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추락 사고를 당한 후....

녹색세상 2007. 6. 8. 22:35

   2007년 6월 7일 오전 10시 무렵, 5일 첫 콘크리트 타설을 한 2호기 기초 구조물의 버팀목과 볼트 해체 작업을 하고 내려오다 비계 파이프가 넘어지면서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고리를 걸고 내려오던 중이라 피할 틈도 없이 같이 넘어져 바닥에 있던 서포트에 겨드랑이 부위가 부딪쳤다. 사고가 났을 때 ‘함부로 몸을 움직이면 후유장애 발생 위험이 있다’고 응급처치 강사 교육에서 배운 게 생각나 사고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나를 부축 하려는 걸 그만두게 하고 넘어진 채로 정신을 차려 목과 허리 등 주요 부위가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했다. 다행히 목과 허리에 이상은 없는 것 같아 다리와 팔을 움직이며 더 다친 곳은 없는지 나머지 부위를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니 왼쪽 겨드랑이 아래 늑골(갈비뼈) 쪽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만져 보니 옷도 찢어져 있고. 조장이 연락을 하고 올라가 기다려도 안전담당이 안 보여 안면 있는 과장에게 연락을 부탁했다. 좀 있으니 안전 담당이 오고 연장을 해체하고 몸을 추스르려 가는데 ‘누구 ×’라는 무전이 날아왔다. 대형 사고를 지칭하는 은어 같아 보였는데 ‘아니다’는 답변을 날린다. 다친 놈은 아파 미칠 지경인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사고 은폐에만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골절은 아니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재해자를 위로하는 말은 없고 오직 ‘보호구 착용’을 했는지만 묻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왕초보로 보이는지 ‘회사에서 치료 안 해 준다’는 반 협박조의 말만 뱉어내고.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는 현장에서 어떻게 작업을 하던 사고가 나면 무조건 치료를 해 주게 되어 있건만 그런 기본적인 사항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사고를 당한 사람을 달래서 뒤탈이 안 나도록 기름부터 칠 것 같은데 이 동네는 전혀 그렇지 않으니 과연 21세기 건설현장이 맞는지 의문이 간다. 후유장애가 발생해 민사소송에 들어갈 경우 당사자의 과실 여부를 확인하건만 착각 치고는 너무 심한 착각이라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조그만 포구

 

  지정병원에 도착하니 대기 중인 환자가 대부분 노인들이다. 수술하는 외과에 올 환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돈이 되니 그냥 붙들고 찜질만 해대는 의료 관행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돈이 되는데 마다할 의사가 누가 있으랴마는.... 사무장과 낯이 익은 탓인지 몇 마디 하더니 의사를 보기도 전에 사무장이 엑스레이 촬영 오더를 내린다. 이건 분명히 의사의 고유권한을 침범하는 것인데 매우 익숙하게 진료차트에 기록도 한다. 의사면허증이 없는 사람이 진료 차트에 기록을 하다니 이건 분명히 의료법 위반인데.... 

 

  가족도 아닌 사람이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환자와 의사의 비밀이 오가는 진료실에 들어와 서 있으니 이것 또한 웃기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환자와 대화가 오간 후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몰라도 처음부터 같이 있어도 의사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환자를 보호해야할 의사로서 취해야할 태도인지 너무 의문이 간다. 다행히 5번 늑골에 금이 간 가벼운 골절이라며 후유증은 없을 것 같다고 하니 다소 안심은 되지만 또 사고라니 눈앞이 캄캄하다. 남이 일해 놓은 곳에 가면 안 된다는 노가다의 철칙이 맞아 떨어진 전형적인 사례다.


  안전담당들은 수시로 ‘안전제일’을 떠들지만 가장 위험성이 높은 해체 작업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사전에 통보를 받고, 작업을 해도 되는지 안전 점검은 전혀 하지 않는다. 4-5미터가 넘는 곳의 해체 작업이면 안전 발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안전 사다리가 없으면 작업을 중단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하면 늦다고 모 이사는 ‘야리끼리 안 하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야리끼리 하라’고 독촉을 한다. 안전수칙을 지켜 일하지 말고 빨리 하라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작업장이 불안전한 상황일 경우 작업자의 작업거부권이 없는 안전은 말로만 안전일 뿐 진짜 안전이 아니다. 작은 금이 갔던 크게 부러졌던 같은 골절이라 회복 기간은 비슷한 6주는 넘어가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사고임에도 아무런 말도 없다. 대충 윽박지르면 통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몸은 괜찮은지 말도 없다. 하숙비 내 가며 지내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전무후무한 이런 현장에서 지내는 현실을 감안조차 하지 않는다. 다치는 걸 하도 많아 봐서 그런지 골절 사고를 정말 가볍게 본다. 어떻게 수습하는지 두고 보다 아니다 싶으면 대구로 옮겨서 편하게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갈비뼈 골절이 의사가 하는 말 이상으로 심한 통증이 동반되어 생활 자체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큰 소리도 말 할 수도 없고, 기침이나 가래를 뱉어 내려면 아파서 겨우 해야 하는 등 불편하기 그지없다. 편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말고는 통증 때문에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현장이란 특수성이 있어서 그런지 도무지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반말은 기본에다 경험 좀 있답시고 자기 말은 곳 법인 희한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인권 침해가 심한 현장은 머리 털 나고 처음 보는 것 같다. 오갈 데 없어 여기까지 굴러왔다는 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무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핵발전소 건설은 시뻘겋게 녹이 슨 구조물의 녹도 제거하지 않는 부실 공사와, 노동자들의 피땀을 빨아먹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현실과 인권 침해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해체 작업을 하기 전 안전시설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확인을 하지 않은 관리자의 잘못과, 해체작업은 사전에 통보를 해 점검을 받지 않으면 못하게 막지 않은 안전부서의 관리부재가 빚은 명백한 인재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안전조치 미비'임에 분명하다. 벽 쪽에 기대어 있는 비계가 넘어 올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잘못도 일부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런 사고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언제 유사한 사고가 재발할 위험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고 수습 과정을 지켜 볼 일이다. (사고 다음 날 밤 10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