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또 눈물을 흘린 40대 후반 아저씨....

녹색세상 2007. 9. 3. 00:06
   

  억울한 죽음을 당하거나 나 보다 젊은 사람이 열심히 살다 죽어 문상을 가면 옆에 있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구슬프게 운다.  ‘왜 그리 우느냐’고 묻는 사람이 간혹 있긴 하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걸 말릴 재주는 없다. 재작년으로 기억하는데 성주에서 여성 40대 초반의 여성 농민 한 분이 ‘쌀 개방만은 안 된다’고 절규하며 음독자살을 했다. 도청 앞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을 했는데 같은 성주에 사는 윤금순 여성농민회장의 조사는 슬픔에 젖어 있던 나를 마침내 울리고 말았다. ‘주옥아.....’ 하며 절규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흐르던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같이 간 사람이 “에이구 영감, 또 우네”라며 핀잔을 줬지만 눈물을 막을 길이 없어 실컷 울었다.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모습이 담긴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온 후배가 눈물을 흘렸다는 말에 가면 왕창 울 것 같아 안 가고 버티다 오랜만에 교회를 갖다 오후에 극장에 갔다. 안 울어야지 하며 온갖 잡념을 떠 올리면 버텼는데 계엄군이 시민들을 두들겨 패는 장면부터 이미 내 눈은 젖고 말았다. 왜 그리 슬프고 가슴이 저렸든지..... 80년 5월 광주를 아는 세대로서 가슴이 메어졌다. 늦게 목사 안수를 받고 개척교회를 하는 후배는 교회 학생들과 같이 가서 봤다고 한다. 나오는데 아이들 대부분의 눈이 부어 있었는데 같이 빵을 먹으면서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군인들이 광주시민 죽인 게 맞느냐”기에 “더 참혹했다. 그렇게 사람을 죽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지금까지 떵떵 거리고 산다”고 했더니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눈물을 흘릴 줄 안다는 것은 큰 축복인 것 같다. 남의 아픔을 보고도 함께 아파하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감정이 메마른 껍데기만 사람이 아니고 무엇인가? 40대 후반이 되어도 눈물을 흘릴 줄 아니 살아가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작년 여름 청년시절 같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 확장 운동을 함께 하던 후배가 간암으로 투병하다 죽어 문상을 갔는데 마침 그 날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나온 오랜 벗인 동지가 후배의 죽음에 대성통곡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뜨거운 가슴이 살아있는 그 사람다운 모습이라 가슴이 저렸다.


  서생처럼 생긴 외모와는 달리 싸움닭처럼 눈알을 부라리는 인간이 우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 주위 사람들이 더러 있다. 작년 평택에 군병력이 진입했을 때 80년 광주의 악몽이 떠 올라 멀쩡하게 있던 인간이 갑자기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리 아파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냥 눈물이 흘려 내렸다. 가슴에 메어지는 것을 어찌할 길이 없어 그냥 울었을 뿐인데..... 철학에서 '사물의 양면성'을 말하듯이 사람에게도 냉철한 면과 눈물 흘리는 뜨거운 감정이 있는 게 당연한데 의아해 하는 그들이 오히려 이상하건만.


  민중과 함께 하고, 소외된 비정규직 투쟁을 하고 진보운동을 한다는 사람 중에 감정이 메마른 사람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기쁘면 같이 웃고, 슬프면 함께 우는 것이 당연하건만 그런 것을 보지 못하니 같이 있는 나로서는 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누가 뭐라고 하던 슬프면 울고, 기쁘면 신나게 같이 웃으며 살자, 가슴에 묻어 두면 병 되니까. 슬플 때는 누구보다 더 피눈물을 쏟으며 울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감정이 살아있고, 뜨거운 가슴이 있는 것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