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 서비스를 하는 곳이 ‘근로복지공단’인데 최근 3차 진료기관에서 행한 수술조차도 '불승인'을 하는 일이 잦을 정도로 말썽이 많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이 자주 생긴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국립대학병원에 특별진찰을 보내 놓고는 진찰결과와 정반대의 자문을 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사’들을 보면 그들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자문의사들 역시 3차 진료기관의 임상의사들이자 의과대학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견을 내니 정말 웃지 못할 한심하기 그지없고 당사자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 아닌가?
심지어 같은 대학에 근무하고 같은 대학병원의 같은 과의 동료 의사가 각종 검사를 통해 내린 의학적 소견을 단 10분도 안 되어 뒤집어 버리는 일도 생기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의학적 소견이 다르다면 다시 검사를 해 보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건만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사가 되는 순간 그런 보편적 상식은 어디로 사라지는지 모른다.
난생 처음 해보는 행정소송임에도 변호사 수임료가 너무 비싸고 공공기관의 경우 큰 사건이 아니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담당 직원이 나온다기에 경험 삼아 행정 소송을 해 보려고 법정에 서 봤다. 예전엔 시국 사범 방청 때문에 여러 번 가 봤고, 최근에는 노동 관련 사건으로 방청을 한 일은 있으나 내가 공공기관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해 보기는 생애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오전 2시간에 처리하는 사건이 무려 50건 가까이 된다. 신이 아니고서는 제 아무리 세심하고 꼼꼼한 판사라 할지라도 제대로 판단을 할 시간이 없을 텐데 대한민국 법정에서는 21세기인 지금도 벌어지고 있으니 정말 갑갑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판사들의 직업상 꼼꼼해서 글자 하나 빠트리지 않고 다 읽어본다지만 과연 공정한 재판이 가능할지 지극히 의문이 든다. 다 억울한 사연이 있어 법정까지 왔고, 돈이 없어 나 홀로 소송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한 사건에 주어지는 시간이 겨우 5분 정도, 길면 10분을 넘지 못하는데 무슨 놈의 공판중심주의로 가자는 말인가? 말이 삼권분립이지 권력은 예산이란 무기를 갖고 사법부를 통제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더, 변호사들의 새치기는 예나지금이나 하나도 안 변했다. 사법부가 이 지경이면서 질서를 말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법원 공무원노동조합에 물어 봤더니 제대로 된 재판을 하려면 적어도 판사가 지금의 배는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공무원 감축을 하니 ‘국가 예산 절감이 된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양질의 행정 서비스는 불가능 하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맞다, 다른 인력은 몰라도 수사 기관과 사법부 공무원의 감축이 아니라 즉각적인 인력 증원이 있어야 국민들이 수사 결과와 재판 결과에 최소한의 승복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나의 경우 ‘5분은 넘었고 10분은 조금 못 된 것 같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 한다. 겨우 몇 마디하고 판사가 일방적으로 결심 공판 날짜를 정해주고 끝내 버리는 게 21세기 대한민국 현실이니 정말 갑갑하다. 역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결심을 대한민국 사법부가 하게 해 주었다. 지금의 구조로서는 절대 안 된다.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심어라’고 한 어느 예언자의 말처럼 세상은 바꿔야 한다. (25일 했는데 이제야 올립니다.)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것 (0) | 2006.11.21 |
---|---|
사는 게 뭐라고 묻는다면...... (0) | 2006.11.18 |
"유시민 장관, 당신의 기회주의가 슬픕니다"(2) (0) | 2006.10.20 |
사랑하는 형수에게. (0) | 2006.10.09 |
침묵의 카르텔을 깨자. (0) | 2006.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