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그 동안 잘 지냈니 친구야?

녹색세상 2007. 3. 3. 12:04

  신학기가 되어 정신없이 바쁘겠구나.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말야. ^^ 새로운 딸내미들을 맞이해야 되겠네? 그 나이가 일생을 좌우하는 기초를 만드는 시기임을 자네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비록 점수와는 담 쌓고 사는 아이들이 있다 할지라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바램을 전하고 싶다. 자라나는 우리 2세들에게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으니 말야.


  봄소식이 들려오는 2월 마지막 날 창원을 갔다 왔어. 작년 말의 산재 사고 중 외상이 있는 것은 먼저 승인이 나고, 무릎은 자문의사가 혼자 판단하기 어렵다며 ‘자문의협의회’로 넘겨 버려 참석차 갔어. 골치 아픈 인간이란 정보를 수집 했는지 가장 뒤 시간에 배치를 해 놓았더라. 덕분에 할 말 다 할 수 있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이런 특혜 비슷한 것도 싫고 누구나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하는데 왜들 이러는지.....


  재해자 조사를 하던 담당자가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는 바람에 실컷 학습 시켜 놓은 게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는데 역시 ‘악명’은 남아 있더라. ㅋㅋㅋㅋ 경대의대 패거리의 노땅들만 버글 거리는 대구와는 달리 젊은 의사들이 더 많고, 질문을 많이 하는 걸 보니 분위기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금 놓이더라. 소송에서 자기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 처럼 모든 준비를 당사자가 해야 하니 보통 열 받는 게 아니지. 그냥 편하게 치료만 받아야 치료 효과가 상승해 기간이 짧아진다고 의사들이 그렇게 말하건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 갑갑하기 그지없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고 묻기에 얼마 전 베트남이주 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창원지사 자문의협의회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산재사고로 인정한 사례가 있어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전향적인 결정에 경의를 표하고, 앞으로도 그런 의학 자문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감안하고, 이 자리에서 판정하기 어려우면 특진을 보내 다시 한 번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어. 대구의 경우 자문의 협의회 하면 (나 같이 골치 아픈 인간 있으면) 10여 명 정도 앉아 있지만 두 세명이 한 마디 묻고는 넘어가는데 투쟁의 열기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더라.


  건설현장에서 일 하는 사람 아닌 것 같다는 소리를 또 할 것 같아서 “얼굴을 보고 백면서생으로 아는 데 난 건설노동자다. 이 바닥에서 일 한지 20년 가까이 된다”고 했더니 전부다 의아해 하더라. (하기야 대부분 입으로 노가다 하고 살았으니... ^^) 대구로 돌아오는데 창원이 해방 후 최초의 계획도시라 그런지 구획이 반듯하고 자전거 전용 도로가 곳곳에 있고. 인도도 넓은데 1/3만 보도블록이 깔려 있고 주택과 도로변에는 나무가 많이 있어 참 보기 좋더라. 무엇보다 유흥가가 특정 지역에 밀접해 있어 좋더라. 주거 전용지역의 집이 마치 교복처럼 획일화 되어 있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말야. (대구 비하면 공간 배치는 완전 호텔 수준이더라)


  돌아오는 길에 ‘우린 언제 찾아오는 복지서비스를 받는 세상’에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갈수록 캄캄해져만 가는 현실에 눈물이 나더라. 있는 놈 아가리에 쑤셔 박아 넣어 주려고 고생한 게 아닌데 말야. 연초에 캐나다 사람이 된 친구 녀석이 혼자 있는 놈 안 됐다고 한국 가는 길에 대구 가서 윤희용이를 만나 보라고 해서 만났는데(요즘 국제적으로 논데이 야야.^^) 사회복지사라 이런 현실을 말하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아픈 사람들을 그렇게 할 수 있느냐’며 흥분을 하던 기억이 나 너무 씁쓸했어. (남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지 모르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내 눈에는 이런 사회의 모순이 더 깊이 보이고, 갈수록 깊어져 가는 빈부격차와 사회 양극화가 더 가슴을 짓누르네.


  이런 세상에 우리 자식들을 살게 하지 않기 위해 남들 사회 진출 준비할 때 최루탄 마셔가며 싸우고, 미래 우리 사회에 대한 공부도 했는데..... ‘너희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고 맨 날 싸움만 한다’는 소리 안 들으려 이 나이에도 수시로 정책 연수 다니고 공부도 하지만 역량은 제한되어 있고 할 일은 산더미고....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된다’는 믿음이 갈수록 흔들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네.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더 신나게 할 수 있을 텐데 혼자다 보니 외롭고 힘들다 친구야. 가진 것 없다고 병원 못 가고, 가방끈 짧다고 주죽 들지 않는 세상에 대한 꿈은 버릴 수가 없는데..... 성서에 나오는 야훼께서 약속한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믿음을 버린다면 하느님한테 꾸지람 억수로 듣겠제?

 

  교장 포기파에 보직도 싫고 수업하는 게 신나는 교사이니 새로운 딸들에게 점수만이 아닌 삶의 희망을 주고, 집단적인 입시 광풍에 내몰려 소중한 시절 다 보내는 우리 2세들에게 삶에 진정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많이 보여 주었으면 좋겠구나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