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찬바람이 불어 서글프기만 하더니 다행히 날씨가 조금 풀려 마음이 놓인다. 대구시당 지도부가 한미FTA 반대 단식 농성 이틀째다. 여럿이 하기에 견디기 조금은 낫겠지만 아직 밤낮 기온차가 심한데다 시내 중심가의 차가 많이 다니는 6차선 대로변이라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 힘들 텐데 걱정이다. 건물이 있을 때는 모르겠던데 공원이 되고 나니 확연히 체감 온도가 달라진 것 같다. 교도소나 특정한 공간에서 하는 것이야 그래도 할만은 한데 도심에서 하는 동지들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북악산의 강풍이 바로 때리는 청와대 앞에서 차양막도 없이 햇빛을 바로 받으며 단식 농성하는 문성현 대표에 비하면 그래도 낫다는 위안이라도 전해야 할지.....
자신들의 문제가 걸려 있는 현실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시민들. 특히 실업 문제로 심각하게 고통 받고 있는 청년들의 무관심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전 세계적인 우향우의 광풍 속에 프랑스에서 “대학 졸업한 청년들의 경우 2년 안에는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다”는 법안을 총리란 자가 내 놓았다가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난리가 나지 않았는가. 이해 당사자인 대학생들은 물론이요 대학교수들과 학부모들까지 합세해 발칵 뒤집어지자 결국 그 법안은 철회되고 말았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이 정도 당하고 살면 눈알 뒤집힐 만도 할 텐데 들고 일어났다는 소식하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너무나 이상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곡기를 끊고 농성 중인데도. 대학등록금이 천정부지로 뛰고 세계 4위로 비싸건만 학부모들은 등골 휜다는 소리만 하지 가만있는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워낙 살기 힘들어 옆으로 눈을 돌릴 틈이 없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자기 자식과 집안의 살림살이가 걸린 문제에는 목소리 같이 내야할 텐데 침묵만 지키고 있으니. 예전 같으면 원로급인 40대 중반을 넘긴 정당의 활동가들이 단식을 해야 하는 현실, 갈수록 청년학생들은 개별화 되어 정치문제에 무관심해져 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노인들만 앉아 있는 일본공산당 처럼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그래도 세상을 바꾸는 일에 뜻을 같이 하고 몸을 움직이는 청년학생들이 있어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중앙당이나 시도당 행사 때면 아이들을 보거나 궂은일은 언제나 학생당원들의 몫이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이들이 있기에 단식농성을 하면서도 힘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야당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으니 정권으로서도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전국적인 동조 단식에 들어갔으니까.
‘한미FTA가 남느냐 민주노동당이 남느냐’가 달렸다. 조금 일찍 시작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왕 시작한 것 끝장을 봐야하지 않겠는가? 여럿이 꾸는 꿈이니 현실이 된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리라 믿는다. 조용해지면 이 친구들 밥이라도 한 번 사야 할 것 같다. 청년 시절 우리 형제가 안으면 울음을 그쳤던 조카들로 부터 ‘삼촌, 이 정도로 밖에 투쟁 못합니까?’라는 비판에 가득찬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그런 말 한 번 들어 보지 못해 가슴이 시리다. 우리 조카 녀석들이 저 대열에 없다는 게 속이 많이 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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