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일본에서는 일본 "전쟁 책임론"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까닭이 있습니다. 올해가 1946년 <동경재판> 개정 60주년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경재판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일본의 근현대사를 어떻게 판정할 것이냐는 문제와, 오늘날 일본이 취하고 있는 동아시아 정책의 근본성격을 파악하는 핵심입니다.
동경재판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물어 전범재판과 함께 이른바 A급 전쟁 책임자들을 사형시킨 국제재판입니다. 동경재판에 대해 불만을 가진 측은 대체로 우익으로서, 전쟁에서 이긴 자들이 전쟁에서 패한 자들을 심판대에 올려놓은 부당한 재판이라고 비판합니다. 동경재판 긍정론자들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단죄함으로써 전쟁을 주도한 파시스트세력을 제거하고 현대 일본 민주주의를 세우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부정론자든 긍정론자든 이 재판이 본질적으로 승전국에 의한 패전국 심판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에 더하여 긍정론자들의 경우, A급 전범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본의 군사주의 체제가 아직도 가동하고 있는 근거가 만들어졌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동경재판은 이렇게 오늘날 일본의 역사에 매우 민감한 주제를 던지고 있으며 일본의 미래와 관련해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동경재판에 대한 일본 우익의 생각은 단적으로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아시아 침탈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고 해방시키는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라는 겁니다. 일본의 우익 사상가 오오가와 슈메이(大川周明)가 1942년 집필, 출간한 '미영동아침략사(米英東亞侵略史)'가 다시 각광을 받고 주시되는 까닭도 동경재판의 부당성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 개전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묘하게도 이 일본의 우익과, 그 일본의 우익이 비판하고 있는 미국의 네오콘은 지금 서로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중국을 겨냥한 동아시아 제패를 위해 미-일 동맹체제는 이들의 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일본 우익이 그런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의 극우 네오콘은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들은 우선 베트남 전쟁 이후의 반성과 관련해서 미국의 반전운동이나 진보적 지식인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반성을 놓고 이들은 패배에 대해 너무 자학하지 말고 베트남 전쟁의 교훈을 통해 새로운 승리를 이루는 방도를 찾으라고 역설합니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민족해방 전쟁도 아니고 미국의 식민지 전쟁도 아니며 다만 공산주의자들의 악을 제거하는 데 실패한 전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미국이 자신의 힘을 최대한 쓰는 전략을 갖지 못한 결과라고 진단합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어떻게 그 제3세계의 작은 나라 베트남에게 패전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내부의 비판세력을 최대한 봉쇄하지 못했고 무장력을 극대화시키는 준비와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얼마나 많은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베트남의 자산을 유린했는지, 그 비극으로 인해 오늘날 베트남이 아직도 어려운 처지에서 일어서기에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일체의 반성과 성찰이 없습니다.
미국의 현 부통령 딕 체니, 국방부 장관 럼스펠드, 전 국방부 부장관 월포비츠, 현 유엔대사 존 볼튼 등은 모두 이러한 생각을 가진 네오콘 인사들입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무력으로 미국의 강력한 힘을 과시하여 이를 토대로 미국이 원하는 국제질서를 어떻게든 만들겠다는 제국의 사제 또는 지휘관들입니다.
만일 미국이 베트남 전쟁 이후 동경재판처럼 침략전쟁 국제재판을 받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령, <하노이 재판>이라는 식으로 미국의 베트남 침략사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이루어졌다면 아마도 일본의 우익과 다를 바 없는 논리를 폈을 겁니다. 네오콘은 역사를 강자의 정의와 바로 이 강자에 저항하는 나쁜 자들의 범죄로 구분합니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이고 정의이며 이에 반기를 드는 것은 강자의 국제질서를 교란하는 악마적 행위로 취급합니다. 이것은 종교적 신념과 결부되어 더욱 무서운 심판적 자세를 강화합니다. 여기서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이죠. 그것이 미국의 사명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선택하는 것은 모두 선하고 옳다는 겁니다. 부시가 말했듯이 여기에 "함께 할 것인지 거스를 것인지"만 남게 됩니다. 논리도 폭력적이고 행동도 폭력적입니다. 야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정해놓은 것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독선입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부수적 손실"이라는 말로 가볍게 처리해버립니다.
최근 미국에 가서 책들을 살펴보니 미국 자신의 대외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책들이 쏟아져 나왔더군요. 이건 아니다, 라는 각성이 점차 늘고 있는 겁니다. 이러다가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비난의 표적이 되고 국제적 지도력을 영영 잃고 말겠다는 우려가 있는 겁니다. 그런 네오콘이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동북아 질서에 깊이 개입하여 한반도를 자꾸 전쟁의 길로 이끌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이들 네오콘의 생각에 동조하여 전쟁불사론을 외치는 기이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가공할 모험주의이며 야만을 문명으로 착각하는 위험한 자들입니다.
역사의 진실을 정직하게 볼 수 있을 때 인류에게 정의와 평화가 시작됩니다. 네오콘의 선택을 비판없이 또는 저항없이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주어질 것은 폭력과 야만의 시대일 뿐입니다. 결국 역사는 언젠가 이들을 패자(敗者)로 기록하고 말 것입니다. 동경재판을 비판하며 전범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우익도 지금 기세를 높이고 있지만 그들은 야만의 역사를 주도한 범죄자들에 불과합니다. 의로운 역사는 전쟁주의자들이 찬양받을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겁니다. 또 네오콘의 선전에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평화와 생명을 이들 신나치주의자들의 손에 결코 맡길 수 없습니다. 네오콘은, 영어를 쓰는 나치스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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