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20년이 되었다.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청년학생들이 민주화 투쟁의 불꽃을 피우고 시민들이 합세해 마침내 체육관 대통령을 꿈꾸던 무리들로 부터 ‘대통령 직선’이라는 구체적인 투쟁의 성과물을 마침내 쟁취했다. 얼떨결에 참가하게 된 시위대열,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하던 시절이니 만큼 처음 시위에 나선 나는 겁에 질린 모습 그 자체였다. 같이 나선 동료들을 보니 능수능란하게 잘도 대처하고 당당하게 구호도 외쳤건만 아무 생각없이 오직 도망갈 궁리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 겁쟁이가 언제부터인지 점점 시위대열 앞으로 몸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공개적인 조직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유일한 보호막인 기독청년이란 사실이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연행되어 가면 목회자들이 경찰서로 찾아가 항의하면 큰 사건이 아닐 경우 대부분 풀려 나오곤 했다. 6월 항쟁으로 군사독재 정권에 균열이 가고 민주화의 공간이 열리자 7월부터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었다. 같이 민중교회 다니던 노동자들이 “배고파서 못 살겠다. 사람답게 살게 해 달라”며 최루탄 자욱한 시위대열 맨 앞에서 절규하던 모습에 보면서 도저히 뒤로 빠질 수가 없었다. 치열하게 싸운다는 게 실감나는 순간순간이었다. 모두들 어디에서 뭘 하고 살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알고 싶은데.....
울산과 창원을 비롯한 대규모 금속사업장이 많은 지역에서 발생한 노동자 대투쟁은 70년대부터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대한 신념을 갖고 힘든 시절 변혁의 씨앗을 뿌린 수많은 이름 모를 먹물들의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노동조합이 전무하던 시절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파업도 벌이며 강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상징적인 의미이긴 하나 무장한 군대인 전투경찰에 맞서 치열하게 가두 투쟁을 한 비합법 조직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좌파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면 경찰이 밀고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찍히거나 잡히면 바로 감옥행임에도 그들은 정말 치열하게 투쟁했다. 무술유단자로 구성된 사복 체포조(백골단) 수십 명이 좌파 학생들 십여 명만 있어도 겁이 나서 달려들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노동상담소 조차 제대로 없던 시절 민중교회는 노동 상담을 하며 노동조합 조직을 도왔고, 빈민 지역에 자리 잡아 맞벌이 하는 부부들의 맡길 데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탁아소도 하는 등 주민들로 부터 신뢰를 얻었다. 교회가 민주화의 물꼬를 트는데 조그만 역할을 했던 얼마 안 되는 시기였다. 한국의 민중교회를 연구하기 위해 외국의 신학자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 중에 필리핀 NDF(민족민주전선) 소속의 수녀가 “한국인들은 그렇게 얻어터지면서도 평화를 외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들 같으면 벌써 총 들고 난리 났을 것이다”는 말이 무척이나 가슴에 와 닿았다. 사회구성체 논쟁이 벌어지면서 온갖 이론이 쏟아져 나와 치열하게 논쟁을 하던 시절이라 ‘무장 투쟁’을 거론하는 조직이 간혹 있었으나 근거지 확보가 힘든 이유인지 민중들의 정서 때문인지 모르나 큰 지지를 얻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NDF산하의 무장 조직인 NPA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대통령궁 코앞에서 대형 식품회사 운송 차량을 탈취해 빈민들에게 나누어주고, 군대의 토벌 작전이 시작되면 심어 놓은 조직원들이 정보를 줘 미리 대응한다는 얘기는 변혁을 꿈꾸던 당시 청년들의 가슴을 설렁이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90년대 초반 3당 야합이 시작되자 외형적인 민주화가 조금씩 진행되면서 피아(彼我)가 불분명 해 지며 민주화 운동 내부의 균열도 시작되었다. 아니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자 “김영삼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궤변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하나 둘 집권당에 투항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권이 정부 수립 이후 최초 권력 교체를 하자 투항 대열이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민중교회도 새로운 환경변화에 맞게 적응하지 못하고, 목사와 평신도들의 신학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않은 채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기성교회에 가지 못하는 민중지향적인 신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6월 항쟁 20년 기념 기독인 예배’가 있다고 문자가 날아오고 주소를 묻기에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난감했다. 군사독재 정권에서 참여정부 독재로 변한 것뿐인데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독교운동권인 이른바 ‘종로5가 라인’은 김대중 정권 후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노무현 정권에 송두리째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들어간 ‘5가 마피아’들은 세상이야 망하던 말든 잘도 해 먹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에 남은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활동을 하지 않으면 후원금이라도 내면 될텐데..... 동우회랍시고 가서 ‘민주노동당원’이라고 하면 인상부터 돌아간다. 먹고 살기 위해서 들어갔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면 좋으련만 언제 그런 분위기가 될 수 있을지..... 아마 진보정당이 원내 교섭단체가 되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는 세월이 오지 않으면 영영 안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연말 대통령 선거에 87년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고개를 들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제발 헛소리 하는 무리들이 없어야 할 텐데..... 미래구상이니 뭐니 해대는 꼬락서니가 또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경제주권이 통째로 날아가고 있는데 기념할 게 뭣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6월 항쟁의 정신으로 싸워야 할 시점인 것 같은데...... 미국의 앞마당이던 남미가 미국과 마짱 뜨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2007년 6월 9일 밤 경남 바닷가에서.)
추 신: 자료 없이 급하게 쓰는 글이라 내용이 빈약한 걸 이해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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