 등 약물을 투여하거나 자살하는 방법 등을 이용해 환자가 원래 수명보다 일찍 사망에 이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적극적 안락사를 법제화 한 국가도 있지만, 안락사는 우리 국민의 정서와 생명의 존엄함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저 권영길 역시 반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인권이야 말로 저 권영길이 삶속에서 실천해온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존엄사를 보장하는 것 역시 인명의 존엄함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의학적 노력을 다했을 경우에도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고통스런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것 역시 인간의 권리일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존엄사를 몸소 실천


로마 교황청 역시 안락사는 반대하지만, 존엄사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지난 1980년 5월5일 발표한 ‘안락사에 관한 선언문’을 통해 치료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치료중단을 인정한바 있습니다.


교황청은 ‘의료시행의 정당한 부분’과 관련, “모든 경우에 가능한 모든 의약을 사용할 필요가 있겠는가”를 스스로 반문하며 이렇게 답을 내렸습니다. “모든 치료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 무익하고 부담스러운 연명만을 위한 치료를 양심에 의해서 거부하는 결정이 허용된다. 이러한 경우 의사들은 환자를 돕지 못한다고 뉘우칠 이유가 없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2005년 죽음을 맞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호흡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수술이 끝난 뒤 다시 병원에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임종 당시 의사 3명이 있었으나 생명을 연장하려는 어떤 의학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존엄사를 원할 경우 우리는 촉탁살인죄나 자살방조죄가 됩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환자와 가족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다릅니다. 우리의 형법은 연명치료 중단을 252조의 촉탁살인죄나 자살방조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의 형벌에 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997년 보라매 병원에서 보호자의 요구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었다가 2명의 의사가 자살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환자보호자가 연명 치료 중단을 요구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 같은 한국의 법제도는 안락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가톨릭의 입장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해마다 6만5천명의 말기 암환자가 사망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대학병원을 비롯한 3차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맞고 있습니다. 3차 의료기관에 입원한 말기 암환자의 경우 생에 마지막 순간까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에서 임종을 맡고 있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으며, 고통을 연장해야 하며, 그 과정을 지켜보는 가족들은 정신적 고통과 함께 막대한 의료비로 인한 고통을 함께 겪어야 합니다.


집에서 임종을 맡는 환자들의 경우는 통증치료 약품이 의료용 마약으로 규제를 받기 때문에, ‘완화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고통스런 죽음을 맡게 됩니다.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평화로우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물론, 국민인식 역시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의 제도는 그 인식과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존엄사법 제정을 위한 국민적 논의와 정치권의 논의를 제안합니다.


이제는 우리 국민의 인식에 맞는 우리의 제도를 손을 봐야 할 때가 됐습니다. 우선 임종과 품위 있는 죽음을 정의하고, 임종진료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환자와 가족, 의료진간의 정확한 정보 공유가 이뤄진 상태에서, 가족과 환자의 뜻이 정확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심폐소생술 금지 요청서 마련, 가족 등에 의한 의사결정 대리인 결정 절차 마련,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 제시가 필요할 것입니다.


연명치료의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 역시 의사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것이 아니라, 의과대학과 전문의 수련과정에서 임종환자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과 유렵 등 수 많은 나라에서 존엄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존엄사를 보장하기가지 오랜 논의를 하며 국민적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도 이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남은 생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덜어 지난 삶을 축복할 여유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고통스런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있을 때 그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필요합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활발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논의와 정치권의 논의가 촉발되길 기대합니다. (권영길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