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지 않으면 변호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행정소송 선임비용이 기본 300만원이라고 해 엄두가 나지 않아 변호사 없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선고공판이 끝났을텐데 연말 사고가 나면서 연기되었다. 난 생 처음 해보는 행정소송이라 모든 게 낯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 되어 혼자 소송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현실이다. 이들은 분명 상대적 약자들인데 이런 사람들을 도와줄 변호사를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변호사들의 새치기는 예나지금이나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온 순서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아는데 ‘사법부의 권위’를 들먹이면서 이런 기본도 안 지킨다면 말발 안 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민주적인 사법개혁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의 글을 옮겨왔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는 로펌에 소속되거나 개인사무실을 유지하면서 영리활동을 한다. 즉 변호사는 장사꾼의 방식으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변호사는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활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문제는 변호사 수가 부족하다는 문제와 결합하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즉 극도의 고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한 변호사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독뱀 앞의 새 새끼'들을 이대로 놔둘 건가?
결국 우리 사회에서 법률서비스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제공되고, 특히 경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상대적인 약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법적인 조력을 전혀 받지 못하고 법률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우선 소송과 관련한 분야를 보자. 우리나라에서 형사재판에서 변호인 선임률은 50% 남짓이다. 절반 가까운 형사피고가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형사사건은 막강한 검찰을 원고로 하는 소송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피고는 그야말로 독뱀 앞의 새 새끼라고 할 수 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사회적?경제적 약자임은 말할 것도 없다.
민사소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민사소송의 75% 가량이 변호사의 조력 없이 진행된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원고나 피고가 소송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게 될 것은 명확하고, 이런 이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라고 보아야 한다. 약자가 소송 과정에서 겪는 불이익과 더불어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법률적 불이익이다. 사회생활에서 법률서비스가 요청되는 경우가 반드시 소송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문제는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과 매우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딪히게 되고, 그러한 모든 상황에서 법률적인 조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학생이 교사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옆집 아이가 그 부모에 의해 방치되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세계약이 잘 되었는지 잘못 되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터넷 거래에서 하자가 있는 물건을 받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생활 중 법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그런 문제에 부닥쳤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 법률적 자문을 청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국민은 이러한 일상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법률적인 조력을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그와 같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는 전무하다. 변호사의 입장에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지금의 변호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류의 변호사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공공변호사다.
공공변호사는 처음부터 사적인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공적인 관점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변호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공변호사는 시청?군청?구청이나 경찰서 등에 상근하면서 국민들을 위한 일상적인 법률상담 업무를 하는 변호사다. 공공변호사는 경찰 등 국가기구의 권력남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일상적인 법률문제에 대해 상담해 주며, 간단한 분쟁은 직접 해결해 준다. 또한 간단한 소송의 경우에는 소장 작성을 대행해주는 일도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변호사가 국가와 관련된 법률적 문제에 대해 국가를 위해 자문을 해주거나 소송을 대행해주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 공공변호사 본연의 업무는 어디까지나 국민에게 직접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국민이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 부딪치는 모든 긴박하고 소소한 법률 관련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공공변호사가 소송을 전적으로 대행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간단한 사건의 경우나 특별히 경제적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 한 소송의 대행은 공공변호사의 고유 업무가 아니다. 그리고 복잡한 법률문제는 비용을 들여 사설 변호사를 고용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공변호사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국선변호나 대한법률구조공단의 구조 활동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국선변호사는 그 서비스가 부실하기 그지없기도 하지만, 기껏해야 소송단계에서 피고인에게 조력해주는 데 그치는 제도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이라는 형식으로는 국민에게 친숙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공단은 전국적으로 기껏해야 20개가량의 지부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하며, 주로 검사의 영향 하에 운영되고 있고 전담 변호사도 매우 부족하다. 공공변호사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면 적어도 각 기초자치단체에 변호사가 고용되는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국민이 구청이나 동사무소를 이용하듯이 변호사의 조력을 쉽게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로스쿨이 '공공변호사 배출장치' 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변호사 배출 제도 아래서는 공공변호사 제도를 도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법시험을 통해서는 배출되는 변호사 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공공영역에서 상근으로 근무하려는 변호사를 확보하는 것조차 어렵다. 또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적으로 많은 비용을 치른 사법시험 합격자에게 공공근무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도 않다.
공공변호사 제도 도입을 위해서도 기존의 사법시험 제도는 폐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다면, 우리는 이 제도와 연계하여 공공변호사를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가가 공공변호사의 배출을 염두에 두고 그 수요만큼의 인원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공공변호사를 양성해 배출하면 된다. 이는 공중보건의 배출을 위해 국가가 교육비를 부담하는 것과 같다. 공중보건의 제도에서는 국가의 학자금 지원을 받은 학생은 졸업 후 일정 기간 공공근무를 하게 되고, 국민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공공변호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배출하면 되는 것이다. 로스쿨 제도에서는 많은 수의 변호사를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공변호사 제도를 운영하기에 충분한 수의 변호사를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점이 있다. 로스쿨 제도는 양질의 변호사를 배출하는 강력한 제도로 인정되고 있지만, 한 가지 심각한 결함으로 '고비용 교육'이라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로스쿨 제도가 고비용 교육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이다.
만약 로스쿨에서 공공변호사를 배출하는 한 방식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국가가 장학금을 지급한다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이라면 국비의 도움으로 로스쿨을 졸업한 후 공공변호사로 활동하면 되고, 3년가량의 의무복무 기간 이후에는 자유롭게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공공변호사가 제공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손쉽게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고, 로스쿨을 통한 공공변호사 배출이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가난한 사람도 돈 걱정 없이 법률 공부를 해서 변호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로스쿨 제도가 부자들만의 잔치로 그치지 않게 되고, 한 마디로 일석이조,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에는 로스쿨 제도나 공공변호사 제도가 왜 도입되지 못했을까? 만약 지금도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돈독이 오른 사설 변호사들뿐이리라. (최정학/울산대 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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