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삼성제국 해체’,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녹색세상 2007. 11. 13. 15:40
 

이회창은 삼성 구원투수?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전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등의 폭로로 세상이 연일 들썩이고 있다. 지난 6일 참여연대와 민변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아직까지 눈치만 살피고 있다. ‘떡값 검사’ 탓인지 검찰이 제 살을 도려내는 일에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에 특검제 도입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때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무소속 대선 출마 소식이 전해졌다. 이회창 씨가 급부상하며 대선판 전체가 요동치는 가운데 파괴력이 점쳐지던 삼성 이슈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조짐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이회창 씨. 과거 차떼기 오명까지 뒤집어쓰며 받아 챙긴 삼성 비자금의 약효가 이제야 발휘된 것일까. 단숨에 파란을 일으킨 이회창 씨는 삼성에 쏟아지던 비난의 화살을 대신 받는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 같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회창 씨와 삼성을 썩은 생선의 머리와 꼬리로 묶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이회창 씨 출마의 파괴력 자체가 커서 상대적으로 삼성 이슈가 잠식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삼성 이슈의 불씨를 최대한 살리고, 이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흐지부지 끝내버리면 반부패 투명사회 건설은 물론이고, 재벌개혁과 경제 대안 논의는 더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 대구 삼성금융플라자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원.


삼성의 왜곡된 소유 지분 구조에 주목해야


그런데 삼성의 고질적인 부패와 비리, 그리고 반사회적 특성을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한 수사와 처벌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금융실명제 등 부실한 법제도의 개선 또한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로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그룹 계열사내 지분은 고작 0.31%, 이재용 전무 등 일가를 포함한 지분율은 0.81%로 전체 재벌그룹 가운데 총수 일가 지분율이 가장 낮은 경우다. 그리고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이건희 회장은 황제 경영, 제왕적 총수의 대표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에 발표한 ‘2007년 대규모 기업집단 소유지분구조’에 따르면 출자총액제한제도 대상(자산 10조원 이상) 11개 그룹의 의결권 승수는 평균 7.54배(4월1일 기준)를 기록했다. 의결권 승수는 그룹 총수 일가가 계열사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지분이 실제 소유한 지분의 몇 배 인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높을수록 소유지배 구조 왜곡 정도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의결권 승수가 7.54배라는 것은 1주를 갖고 7.54주의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인데, 삼성그룹 의결권 승수는 지난해 6.91배에서 8.10배로 크게 높아졌다.


턱없이 낮은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지배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그 구조를 온존시키려고 하니까 자연히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로비가 횡행하고 비자금 조성 등을 비롯한 부패와 비리가 끼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황제경영, 족벌경영, 세습경영과 엇물린 부패와 비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은 이처럼 왜곡된 소유 지분 구조의 온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문제가 드러나면 ‘도마뱀 꼬리 자르기’만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부패와 비리의 몸통은 한 번도 제대로 수사된 적이 없고, 왜곡된 소유지분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커녕 막강한 자본 권력의 힘 앞에 모두 머리를 조아리기 일쑤다.


한편,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은 비자금 조성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것을 덮기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그린워시(Green-wash)’ 전략을 써왔다. 이는 이전에 회계장부를 분식하던 것을 이제는 사회공헌과 같은 고상한 방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한데, 이는 사회공헌이란 이름으로 치부를 가리는 ‘윤리분식’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삼성그룹은 작년에 8,000억원을 내고 면죄부를 받으려 했다.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수천억원의 재산을 마지못해 기부하는 기업이 존재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지구상 어디에 또 있을까? 이런 문제를 발생시키는 재벌 체제를 그대로 두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순환출자 금지와 지배구조개선 등으로 표현되는 재벌개혁은 사실 기업들이 줄곧 외쳐대는 국제기준에 맞추자는 주장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등이 주장하는 후진적인 재벌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연기금 사회책임투자 확대로 사회적 통제 모색해야


그렇지만 근본적인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관련 법제도 개선만으로도 부족하다. 사회적 압력 수단을 사용하여 대기업들에게 그 규모와 영향력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사실 삼성 등의 대기업들은 그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국민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국민들이 개입하고 감시할 수 있는 통로는 없다. 문제의 해법은 재벌을 위한 경제가 아닌 국민 모두의 경제를 위해 국민들 스스로가 이에 개입하고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3%, GDP의 17%를 차지할 만큼 국내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삼성그룹, 그 중에서도 시가총액 1위(2007년 10월 26일 종가기준 78조 3631억원)로 가장 덩치가 큰 삼성전자를 아예 국민기업으로 만드는 것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유력한 수단으로 연기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기금을 언급하면 여기저기서 볼 맨 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연기금 구조개혁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여기선 언급하지 않는다. 일단 분명한 것은 가입자들의 불만 해소와 더불어 사회연대의 성격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기금 구조개혁을 전제하고 연기금 활용의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골자는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를 확대하는 방법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지배구조적 측면을 평가하고 이것이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 자체로도 큰 의미는 있지만, 이러한 기준은 장기투자 수익성 위주로 공익성이 부분적으로 결합된 한계를 갖고 있다.


이미 주식투자 전문가들도 사회책임투자 펀드 가입을 권하는 상황이다. 국내 상장회사 100곳의 사회적, 환경적 책임과 지배구조(ESG) 측면을 분석해본 결과, 우수한 기업군(A+등급)보다 불량한 기업군(D등급)의 수익률 변동성(Volatility)이 2배 이상 높아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투자에 보다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다. 이미 주식시장의 큰손이 된 국민연금도 이미 사회책임투자 펀드에 3000억원을 투자해 올해 6월까지 주식형 펀드 평균수익률(25.7%)보다 높은 29.1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2007년 7월 말 현재 212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은 세계 연금 5위 규모를 자랑하는데, 현재 추세라면 국민연금 기금은 앞으로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지난 2003년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경상가격을 기준으로 2012년 400조 원, 2035년 1715조 원, 2043년 2600조 원, 2054년 5820조 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계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3월 현재 '시가총액 100대 기업 투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100대 기업 중 절반이 넘는 54개 기업에서 국민연금이 5대 주주 이상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그리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앞으로 주식투자의 비중을 높일 방침인데, 기금운용위원회가 내놓은 중기 자산운용안에 따르면, 2012년까지 주식투자 비중이 30%로 증가할 예정이다. 또한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만든 것을 계기로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2006년 국민연금은 487회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1878건의 상정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삼성 등의 재벌기업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회책임투자 개념의 확장을 전제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가운데 사회책임투자의 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사회책임투자 개념의 확장이란, 환경적, 사회적, 지배구조적 측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업에 투자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공공부문을 포함하여 국민적 영향력이 막대한 기업들의 주식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해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해당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지배 구조 재편은 투명한 경영은 물론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조절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국민 경제 전체의 내실화와 좋은 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다.


‘연기금 사회주의’ 논란은 난센스다


이 같은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는 금민 한국사회당 대선 후보의 핵심 정책이기도 한데,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에서는 이와 비슷한 발상을 염두에 두고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손사래를 치며 예전부터 방어막을 쳐왔다. 하긴 노무현 정권을 아예 친북좌파라 규정하는 사람들이 이를 두고 ‘연기금 사회주의’라 부르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을 놓고 ‘연기금 사회주의’(pension fund socialism)라 칭하는 것은 완전한 난센스다. 1976년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처음 제기한 이 ‘연기금 사회주의’론은 미국 노동자들의 연기금을 통한 주식소유 비율이 급증하면서 미국이 조만간 노동자가 생산수단 대부분을 소유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예측에서 나왔던 말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등이 이러한 주장을 계속하려면, 우선 미국과의 국교 단절부터 주장하고 볼 일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편,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는 연기금 본래의 사회적 성격을 좀 더 강화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연기금은 본래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때문에 국민들이 스스로의 돈을 국민 경제 전체의 건실화를 위해 쓰자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 아니라 현실 가능하고 바람직한 대안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점화된 삼성 사태, 이제 더 이상 김 변호사와 몇몇 시민단체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 부패 척결로 그칠 것이 아니라 재벌 경제를 국민 경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만이 이번 삼성 사태의 본질적 해법이다. (최광은/사회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