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안방 혁명가들......

녹색세상 2007. 5. 8. 20:58

   

  제 친구 중 전형적인 안방 혁명가가 하나 있습니다. 목사인데 조금 진보적인 학풍이 있는 캐나다로 교회사 공부를 하러 갔다가 형편이 여의치 못해 눌러 앉아 영주권을 얻고 시민권까지 얻어 캐나다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민 가기 전 농촌 지역에서 목회를 하며 ‘농목활동’을 몇 년 했으나 지식인들이나 목사와 신부들 같은 남의 말을 들을 기회는 거의 없고 자기 말만 하기 바쁜 집단의 한계 때문에 청년시절 운동을 했던 평신도들은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조직이라고 있긴 하지만 조직의 결의 수준이나 집행력이 매우 떨어져 조직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인식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국민이 잘 살기 위한 것이라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저 모습을 보라!

   

  멀리 객지에 나갔으니 얼마나 살기 어려웠겠습니까만 자기만 고생한 것처럼 말하기에 ‘너 만큼 고생 안 한 사람 별로 없으니 세상 물정 모르는 시건머리 없는 소리 그만 하라’고 한 마디 했더니 삐져 한 동안 연락조차 안 하기도 했습니다. 둘의 관계를 잘 아는 달서위원회의 임×무 당원으로 부터 “형님과 최 목사는 아직도 그렇게 다투느냐”는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캐나다 가서 몇 년 동안 친구는 ‘아저씨’란 호칭에 적응이 안 되었고, 친구 부인은 ‘아줌마’란 소리에 그렇게 어색하더랍니다. 하기야 교직에 있는 중학교 동기도 ‘선생님’이라면 고개가 돌아가는데 ‘아줌마’라 하면 잘 안 돌아갔다고 하니 이해갑니다. 그 정도로 (흔히 말하는) 성직자들은 호칭에 누구보다 민감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런 것 가지고 그러면 정신 덜 차렸다”고 직격탄을 한 방 먹인 적이 있습니다.

  목회에 전념할 수 있는 교회 담임 목사 자리가 안 나와 서로 아는 교민들 20-30여명이 모여 일요일 오후 현지 교회를 빌려 예배를 하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있는데 이민 교회의 대부분이 목사들의 밥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문제가 많아 “생계형 목회 당장 때려 치워라. 너 말고도 설교할 목사 널렸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다가 정말 얼굴 안 볼 뻔 했습니다. 목사들한테 이런 소리 하면 정말 호랑이 콧수염 건드리는 것처럼 싫어하지만 친구기에 위하는 마음에 그랬을 뿐인데 역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철학의 기본 명제가 맞더군요.

 

  말의 방향이 조금 어긋난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외국 나가 있기에 다양한 사람들로 부터 한반도와 관련한 말을 들을 기회가 많아 한국에 오면 걸핏하면 “민주노동당은 겨우 만원 내 놓고 십만 원 이상 떠드는 그런 짓 당장 그만 두라”며 정곡을 찌르는 소리를 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을 봐라. 매주 모이고, 구역모임(분회모임) 주 1회 이상 하고 수입에 따른 자발적인 헌금을 하는데 너희는 그렇게 하느냐”고 할 때는 별로 할 말이 없더군요. 친구의 이런 말에는 저도 공감을 하고 기독교인들처럼 수입에 비례한 당비의 자발적인 납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 제기라면 제가 얼마든지 들을 용의가 있는데 가끔 ‘정치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려야 한다’고 저를 볼 때 마다 그러기에 “그런 원칙 없는 소리는 그만해라. 정말 애정이 있으면 밖에서 그러지 말고 입당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게 정말 조국을 위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말을 흐리고 말더군요. 조직 생활을 하지 못하는 목사들의 한계를 알지만 건드리지 않을 수 없어 제동을 걸었습니다.

  친구가 제기하는 문제가 상당부분 일리 있으나 몸은 전혀 가지 않고 입만 나불대는 전형적인 안방혁명가의 건강하지 못한 모습이라 저는 싫어합니다. 친구가 당원이나 후원당원으로 가입하고 우리 민주노동당의 일원으로서 문제 제기를 한다면 저는 얼마든지 들을 용의가 있으나 입으로만 하는 운동은 정말 잘못된 것이기에 아주 매몰차게 끊어 버리곤 합니다. 당원들 가운데 염색 공장에 주야 교대 근무라는 피를 말리는 노동을 하면서도 집회나 행사가 있으면 조용히 와서 자리를 지키고, 선거가 있으면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정치후원금으로 내는 동지들이 있음을 봅니다. (장화를 신고 일 하기에 몸에는 피부병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출근길에 한미FTA반대 일인 시위를 할 때 평소 보다 일찍 집을 나서 참석하고, 한미FTA 타결 발표가 있는 날 7시까지 집회 장소인 2.28 공원까지 오려면 6시에 바로 퇴근을 해야 하기에 이런저런 눈치를 봐 가며 와서 함께 자리를 지키는 아름다운 동지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여성동지들은 더 고생이죠. 저 보고 자식 데리고 다니면서 모임에 나오라면 자신 없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분들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이라는 끈을 놓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큰 사건이 벌어질 때 마다 자신의 명확한 논리는 전개하면서도 정작 몸을 움직이는 데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을 볼 때 정말 화가 납니다. 입과 머리로만 변혁을 떠드는 사람들을 저는 골목대장과 같은 ‘골목혁명가’로 부르려 합니다. 시간을 낼 수 없어 몸을 움직일 수 없으면 용돈을 아껴서라도 내고, 그럴 여건도 안 되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 싸움의 방식은 다양하게 전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입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몸이 잘 안 움직일 때가 많으나 이름 없이 자리를 지키는 동지들을 보면서 신발 끈을 동여맵니다. 움직이지 않기 시작하면 그 핑계를 자꾸 만드는 게 인간의 속성인지라 그렇게 변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합니다. ‘한미FTA’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노무현 정권은 ‘한EU FTA’를 들고 나와 FTA만이 대세이고 살길인양 설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허세욱 열사 49제’ 투쟁에 힘을 모으지 못하면 권력은 사정없이 밀어 붙이고 말 것입니다. 3월 25일 한미FTA반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 대구에서 경찰로 부터 출두 통지를 받은 8명 가운데 6명이 우리 민주노동당원들이란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업이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큰 사안이 있는 투쟁은 시기를 놓치면 헛고생만 할 뿐 입니다.

 

 (비록 떠들 자격은 없지만) 이렇게 말하려 합니다. 입만 머리로만 싸우려는 무리는 가라. 지금이야 말로 몸으로 부딪혀야할 시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