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혹은 학자적 양심을 걸고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너무나 힘겹다. 사회의 권위가 정해 놓은 논리가 아니면 이단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하던 시절은 한참이나 지났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우리는 이 끝없는 화형의 행렬을 보아왔다. 2005년 말의 황우석 사태는 그 정점이었다. 한 영웅적 과학자의 권위와 <사이언스>의 권위가 수많은 젊은 과학자들의 양심을 짓밟았다. 과학이 가장 성공한 학문으로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권위에 대한 그 끝없는 도전 때문이었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양심이 설득될 때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지 않도록 수년간 교육받는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 그들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기간 정답만을 강요받은 우리들에게는 익숙하지가 않지만, 과학 활동의 과정은 오답의 연속이고 시행착오의 반복이며 끝없는 실패 그 자체에 오히려 가깝다. 그래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당신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우며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여기에는 선배도 스승도 <네이처>나 <사이언스>도 예외일 수 없으며 심지어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도 마찬가지다. -중략- 내가 틀렸다는 것이 나에게 엄청난 문제가 있고 잘못이 있고 인생이 어그러지고 있으며, 사회에 무지막지한 죄를 지은 것처럼 교육시켜 온 우리 사회 전체가 문제라면 더 문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과학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거부한다면 그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가장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라는 과학에서조차 끝없이 이런 논란이 일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는 그야말로 '큰 목소리'가 합리와 이성을 대체하고 있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김 × × 목사님.
위의 글은 고등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은 전직 대학 교수가 재판장을 향해 석궁을 쏜 사건과 관련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 하기는 커녕 오히려 내부에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 멀쩡한 학자를 왕따 시키고 생매장 시킨 사건과 관련해 인터넷 신문에 나온 기사 중 일부입니다. 싫으면 싫어할 수도 있고, 자기가 판단해 아니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건만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린 침묵의 카르텔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별종’이라는 낙인을 찍어 사람을 생매장시켜 버립니다. 유×나 집사를 만나 남한 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말했더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유 집사와 같은 생각입니다.
저 같이 별나게 문제 제기하고 의문을 던지는 인간 때문에 참 피곤하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대세에 섞여 편하게 살아가고 싶은 유혹을 많이 느끼고, 당장이라고 마음 고쳐먹고 집권당의 적당한 자리하며 인맥 쌓아 놓았다 큰 공사 몇 건 하면 남의 것 도둑질 하지 않고도 평생 먹고 살 거 챙길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당발인데 작정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달려들면 ‘그 놈 인간성 좋다’는 소리 들고 온 동네 선후배 늘어놓을 수 있을 겁니다. 힘들게 마음고생하며 살아갈 어린 자식을 생각하면 적당한 선에서 합의 보고 생색도 내면서 남들 듣기에 그럴듯한 간증거리 몇 개 갖고 살면 안 될까 싶을 때가 많다는 게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제가 갈 길이 아니요, 성서를 통해 수도 없이 본 하나님이 명하신 길이 아니기에 힘들지만 ‘네가 져야할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 이 길을 갑니다. 이왕 가는 길 즐겁고 신나게 가자고 마음 고쳐먹었고요. 제가 비록 신학의 겉 맛만 보았지만 ‘신앙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것’이 신학이라고 배웠습니다. 신앙과 신학은 동전 앞뒤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지 서로 떼어 놓아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고요. 신학과 목회가 따로 노는 한국교회 현실이 문제이건만 이 부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목사들이 별로 없어 기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 갑갑합니다. “밥줄이 걸려 미안하다”고 말한다면 솔직하기나 한데 다른 말로 포장을 하고 있으니 더 기가 찰 노릇이죠. (성직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만) 남들이 성직자라 부르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1세대 민중신학자로서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긴 안병무 박사는 “우린 성서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질문 대신에 성서가 이미 자명한 것으로 이해하는 순간 우린 아집에 빠진다”고 ‘역사와 해석’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계적인 단답형의 문제에 익숙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런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수평적인 관계에 익숙해 있어 명령조의 말투나 단정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문제가 생기면 수 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 속에서 답을 찾으려 애 씁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인간에게 이런 지혜를 주신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며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픈 것은 하나님의 경고?
연말 입원하는 날 불편한 다리를 끌며 교회를 갔는데 ‘무릎 아픈 것은 하나님께 회개할 것이 많다’는 어느 분의 말에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분의 말씀대로라면 몸에 병이 있는 화×교회 교인들은 다 잘못한 게 있어서 벌 받는다는 말인가요? 평소 지병을 앓고 있는데다 달팽이관에 이상이 생겨 응급실까지 간 집사님은 지은 죄가 많아 천벌 받은 것입니까?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것 같았으나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성탄절 부축을 받아서라도 교회 가고 싶었으나 재작년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불편한 몸 이끌고 교회 들어서는데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라는 말이 떠올라 그냥 병실에서 책 보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보다 더 떠 받드는 성서에 분명히 ‘정죄하지 마라’고 한 예수의 말씀이 있건만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정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왜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말은 신주 받들 듯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슴을 도려내는 말을 던지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나 집사가 캐내다에서 오지 않고 조선족 동포라도 교인들이 과연 그렇게 대접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면 너무 지나친 억지겠죠. 같이 점심 먹으며 다양성에 대해 얘기하다 “교회에 우리보다 피부색이 짙은 사람이 들어선다면 어떻게 대할까”라고 물었더니 “아마 이상하게 취급할거라”고 서로 웃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 태동한 민중신학도 좋아하고, 남미의 특수한 상황에서 생긴 해방신학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이나 신신학에 대한 호기심이 누구보다 많습니다. 김 목사님 말대로라면 윤희용이는 ‘이단’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간 예수를 좋아하는 제가 이단이라면 도대체 누가 이단 아니란 말입니까? 목사들의 그런 말 때문에 상처를 받고 교회를 등진 사람이 제 주변에는 참 많습니다. 청년학생 시절 남들은 편하게 공부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때 군사독재 정권이라는 마귀가 득실거리는 이 땅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보장된 앞날을 접고 선한 싸움을 한 젊은이들을 보호해 주기는 커녕 교회는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주었습니다. 먼저 그들의 상처를 이해하지 않고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만 한다면 결코 교회 발 들여 놓지 못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신앙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지만 그들이 발 들여 놓을 교회가 없어 가슴 아픕니다.
아직도 빨갱이를 필요로 하는 무리들
21세기인 지금도 빨갱이를 필요로 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부와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분배’를 말하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두자’는 민주노동당 같은 집단이 그들에게는 당연히 눈의 가시라 굴비 엮듯 엮어 만들어 낸 게 ‘일심회 사건’이라고 저는 봅니다. 국가정보원이나 청와대 경호실의 직원을 선발해 기본교육 시키는데 최소한 일 년 걸린다고 합니다. 실무에 투입해 귀빈 경호나 정보 수집해 가공까지 하려면 몇 년 걸릴지도 모르죠. 그런데 스파이 보내려면 얼마나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교육시켜야 할지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빨갱이를 필요로 하는 세력은 ‘몇 일간의 밀봉교육’이란 말까지 써 가며 사정없이 간첩으로 몰아 버립니다. ‘운동권이 주축이 된 정당과 연루된 간첩사건’이라는 적당한 그림이 나오는 거죠. 미국에 알아서 기는 노무현 정권보고 좌파정권이라는 수구꼴통들 눈에 진보정당이야 당연히 빨갱이죠. 목사들마저 이러니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분명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상의 자유를 인정’ 하지만 하위 법에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 뿐 인데 주위 사람들은 ‘별종’이라고 사정없이 낙인 찍어버립니다. 이런 상처를 극복해야 하는 게 저의 당연한 몫이지만 이러한 상처가 얼마나 큰지 상담자로서 잘 알 것입니다. 하나님의 빌린 ‘21세기판 마녀 사냥’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지나친 피해의식일까요?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비수를 들이 댈 때 받은 상처는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하나님이 판단할 몫을 자신이 알고 있는 짧은 경험과 학습으로 재단해 버리면서 어김없이 하나님을 갖다 붙이는데 정말 할 말 없습니다. 폭력치고는 너무나 심한 폭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삼덕교회의 김태범이가 장학금으로 쓰라고 교인들이 맡긴 돈을 횡령하고, 십억 대가 넘는 돈을 총회장 하려고 퍼부어 댑니까? 하나님이 있는데 광성교회의 이성곤은 여신도와 서울에서 경주까지 왜 갔으며, 깡패를 교회 안까지 끌어 들여 온갖 날치기를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데 조용기가 교회 공금을 아들 아가리에 쳐 박아 넣고도 가만있고, 움직일 때 마다 보디가드 수십 명 거느리고, 그것도 모자라 부활절 예배에 성직자를 복 날 개 패듯 합니까?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철저히 예수를 배반하고 있으며, 그 선봉에 목사들이 서 있음을 직시하지 않으면 더 이상 설 곳이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 역시 하나님이 명한 길을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요.
교회에 갇힌 불쌍한 하나님
제발 우리 하나님을 교회란 조그만 울타리 안에 가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주관자란 사실을 고백하고 믿는다면 타종교에도 역사 하실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들을 보듬어 안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영적전쟁’이란 말은 이제 꼭꼭 접어서 역사의 창고로 보내야 하는 낡아 빠진 십자군 시절의 것이지 21세기인 지금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 봅니다. 개신교와 교리가 비슷한 게 많아 서로 공유할 부분이 많은 천주교마저 배타적으로 대하면서 천주교가 수직 상승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벤치마킹은 왜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종하기 조차 싫은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예수는 명령했습니다. 원수 사랑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제가 경험해 봐서 조금은 알기에 이런 말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지는 못할지언정 함께 해야 할 이웃을 우상숭배 한다고 배격하고, 천주교 신자라고 멀리하면 도대체 누구와 세상을 살아가려 합니까? 이런 배타성을 버리지 않는 한 교인들은 게토를 형성해 자기들만의 천국에 살며 만족해 할 것이고, 그런 교회가 살아남을 길도 요원하다고 저는 봅니다. 칼 막스가 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했는지 철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믿음은 상식에 어긋난 것이 아니라 상식을 뛰어 넘는 것임을 알기에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발 하나님을 교회란 작은 울타리 안에 가두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개신교는 교인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원인을 철저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쇠락을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전인치유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거듭나는 것 참 좋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목회자 혼자 고민하고 머리 싸매지 말고 서로 머리 맞대고 같이 토론하고 공유할 때 그 내용과 효과는 상승한다고 보는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아 참 안타깝습니다. 개척한 지금까지 신년도 목회방침을 설정할 때 교인 누구와 같이 고민하고 머리 맞대 보신 적 있습니까? 교회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각종 구호가 서로 고민의 결과물이라면 얼마나 많은 교인들의 가슴에 와 닿을지 저는 수 없이 고민을 해 봤습니다.
늦기는 했지만 화×교회가 지금부터 이웃을 섬기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성서 지역에서 살아남을 길이 없다고 저는 봅니다. 엉성하기 그지없는 통계청 자료마저 개신교인 수자가 급격히 준다고 하는데 난 예외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일반성을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특수성이 설 자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수성이란 일반성에서 세분화 된 것이지 하늘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아시기에 하는 말입니다.
글을 마무리 하면서
말 많은 인간이 또 장황하게 사설을 늘어놓고 말았군요. 제 나름대로 하는 일이 윤희용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따라 하고 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그러기에 운동판에 활동가라면 누구라도 다리 걸치고 있는 그 흔한 정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나 홀로 길을 자청해 외로울 때가 참 많으나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바람 불 때 막아 줄 바람막이 없는 외로움이 정말 크지만 가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란 조직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이지 목적은 결코 아니고요. 하나님이 세상의 주관자란 사실을 감히 고백하기에 가능하면 나를 낮추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려 노력합니다. 그러기에 교회 밖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교회를 옮길 때 근저당이 십억 대가 넘게 설정된 건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리니까 “왜 하나님이 지켜주심을 믿지 않느냐”고 할 때 너무나 어이가 없어 그냥 돌아서려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막아야 목회자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난생 처음으로 교회 일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저게 신앙이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물러서려는 고민을 수 도 없이 했으나 김×해 최×영 부부의 얼굴이 눈에 아른 거리고, 후에 일이 벌어졌을 때 애×와 ×원이가 받을 상처가 떠올라 외면 할 수가 없더군요. 친구 부부와 아이들이 아니라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지 그냥 있었을 겁니다.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제가 여러 번 메일을 보냈으나 김×× 목사님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서로의 신학(철학)이 다른데 같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의 폭을 좁히려 대화를 하자고 몇 일을 고민하고 정리해 보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할 때 심정이 어떤지 상담전문가로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보낸 내용 중에 욕하거나 헐뜯는 게 없었음에도 말이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원하지 않으면 그냥 두는 게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저는 알고 있는데 강요를 받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제가 알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과 민중신학을 비롯한 해방신학은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단이라고 하니 저로서는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에 시달린 한국사회의 환경과 사제와 수녀들마저 총 들고 싸울 수 밖에 없는 남미의 특수한 상황이 낳은 수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형성된 신앙의 결과물을 개인이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오해를 풀기 위한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보는데 김 목사님의 견해가 어떤지 모르겠군요?
더 이상 별종 소리 듣거나 이상한 인간 취급당하기 싫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신앙의 어머니 되시는 어른과 수차례 상의 끝에 대구에서 마지막 남은 민중교회로 가서 신앙생활 하기로 작정을 하고 등록을 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 확장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던 동지들이 있어 무엇보다 편하고,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절대 일 안 시킨다는 원칙이 있는 교회라 저처럼 게을러터진 인간이 가기는 딱이더군요. 지금도 몇 교인이 선한 싸움을 하다 감옥에 가 있기도 합니다. 제가 힘들 때 많은 사랑의 빚을 졌는데 갚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죄송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그 빚을 갚는 것이라 믿습니다. 혹여 제 글에 상처가 되는 내용이 있다면 부족함 많은 인간의 잘못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7년 1월 둘째 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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