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삼성, 임직원 명의 도용해 불법 비자금 조성”

녹색세상 2007. 10. 30. 12:50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삼성과 무관한 돈” 


  삼성이 전 임원의 명의를 도용해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이를 이용해 거액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비자금이 최대 수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혹과 함께 이 비자금이 정치, 사법, 행정부 등 사회 지도층을 대상으로 한 로비 행각에 이용됐다는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 이 같은 의혹은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전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 의해 제기돼 이를 둘러싼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김용철 변호사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 삼성에 재직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은 29일 오전 서울 동대문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용철 전 법무팀장이 삼성에 있는 동안 알게 모르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공범자로서의 죄책감을 느끼며 우리 사제들을 찾아왔다”며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 동기를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김 변호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29일 오전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조성에 관한 양심고백 내용을 발표했다.

 

  “입사 때 제출한 주민등록증 복사 본 이용해 계좌 개설해”

 

  “3년 전에 퇴직한 김용철 전 법무팀장의 계좌에는 본인도 모르는 50억 원대의 현금과 주식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불법으로 조성된 비자금이다. 김 변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처럼 본인 동의 없이 개설돼 비자금 조성에 이용되고 있는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는 1000여 개에 이른다.”

 

  사제단의 주장에 따르면 삼성은 최근까지 김용철 변호사의 동의없이 은행, 증권사 등에 계좌를 개설한 뒤, 이를 이용해 비자금을 관리하거나 자금 세탁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계좌를 만드는 데 동의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 계좌를 본인도 조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제단은 “이 계좌들은 삼성 입사 때 제출한 주민등록증 복사본과 자기들이 임의로 만든 도장을 이용해 수시로 신규 통장을 개설하고, 해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제단은 “김 변호사는 지난 7월 주민등록증을 분실한 뒤 8월 초 재발급 받았고 이후 신규 개설한 계좌는 과거의 주민등록증 복사본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계좌 개설과 유지는 은행의 공모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본인도 조회가 불가능한 계좌가 수두룩 있어”


  사제단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김 변호사의 이자소득명세서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우리은행, 굿모닝신한증권 등에 개설된 계좌에 대한 4200여 만원 상당의 소득세가 적혀있다. 그러나 이 중 어떤 계좌는 본인의 동의 없이 개설됐으며 심지어 본인의 계좌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사제단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지난 10월 19일 우리은행 ○○지점에서 2개의 본인 명의 계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 중 한 계좌의 예치 금액은 50억 원대에 이른다. 그러나 이 계좌는 보안계좌로 분류돼 계좌 번호 조회가 불가능했다. 또 다른 계좌는 거래 내역 조회가 불가능했다. 이 두 계좌는 5일 뒤인 24일 다시 조회를 했을 때는 계좌 존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지난 8월 27일 개설된 우리은행 통장에는 개설 당일 17억 원이 입금된 뒤 다음날인 28일 삼성국공채신 매수 자금으로 인출된 내역이 있다. 또 지난 2004년 10월 잔고가 확인된 신한굿모닝증권 계좌에는 삼성전자 주식 6071주(당시 시가 약 27억 원)가 예치돼 있었다.

 

  “추가 공개할 사실 더 있다”

 

  사제단은 “이렇게 조성되는 비자금은 각 계열사에서 갹출하고 있으며, 심지어 적자를 내고 있는 기업들에게도 일정 금액을 할당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각 계열사는 정상적인 경영과 회계 처리가 어려울 정도”라고 주장했다. 또 “비자금은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총선 등 각종 선거의 불법 자금으로 제공됨으로써 우리 정치를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있다”며 “검찰은 이 계좌에 들어있는 자금을 포함한 삼성그룹 비자금 전모에 대한 수사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사제단은 “이외에도 추가로 공개할 사실이 있다”며 “이 사태를 수용해가는 삼성의 태도와 검찰의 노력을 지켜보면서 추가 발표 및 고소고발 여부가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사제단 측은 “우리는 종교, 학계, 문화예술, 언론, 노동자, 농민 등 모든 뜻있는 사회단체들과 함께 연대하는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삼성과 무관한 개인 돈 계좌”

 

  한편 삼성 측은 김 변호사의 폭로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삼성 관계자는 “내부 조사 결과 김 변호사 차명계좌에 50억원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돈은 삼성그룹의 회사 자금이나 오너 일가의 돈이 아니라 다른 개인의 돈인 것으로 밝혀졌다”며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재직할 당시 동료에게 차명계좌를 빌려주고, 이 동료는 이 계좌로 한 재력가의 돈을 위탁받아 관리해왔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의 삼성 시절 동료가 자신의 돈이 아닌 제3자의 돈을 넣어둘 계좌가 필요했고, 김 변호사가 이 동료의 제안을 받아들여 계좌를 빌려줬다는, 즉 삼성과 관련 없는 ‘개인 돈’이라는 설명이다. 삼성 측은 “이 돈을 관리한 재무팀 소속 임원의 신분을 공개해도 되는지 법률적 검토 중”이라고 언급하며 ‘돈 주인’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 변호사 측은 그러나 “계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희생양을 내세우는 상투적인 수법을 쓰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는 반응이다. 그러면서 결국 돈의 출처를 밝혀야 할 일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삼성도 검찰이 수사하면 돈 주인이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당장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것인지 관심이다. (프레시안/강이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