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죽음을 강요하지 마라!

녹색세상 2007. 4. 24. 23:49

  아직도 흔들리지 않는 사십대 남성 사망률 세계 1위, 최근 급증하는 자살자는 교통사고 사망자 보다 많은 자살률 1위. 얼마나 살길 힘들었으면 가장 극단적인 방법인 자살이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 사회는 고민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인 사회 구조가 만들어 낸 병이지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건강관리를 잘못해 돌연사 하고, (남들은 살아 있는데) 개인적인 문제로 자살한다고 돌려 버린다.

 

  알제리 민족해방 전선의 뛰어난 이론가요 투쟁하다 다친 전사들을 치료하는 해방 전선 군의관으로 활약한 프란츠 파농은 식민본국인 프랑스 사람한테는 없는 손을 뜨는 병이 알제리 사람들에게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과 의사로 연구를 해보니 식민지민들이 겪는 특유의 집단병임을 확인하고 ‘사회구조가 병을 만든다’는 것을 알고 사회를 고치지 않고는 사람들의 병도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산재보험 기금 고갈을 이유로 몇 년 사이 장기요양 환자에 대한 강제 종결로 아픈 몸을 어떻게 할 길이 없어 자살이란 막다른 길을 선택하는 산재환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죽을 용기 있거든 못 할게 뭐가 있느냐’고 하지만 몸이라는 토대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 투병으로 심신이 망가진 사람은 삶의 의욕도 없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고 후 재활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해 현업에 복귀할 상태로 만들어져 있지 못하다. 몸이 성해야 삽질이라도 할 수 있지 아프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죽을 용기’ 운운하는 것은 그들의 심장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골은 점점 깊어져 갈 수 밖에 없다. (거칠게 표현하면) 아픈 몸으로 그냥 살든지 죽든지 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삭막한 사회는 약육강식의 법칙만 있어 강자만 살아갈 뿐 약자나 소수자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자본과 관력이 자신들의 이해를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도 살벌하기 그지없는 이런 세상을 방치해서는 안 되건만...... 한두 번 단물 빨고 걷어 차 버리려면 몰라도 파이프를 꽂아 지속적으로 먹으려면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게 적당히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대중 정권이 해방 후 50년 만에 권력 교체를 했으나 외환위기로 부도난 정부를 인수해 돈을 빌려준 국제통화기금(IMF) 조차 놀랄 정도로 시장을 개방하고, 수 없는 공적자금을 쏟아 부어 흑자로 만든 금융기관의 대부분을 외국 투기 자본에 팔아넘긴 것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외환위기 처리 과정에서 IMF의 실질적인 지배주주인 미국 금융자본과 이면계약을 맺었음이 드러났다. 이른바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무분별한 인력 감축으로 5명이 하던 4명으로 줄이더니 이젠 3명이 하는 최악의 노동조건으로 변해 사무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5년 사이에 급증한 사무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은 이를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다.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몰라 아파도 쉬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돌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게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와 업무량은 한계점에 이런지 이미 오래다. 이른바 선진국처럼 하던 일을 잠시 쉬었다 재취업할 수 있는 체계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나가는 순간 다시 일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야말로 죽음을 강요하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사회 구조다. 얼마나 더 죽어 나가야 이 악마의 행렬이 멈출지 모르겠다. 한미FTA 체결로 자본의 수탈이 극성을 부린다면 더 심해질지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