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지에게.
제가 주제 넘는 소리를 한 번 하려합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고 충분히 이해하리만 믿음이 있기 때문이고요.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회의를 하는 게 당연하죠. 그러기에 일찍 온 저는 주제넘게 이×× 동지에게 ‘회의 좀 당겨서 하면 안 되느냐’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던지기도 했고요. '회의 합시다'란 말을 하는 순간 냉각 기류가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윤희용이의 과민 반응이었을까요? ‘차갑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습니다. 운×산 물 맑은 곳에서 ‘사실 중심보다 관계중심의 대화’ 강좌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나를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에게 결정적으로 실수한 게 ‘관계중심’의 문제 해결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아이들 엄마와 갈등을 겪으면서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경험이 많은 활동가인 김×× 동지가 ‘회의합시다’란 말보다 ‘시간이 되었으니 일단 진행하고 늦게 온 분들에게 보충 설명하면 어떻겠느냐’는 조금 부드러운 말을 꺼냈다면 분위기가 확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회의 도중에 상근 기간이 짧은 모 동지가 간과하기 쉬운 점을 지적해 주신 것은 당무를 꿰뚫고 있는 사람의 예리한 통찰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우리 민주노동당에 관심이 많은 후배의 말이 요즘 자주 머리에 떠오르곤 한답니다. “형님, 오래도록 운동만 한 사람들은 외날 칼을 쥐고 있고, 사회생활을 하는 당활동가들은 양날 검을 잡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잘 아시겠지만 일본도ㆍ한국검이라고 부르죠. 외날 칼은 마구 휘둘러도 자신이 그 칼에 다칠 확률은 낮고, 양날검을 잘 사용하면 휘두르는 족족 적의 목을 벨 수 있죠. 단, 그 칼날 중 하나가 언제든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위험성이 늘 존재하고요.
우리 활동가들이 잘 아는 오×× 목사로 부터 들은 얘기가 떠오르네요. 새들이 나무에 앉을 때 그 속에 어떤 것이 있는지 일일이 따지지 않고 그냥 편히 쉴만하다는 느낌이 올 때 갈 뿐이라고. 느낌이 먼저 와야 우리에게 올 것이고, 와야 다음 얘기가 되죠. ‘진보란 좀 어려워야 한다’는 홍세화 선생의 말도 있지만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란 선이 먼저 그이면 모든 것이 도루묵일 수밖에 없겠죠. 나 역시 허점투성이지만 가끔 만나는 학교 동기들과 벗들을 통해 ‘당신들이기 보기에 어떠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곤 합니다.
주제넘게 말이 길어지고 말았군요. 아무리 삶이 빡빡하다 할지라도 조금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을 지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건강하시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많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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