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우리의 변화와 대중과 소통하기-2

녹색세상 2007. 7. 23. 22:43
 

철이 변하면 당연히 바꿔 입는 옷

 

  계절이 변하면 옷을 바꿔 입는다. 옷 입는 감각이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멋과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수시로 바꿔입는 경우도 있어 유행에 너무 뒤떨어진 옷을 고집하면 '둔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 정도야 얼마든지 봐줄 수 있다. 형편이 여의치 못해 한 두벌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 편한대로 입는 사람도 많으니까. 문제는 몇 번의 계절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바꿔 입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정말 엄청나게 변했다.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는 수시로 소통이 가능하고, 투기자본은 지구를 수시로 돌아다니가 먹이감이 보이면 바로 달려들어 사냥을 하고 도망가 버린다. 10년전 우리가 당한 외환위기가 바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세월에 ‘하늘 천 따 지’ 타령이나 하고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버지 바로 위 큰아버지가 이런 분인데 한글세대인 우리에게 걸핏하면 한자를 들이대어 '이것 아느냐'고 한자 몇 줄 아는 것을 자랑하곤 했다. 몇 년간 차곡차곡 저축한(?) 화를 어느 명절에 터뜨려 버렸다. “큰아버지, 요즘은 한자보다 영어 모르면 무식한 놈 취급당하는데 동생한테 물어 보시라”고 한 방 쏘아 붙이자 고개를 끄덕이는 사촌동생을 보더니 그 길로 조금 조용해 졌다. 생활한복 입는 것을 몇 년째 가만있다가 어느 설에 ‘너 돈이 없나, 왜 이런 옷 입느냐’고 하기에 정월 초하루에 한 바탕할 수는 없어 “왜 우리 것을 좋아하는지”를 A4용지 열장 정도로 문서를 작성해 보냈더니 그 길로 우리들에 대한 간섭은 안녕이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듯이 색깔이 고우니 보기도 좋다.....


 분위기 전환을 위한 조그만 시도.....

 

  말의 방향이 조금 어긋난 것 같다. 40대 이상의 기간활동가들 중에 이런 뒤떨어진 감각을 가진 사람은 없는지 되돌아 봤으면 한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얇은 이불을 사러 서문시장 침구류 전문골목을 갔다. ‘심부름 온 모습’을 한 탓인지 바로 조금 짙은 보라색을 권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사 보지 않은 색상이라 머뭇거리자 “분위기 있는 색깔이니 여자들이 좋아한다”기에 난생 처음으로 모험을 했다. 얼마 후 “이왕이면 매트레스도 분위기 있는 것으로 골라 달라”고 했더니 짙은 분홍색상을 몇 개를 골라주기에 그 가게에 있는 4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봐 ‘많이 찍는 것’을 샀다. 앞치마도 때 별로 안 타는 무난한 색상을 벗어나 빨간 무늬가 있는 것을 골랐다. 나로서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다. 이 사실을 오랜만에 자리를 같이 한 여성 동지에게 말했더니 “선배, 신혼집 차릴 일 있수”라기에 “나도 분위기 좀 바꾸려 한다”며 한 바탕 웃었다.


  ▲신혼 때도 없었던 난생 처음 산 고운 빛깔의 이부자리.....


  그렇다, 청록색이 편안하고 무난하기에 그런 색상 위주의 침구류를 많이 골랐다. 이불도 그저 무난한 색상으로 샀고. 한 때 실내건축으로 밥벌이 할 때는 분위기 있는 색상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곤 했으나 어느 날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생활로 바뀌고 말았다. 깔끔을 뜨는 성격 탓에 옷걸이에는 철 따라 잘 다린 남방과 바지가 일주일 입을 정도가 걸려 있지만 어디까지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지 내 자신의 변화는 별로 시도하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이제 무난한 색상에서 분위기 있는 색깔로 바꾸려 한다. 내 자신을 바꾸려는 조그만 노력이긴 하지만 '변화를 향한 출발'로 삼으려고. “모든 사물은 변화ㆍ발전한다”고 마르고 닳도록 철학책을 외우지 않았던가?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변화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고 조직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두려워 말고 변화의 길로 나서야 민주노동당이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