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미리 때리기’의 몇 가지 오류
권영길 후보 선출 이후 민주노동당 일각에서 문국현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전례 없는 전술 방향이다. 군소후보가 군소후보를 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이해가 가기는 한다. 우선 문국현과 권영길은 상당한 부분에서 지지층이 겹친다. 내 주변에서도 민주노동당 당원이지만 문국현이 범여권으로 가지 않는다면 권영길 대신 문국현을 찍겠다는 소리를 간혹 듣는다.
▲ 공약을 설명하는 문국현 후보.(사진=뉴시스)
군소 후보끼리 다툼
지난 2002년 당시 노무현과 지지층이 겹치면서 엄청난 피해의식에 시달렸던 전례도 있다. 또 다시 그 때의 악몽을 되살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장래의 후환을 없애기 위해 미리 문국현 때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문국현 ‘미리 때리기’는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대중의 관심도가 낮은, 작은 후보가 1, 2위를 다투는 큰 후보 대신 자기 옆의 또 다른 군소후보를 주 표적으로 삼았을 경우 사람들이 볼 때는 정말 우습게 보인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것을 두고 대중은 도토리 키 재기라고 한다. 옹졸한 느낌을 준다.
두 번째, 진보정당은 현실 득표력 보다는 ‘득표 잠재력’을 중시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득표 잠재력은 미래를 생각하는 진보정당에겐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진보정당은 크게 3단계의 발전과정을 밟는다. 비판세력→견제세력→대안세력의 3단계를 밟는 것이다.
여기서 본격적인 대안세력으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현실득표 보다는 ‘득표 잠재력’의 상승이 중요하다. (민주노동당이 전혀 집권 가능성이 없는 불임 진보정당이라고 보는 이유는 득표 잠재력의 성장 추이가 완전히 꺾였기 때문이다)
만약 지지층이 겹친다고 겹치는 상대를 ‘때리기’에 나선다면 오히려 이것은 진보 진영의 전체 떡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 겹치는 지지층 자체를 비난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반 한나라당 전선 자체가 크게 약화된 이유는 한나라당 지지율이 50%를 넘는 것과 관련이 깊다. 한나라당을 반대한다는 것은 50%이상의 그 지지층을 반대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현실 득표력과 잠재 득표력
이것이 현실 득표 이전에 득표 잠재력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전략의 기본관점에서 보면 문국현 미리 때리기는 ‘누워서 침 뱉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상대 것을 빼앗아야 내 것이 늘어난다는 사고는 매우 ‘폐쇄적 사고’이다. 이런 사고 모형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한다. 우리가 현실득표 보다 득표 잠재력을 더 중시한다면 상대를 키워줌으로써 오히려 나의 떡도 커지고 모두의 몫이 함께 늘어나는 이른바 시너지 효과에 대해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문국현의 기본 정책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승리21 시절부터 해왔던 정책방향과 사실상 일치한다는 점이다. 문국현은 이른바 4조 2교대를 통해 기존 노동자에게 더 많은 여가를 주고 교육을 늘림으로써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동시에 불량을 줄여 생산성을 높인 모델의 성공적인 창시자다. 이것은 그동안 민주노동당이 주장해온 노동시간 감축과 일자리 나누기에 의한 고용확대의 전형적인 성공적인 사례이다. 민주노동당이 말로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일자리 나누기를 실제로 구현해 낸 경험이 있는 것이다.
물론 유한킴벌리 모형은 ‘불량’의 축소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큰 거대 장치산업에 국한된 모델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이러한 한계가 이모형 자체를 배격하는 이유일 수는 없다. 오히려 유한 킴벌리 모형은 현대 자동차 같은 거대 장치 산업에서 시도해 볼 만한 모델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당의 정책방향으로 수용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미리 때리기’에 나서는 것은 실로 옹색한 전술방향이 아닐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문국현 욕을 한다고 사람들이 ‘아 그렇구나..’ 하며 다시 민주노동당 쪽으로 넘어올 것을 기대한다면 상당한 오산이다. 이는 전체 득표 잠재력을 오히려 갉아먹을 것이다.
물론 문국현에 대해 전혀 비판의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그의 언행은 부전승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의 최종결선에 나서는 상황을 전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문국현에 대한 비판은 비판의 여지가 확실한 상황에서 제기 되어도 늦지 않다. 단지 지지층이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미래의 화근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어린애를 죽이려고 무림의 고수들이 이리저리 날뛰는 옛날 중국영화를 생각나게 해서는 안 된다. (레디앙/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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