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면 각종 장밋빛 환상 투성이의 정책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건강권을 책임지고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보호대상자’들을 의료비를 엄청나게 축 내는 부도덕한 사람들로 매도하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몇 일 안되는 사이에 엉터리 자료까지 인용해 가면서. 엉터리 자료를 인용한 것에 대해 사과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한 나라의 정책 책임자인 장관이 하는 일이라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 위험한 발상’에 대해 의료전문가들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정부 의료급여제 개정 비판, 병원 자주 가는게 도덕적 해이라고?
최근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에게 건강생활유지비를 주는 대신 외래 이용 때 본인부담금을 부과하고 과다 의료이용자를 대상으로 선택병의원제를 도입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의료급여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이 발표되었다. 이번 개정안은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명목상으로라도 취해 왔던 의료보장에 관한 보편적 인식과 거리가 먼 차별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개정안이 의료급여 제도에 대하여 매우 차별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유시민 장관의 대국민보고서이다. 장관은 대국민보고서에서 의료서비스의 오남용을 막기 위하여 일정하게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다른 국민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는 사람으로서 감수해야 할 마땅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인식은 보편성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는 의료보장의 시각에서 볼 때 매우 위험한 발상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동시대를 사는 다른 건강보험 가입자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는데, 만약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는 사람은 차별적 대우를 받아도 된다는 시각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경우 의료급여 뿐 아니라 건강보험 환자도 차별적 대우가 정당화될 수 있다.
오히려 반대의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의료급여도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집합적으로 보호할 뿐 아니라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 일반 국민으로부터 질병이 발생한 일반 국민에게 부를 재분배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기제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의료급여 제도를 국가 또는 사회가 베푸는 시혜쯤으로 이해하고 사회적 낙인을 공식화하는 것은 매우 전근대적인 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다빈도 외래 이용을 도덕적 해이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행위는 용납되기 어렵다. 장관은 공짜로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한다. 건강보험과 비교하면서 건강보험은 외래 방문일수가 14.1일인데 반해 의료급여 1종은 33.8일이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노인인구수 및 중증도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두 집단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건강보험의 14.1일도 선진외국의 방문일수에 비해 월등히 많음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무상의료를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영국은 외래 방문일수가 채 5일도 되지 않는다. 의료급여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환자의 외래 이용이 많은 것은 본인부담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 아니라 행위별로 진료비를 지급하는 현행 행위별수가제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해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차별적 접근을 정당화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욱이 의료급여 개정안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정보와 비교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의료급여 개정안은 의료급여 총진료비의 증가가 대상자의 자연 증가 뿐 아니라 일정 부분 내원일수와 일당진료비의 증가로 표현되는 관리의 비효율성과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는 상황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이루어진 대상자의 자연 증가는 단순히 급여 대상자의 양적 확대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중증도가 높은 만성질환자 및 희귀난치성질환자의 상당수가 의료급여 대상자로 들어오게 되면서 수급권자의 자연 증가가 내원일수 및 일당진료비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실제 최근에 확대된 의료급여 대상자 중 만성신부전환자, 암환자 등 진료비가 많이 발생하는 중증 만성질환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 건강검진을 받는 노인들
또한, 중증도를 보정해도 건강보험 가입자에 비해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의 진료비가 입원 1.2배, 외래 1.48배 높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도 허점이 많다. 입원과 달리 외래는 중증도를 보정하는 방법이 단순하게 질병만 분류하는 방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중증도를 보정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같은 만성신부전증이더라도 중증도에 따라 신장투석의 정도에 따라 큰 차이가 나고 일반적으로 의료급여 대상자는 중증도 비중이 건강보험보다 더 높은 상황에서 질병 분류만 가지고 보정된다면, 의료급여 가입자는 건강보험 환자에 비해 항상 방문일수가 커지는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의료급여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게 되면서 급기야 의료급여 개정안은 전혀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건강생활유지비 지원에 기초한 본인부담금 부과와 선택병의원제의 도입이다. 개정안은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에게 건강생활유지비를 1인당 월 6,000원씩 지급하고 의원에 1,000원, 약국에 500원의 본인부담을 부과한다는 안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시행될 경우 의료급여 환자의 의료기관 접근성은 근본적으로 제약될 것이 명백하다.
특히 복합만성질환자의 경우 그 심각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복합 만성질환자는 진료를 받아야 할 진료과목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3~4개의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본인부담이 6,000원을 훌쩍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기초생활보장대상자로 국가에서 제공받는 20~3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의료급여 환자에게 큰 부담이지 않을 수 없다.또한, 본인부담제와 건강생활유지비는 필요한 양보다 의료서비스를 적게 이용하고 있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혈압, 당뇨병 등 증상이 없어서 치료순응도가 낮은 질환을 앓고 있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건강생활유지비는 다른 용도로 비용을 쓰게 만드는 유인책이 되고, 본인부담금은 의료의 장벽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정부 관료와 일부 학자들은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현금을 주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보건의료 문제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한 것일 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관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 하겠다.
선택병의원제의 경우도 주치의 제도의 장점은 죽이고 부정적 요소만을 극대화한다는 데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개정안은 기본적으로 주치의 제도가 지향하는 바를 왜곡하고 있다. 접근성과 포괄성, 그리고 지속성을 기본 요건으로 하는 일차의료의 긍정성을 거세하고 단지 의료서비스를 통제하는 수단적 역할만을 부각하고 있다. 결국 선택병의원제 방식으로 주치의 제도가 진행될 경우 주치의 제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대상자의 선택에 있어서도 매우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백번 양보하여 특정 대상에게 선택병의원제를 먼저 수행한다고 할 때 주치의가 정말 필요한 대상자는 같은 질환으로 여러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대상자 기준을 정할 때 방문한 의료기관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할 텐데, 개정안은 진료일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특정 주치의를 통해 적절하게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은 의료이용 대상자에 포함되고 정작 주치의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포함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보건복지부에서 제안한 의료급여 개정안은 잘못된 정보에 기초 하에 사회적 낙인 이론에 바탕을 둔 차별적 정책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지금은 의료와 건강의 불형평성 문제가 의료급여수급권자에게 어떻게 응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의료수급권자를 포함하여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접근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지, 그 효과도 의심되는 단기적인 재정 대책을 위해 의료급여 수급권자 전체를 잠재적 범법자이자 문제 집단으로 사회적 낙인을 찍을 때가 아니다. 이미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은 건강보험에 비해 훨씬 과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단기적인 재정 성과에 일희일비하여 의료급여제도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기지 않으려면 말이다.(임준/가천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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