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
쥐스트(St. Just)가 남긴 이 말은 한 국가를 지탱해 주는 초석임과 동시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헌법을 훼파하여 천부적 자유를 짓밟은 개인이나 집단에게 헌법상의 지위를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자유민주적기본질서 수호를 절대적 가치로 삼고 있는 현대 선진 민주국가들은 '방어적(수호적)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그 뜻을 구현하고 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와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도처에서 지금까지 이루어 지고 있는 나치전범 및 추종자들에 대한 역사재판의 준거규범도 이 명언에 기초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서구의 선진 민주국가들은 '집단학살범'들과 같은 반헌법적 범죄자들에게도 헌법상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20세기에 진행된 유럽 각국에서 진행된 '공소시효 없는 전범재판'이 전자의 예라면, 독재자들에 대한 종신형 또는 사형 집행은 후자의 예다.
쥐스트가 남긴 이 명언은 20세기를 넘어 새 천년의 역사재판에서도 실효성이 담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어적 민주주의는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독재국가들과는 처음부터 무관하다. 가치지향적 민주주의 그 자체가 '반독재이념'인 만큼 처음부터 독재국가와는 논리적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물론 월드컵을 치렀을 뿐만 아니라,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향해 달리고 있으면서 언필칭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공언하는 대한민국이 헌법적 정의와 방어적 민주주의를 유기하고 있다면 이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대법원이 내란죄 및 내란목적 살인죄(집단살인)로 실형을 확정한 바 있는 전두환에 대한 지도자들의 자세가 그것이다. 전두환 등은 자신들이 집단살인범 등으로 뒤늦게 처벌받게 되자 근거규범인 '헌정질서파괴범죄자 등의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특례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헌법재판소에 내는 파렴치성을 재현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실질적의미의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판결로 전두환 일당은 형법상 집단살인범일 뿐만 아니라 ‘헌정질서파괴범’임이 최고의 헌법기관들에 의하여 명백해 졌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 최소한 종신형을 살고 있으면서 감옥에서 역사와 민족 앞에서 참회하고 있어야 할 자들이 버젓이 국가적 행사장에 초대 되어 뻔뻔스럽게 대우 받으며 여생을 즐기고 있는 현실을 우리 자녀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전두환이 움직일 때 마다 수십명의 보디가드를 거느리며 거들먹 거리는 작태를 수시로 보고 있지 않은가?
이 부조화와 모순의 극치는 현직 대통령들이 이들을 국민주권의 총체적 결정공간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의 집무공간에 초청해 덕담을 나누는 장면이다. YS와 DJ는 공조하여 전두환 일당을 풀어준 장본인들이니 그렇다 쳐도 이후의 대통령들은 전두환과 같은 헌정질서파괴범들을 불러들여 '청와대'를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개인집이 아니라 신성한 '국민주권의 전당'이기 때문이다.
또한 청와대로 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들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전두환을 찾아가 무릎을 꿇어 큰 절을 올리는 행위는 비난을 받아 마땅함을 명심해야 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공인한 집단 학살범이요, 헌정질서파괴범들과 몸을 맞댄 대가를 민족정기가 바로서는 날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지시에 의해 집단으로 죽어간 '5.18국립묘지' 영령들의 민족혼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현실이냐 비현실이냐가 아니라 정도냐 사도냐가 민족의 장래를 좌우하는 관건이다"라는 백범이 남긴 교훈을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때이다. (오마이뉴스에서 인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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