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삼성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찾아가자 삼성이 뒤집어졌다. 이학수 실장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6번이나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심지어 한밤중에 그의 전처 집에 찾아가 대문을 두드렸다. 김 변호사는 돈 때문이 아니라, 삼성의 터무니없는 과욕과 온갖 부조리를 막기 위해 양심선언을 했다고 고백했다.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50)은 회사 전용 제트기로 문상을 다닐 만큼 회사에서 인정받았다. 회사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에 참석하고, 이건희 회장 집에서 열리는 초호화 파티에도 초대받았다. S급(혼자서 1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삼성의 핵심 인재)으로 분류되어 10억원 대 연봉을 받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는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2004년 6월, 김 변호사는 승진 제의를 뿌리치고 사표를 던졌다. 김 변호사는 삼성을 ‘빌려 입은,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표현했다. 김 변호사가 기자회견과 각종 언론을 통해 심경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지금도 ‘왜’라는 질문이 그를 따라다닌다.
▲ 김용철 변호사에게 보낸 이학수 부회장 문자 메시지. 시사 IN 안희태
왜 삼성에서 나왔나?
김 변호사는 ‘시사IN’과 인터뷰에서 “이건희 회장을 신격화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사내 분위기가 참기 힘들었다. 똑똑한 사람들을 바보 노릇 하게 만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퇴직했다”라고 말했다. 임원들은 이건희 회장과 회의할 때는 화장실에 안 가려고 와인이나 국물을 먹지 않는 불문율을 지켰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심지어 6시간 동안 이건희 회장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말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김 변호사가 무능해서 밀려났다고 주장한다. 김 변호사도 이를 적극 부인하지 않는다.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난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 김인주 사장이 중수부장에게 수사에 응하겠다고 해놓고 도피했다. 나는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실장을 모시는 처지여서 수사에 응해야 한다. 삼성 수뇌부가 도피했다고 브리핑을 하면 이건희 회장을 소환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나는 실무에서 배제됐다. 김인주 사장은 내 부하 직원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고, 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왜 퇴사 후 3년이나 지나서 고백하는가?
김 변호사가 삼성에서 퇴직한 것은 2004년 6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은 2007년 10월29일이다. 사제단 고문 김병상 몬시뇰은 “삼성에서 잘 먹고 잘살다가 이제 와서 삼성이 나쁘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라고 꾸짖었다. 삼성을 나온 김 변호사는 법무법인 서정에 들어갔다. 그는 2005년 9월부터 한겨레 기획위원을 맡았는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에 관한 기사는 가급적 피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과 등져서 이로울 게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양심선언이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라는 것도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5월25일 한겨레 1면에 ‘에버랜드 사건 구조본이 주도했다’는 기사가 나오자, 중앙일보의 한 간부 기자가 “가볍게 듣지 마라. 다른 기업들에게도 반기업적인 변호사가 근무하는 로펌이라고 알려 영업을 못하게 하겠다”라고 ‘서정’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 김 변호사는 떠밀려 휴직한다. 두 달 뒤 복귀하려고 했지만 로펌에서 삼성 이학수 실장의 각서를 받아오라고 해 좌절했다고 김 변호사는 주장한다. 지난 9월부터 김씨는 한겨레ㆍ조선일보ㆍMBCㆍKBS 등을 찾았지만 보도한 곳은 없었다. 지난 10월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기자 회견으로 비로소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신 상태가 불안한 사람인가?
삼성은 김 변호사의 정신 상태가 불안한 것 같다고 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0월22일 기자가 처음 만난 김 변호사는 불안해 보였다. 김 변호사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사제단의 한 신부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자신의 로펌에서 쫓겨난 김 변호사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기거하며 고추·상추 등을 가꾸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 신세를 지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자신을 감시ㆍ미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한 다음 날 삼성에서 전화를 걸어와 확인했고, 한겨레 친구가 양평 집에 다녀간 것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김 변호사가 10월19일 사제단 신부를 만난 것을 삼성 측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김 변호사는 “내가 사제단에 몸을 의탁하지 않았거나,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삼성이 벌써 강수를 썼을 것이다. 삼성에는 이런 일을 처리하는 팀이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비자금 관리하던 사람이 돈 사고를 쳤을 때는 삼성 측이 사립 탐정을 붙이기도 했다. 기자는 이 인물의 신원을 확인했다. 정신이 불안하다는 삼성의 말에 김 변호사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물타기 하는 것은 삼성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살인에 이용된 피 묻은 칼을 찾아줬더니 인간성이 안 좋고, 정신이 불안하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검찰과 ‘서정’에서 김 변호사와 함께 근무한 권성동 변호사는 “용철이 형이 자존심이 강해서 그렇지 꽉 막힌 사람도 아니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심선언은 돈 때문인가?
삼성은 김 변호사에게 7년 동안 연봉과 스톡옵션으로 102억원을 지불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한때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2002년 김 변호사의 아들이 결혼했다. 법무팀장 시절이었다. 당시 축의금으로 이건희 회장은 100만원, 이재용 전무는 100만원, 이학수 실장은 500만원을 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계열사 사장 경조사에 보통 30만원을 보낸다고 하니 김 변호사가 좋은 대우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회장은 국무위원 경조사에는 1000만원을 낸다고 한다.
▲ 김 변호사에게 보낸 이종진 상무의 문자 메시지. 시사 IN 안희태
같은 날 밤 10시께 이학수 실장과 김인주 사장은 잠실에 있는 김 변호사 전처의 집을 방문해, 1시간가량 문을 두드리다 갔다. 10월20일에도 이학수 실장은 직접 나서서 김 변호사를 회유하려고 했다. 10월20~21일 이학수 실장은 김 변호사에게 여섯 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김 변호사 우리 서로 좋았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나는 김 변호사와 이렇게 될 만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나서 뭐든지 풀어보면 서로 유익할 것입니다. 긍정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 이학수 실장의 메시지는 구체적이었다. 김 변호사가 마음먹기만 하면 뭐든 들어줄 거라고 했다.
돈이 목표라면 김 변호사가 의사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이학수 실장ㆍ김인주 사장과의 담판을 마다했을 리 없다. 폭로 직전에는 협상력이 가장 크지만, 일단 폭로하면 ‘딜’하기가 어렵다. 카드를 보여주고 도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사실 이때까지 사제단은 김 변호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함세웅 신부는 “사제의 처지에서는 삼성으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아 김 변호사와 가정이 행복해진다면 나무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에서 (내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면 돈을 주겠다고 했고, 로펌을 차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퇴직 후 한 번도 삼성 사람을 만난 적이 없고, 바란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른바 ‘고문료’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김 변호사에게 퇴직 후에도 3년 동안 예우 차원에서 7억2000만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지난 9월 김 변호사의 예우 기간이 만료되자, 돈을 달라는 취지에서 회사를 협박하고 있다는 것이 삼성 측 주장이다. 상당수 언론에 이 내용이 실렸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삼성이 고문 기간을 연장하자고 제의했지만 뿌리쳤다”라고 말했다. 양심선언을 결심한 것에 대해 김 변호사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권력 시스템을 영구히 가져가기 위해 삼성은 터무니없는 과욕을 부리고 있다. 삼성의 온갖 부조리와 그것이 국가 사회 시스템을 오염시키는 것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 IN/주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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