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비리 사슬로 뒤얽힌 핵발전소 건설현장

녹색세상 2007. 5. 17. 21:38

   

어쩌다 보니 핵발전소 건설현장까지 일 하러 오게 되었다. 여기 도착한 때가 점심 무렵인데 발전소의 직원들과 확장 공사 현장 관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밥 먹으러 나오는 게 보였다. 마을 어귀부터 ‘1호기 수명연장 반대’라는 깃발이 곳곳에 늘려 있는 것을 보니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렇게 반대가 많다보니 입막음을 위한 얄팍한 짓을 하는 것이다. 웃기는 것은 건설현장의 오랜 관행인 점심과 오전 오후 휴식시간에 제공하는 새참이 없다.


숙식 문제는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사 금액에 숙식비용이 분명히 책정되어 있는데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예외 지역이 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출퇴근을 해도 점심과 새참을 주지 않는 건설현장이 없건만 왜 핵발전소 건설현장은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이 숙식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현장 숙소가 아닌 외부에서 잠을 잘 경우 비용을 일부 부담시키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지만 전부를 책임지라니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새벽밥 먹고 나와 7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2시간 30분이 지나면 몸도 지치고 배도 고파오는 것은 당연하다. 들에 농부들도 새참은 가져가서 일한다. 건설자본이 노동자들을 위해 새참을 주고 휴식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노동의 강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좀 쉬고 일 더 시키기 위해 정한 시간인데 왜 이 동네는 안 그런지 모르겠다. 작업 능률을 올리려면 50분 일 하고 10분 쉬는 게 가장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무조건 오랜 시간 일만 시킨다고 결코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산업공학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시간연구’와 ‘동작연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 두 가지가 전제 되어야 ‘품질관리’가 가능하다. 유럽이나 오세아니아 국가의 자본이 마음이 착해 ‘8시간’ 이상 노동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장시간 무리한 노동으로 인한 각종 사고와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지출이 심하기에 금지하고 있을 뿐이지. 물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노동 시간의 단축 요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핵발전소 부근 주민들의 입막음을 위해 외부 식당을 이용하게 할 수는 있으나 모든 건설현장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와 오전 오후 휴식시간과 새참을 주지 않는 현장이 21세기인 대한민국에 있다니, 그것도 정부의 핵발전 의존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하고 있는 곳에서. 임금도 대한민국 건설현장 중 최저인데 숙식비용까지 부담하도록 한 것을 발주처인 한전에서 모를 일이 없을 텐데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노동자들의 고혈을 쥐어짜서 민원을 해결하도록 하려는 치사하기 그지없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의 이동이 잦을 수  밖에 없다. 손에 쥐는 돈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매달 40만원이란 피땀 흘려 번 돈을 날려 버려야 하니 오래 붙어 있을리 만무하다. 이것은 결국 공기 지연으로 이어지고 부실공사가 되어 품질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거기다 무슨 서류는 그렇게도 많은지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도 아닌 수틀리면 바로 보따리 싸는 건설현장에 남의 집 식구들 인적사항까지 있는 주민등록 등본까지 요구하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건강보험 가입 시켜 주지도 않으면서.....


더욱 문제가 심각한 것은 현장에 들어서니 곳곳에 노출된 철근에 녹이 슬어 있음에도 녹을 벗긴 흔적은 보이지 않고 녹막이를 위한 기본적인 장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 한곳이라도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한반도는 성한 곳이 없는데 감리 체계가 이렇게 허술한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고속전철 건설을 할 때 외국계 감리 회사가 했는데 철근에 녹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외국에서 수입한 철근이 수송 중에 태풍을 만나 바닷물이 덮치거나, 작업자들이 철근에 오줌을 누가 적발되면 바로 퇴출에 그 철근은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했다.


다른 곳도 아닌 핵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시공의 기본을 지키지 않다니 무언가 수상하다.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병폐인 시공회사와 감리업체를 비롯한 발주처의 비리 연결 사슬이 여기에도 그대로 존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가기간 산업이란 미명 하에 출입을 제한하니 외부에 접근하기 힘든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국가기간산업’을 민영화 하려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은 더 웃긴다. 이놈의 남한 땅 곳곳이 비리 투성이지만 이것만은 너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