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김용철 변호사 양심고백 전문

녹색세상 2007. 11. 7. 21:47
 

- 삼성 사장단ㆍ고위 임원들, 차명 계좌 갖고 있다.

-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조직, 재경부ㆍ국세청이 더 커

 

▲삼성 비자금 비리에 대한 의혹을 처음으로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저는 죄인으로서 속죄하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글이 유서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고, 되찾고 싶은 양심에 부끄럼 없이 고백할 것을 맹세합니다. 다만, 저로 이해 상처받을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죄송할 뿐입니다. 저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선천적인 심장병으로 공놀이를 하거나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심전도 검사를 받지 못해 3년 1개월 동안 군복무를 했습니다.


검사 시절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한 제 친동생과 만취 상태에서 폭력을 행사한 처남을 구속토록 해서 저는 친가는 물론 처가 형제들까지 의절하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검사의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천지검ㆍ부산지검ㆍ서울지검 특수부를 거치면서 수사를 잘하는 검사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재산을 찾다 쌍용 김석원 회장이 집에 보관하고 있는 비자금을 찾아냈더니 청와대는 수사를 막았습니다. 제가 의지를 꺾지 않아 결국 검찰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변호사 업계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돈을 주고 사건을 따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삼성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망하지 않고 월급 꼬박꼬박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아들 대학 등록금은 빚 안 얻고 보냈으면 하는 가난한 검사의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성에 들어간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삼성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사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대신에 삼성은 제게 범죄를 명했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매수·회유하는 불법 로비는 모든 임원의 기본적 책무였습니다. 저는 검찰을 비롯해 법조계 인물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구조조정본부 안에서 검찰 간부 수십 명을 관리하고 나머지는 60여 개 계열사가 나누어 관리합니다. 설·추석·여름휴가 등 1년에 3회, 소위 떡값이라는 불법 로비자금을 500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돌립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억 원을 전달하라고 지시하기도 합니다. 범죄행위의 공범이라는 죄의식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현직에 있는 최고위급 검사 가운데 삼성의 불법 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은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밝혀야 할 공적인 기회가 오길 희망합니다. 숨김없이 고백하겠습니다.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조직이었습니다. 이해관계가 맞물린 재경부·국세청 등은 규모가 더 큽니다.


돈의 출처는 각 계열사에서 조성한 비자금입니다. 심지어 대형 부실을 안고 있는 만성적자의 회사에서도 수십억 원씩의 비자금을 만들었습니다. 조성된 비자금은 임직원 명의로 차명 운용됩니다. 삼성 출신인사들이 재산이 많은 것은 대부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월급쟁이가 수백, 수천억 원의 재산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삼성의 사장단, 고위임원, 구조본의 임원, 재무·인사 등 핵심 보직의 임원 및 간부급 사원 중 일부가 차명계좌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자금 계좌를 가진 삼성 임원들의 명단도 일부 갖고 있습니다. 명백히 금융실명제 위반, 사문서 위조, 조세포탈 등의 범죄입니다. 하지만, 삼성에서는 차명계좌의 존재가 승진의 징표이자 조직이 자신을 믿는다는 일종의 훈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자금 계좌가 만들어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공적 기관에서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힐 기회를 갖길 희망합니다.


대선자금 수사와 에버랜드 편법 증여에 관해 모든 증거와 진술을 조작했습니다. 돈과 힘으로 신성한 법조를 오염시켰습니다. 저도 그 일에 관여했습니다. 명백한 범죄였습니다. 법무팀장을 맡았던 제가 중심이 되어 저질렀습니다. 공범으로서 제가 처벌을 받아야 할 순간이 되었습니다. 삼성은 모든 간부가 삼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건희 회장을 위해서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괴로웠습니다. 삼성을 위해 검찰이 움직이고, 국정원이 움직이고, 청와대가 움직이고, 모든 언론기관이 움직이며 실시간 정보보고를 했습니다. 심지어 삼성에 가장 비판적인 시민단체마저 회의가 끝나자마자 회의록이 삼성에게 보내졌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성과 등지고서는 이 사회 황량한 뒷골목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을 것이라는 주변의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제가 일간지에 칼럼을 쓰면서도, 삼성 이야기는 피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삼성 기사가 나올 때마다, 저를 의심하고 압박하고, 미행했습니다. 사실 저에 대한 감시는 퇴사 전부터 이뤄졌습니다. 그러더니 삼성 인사가 나서 제가 일군 로펌에서 내쫓았고, 사회에서 고립시켰습니다. 심지어 삼성은 인생 말년을 아내와 손잡고 산책하면서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마저 앗아갔습니다.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에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외면했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낭떠러지 앞에 선 절망 속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님들께서 저의 뜻을 받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결국, 여기에서 이런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고, 괴로웠습니다. 조직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욕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재벌이 사법체계를, 국가 기관을,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저의 죄를 고개 숙여 사죄합니다.


                           2007년 11월5일 김 용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