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오염된 독일의 분유와 체르노빌 사고

녹색세상 2013. 5. 28. 11:19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하자 독일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체르노빌 사건이 터지자마자 동구라파에서 독일의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모든 화물 차량들에 대한 일체 검문을 시작한 것이다. 화물차 안의 상품들을 검사하기 전에 화물차 자체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는지를 검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규제치 이상으로 방사능물질에 오염된 화물 차량들은 독일 국경에서 모두 되돌려 보내졌다.

 

 

이러한 독일의 민감한 반응은 국경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독일 내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독일 정육점들은 매일같이 그날 들어온 돼지고기, 쇠고기의 방사능 오염 측정치들을 써 붙여 놓아야만 했다. 독일 주부들도 직접 방사능을 측정할 수 있는 간단한 측정기기를 구입하기에 바빴다. 또한 숲속에서 버섯을 채취하는 것도 일체 금지시켰다.

 

독일 국민들은 주말이 되면 식구들과 숲속으로 나가 버섯을 따다 즉석에서 요리를 해먹는 일이 주요한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독일이 체르노빌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독일과 체르노빌은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으로 핵폭발 피해 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우유가 방사능에 오염된 것으로 판명되고 말았다.

 

그러자 이 우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핵발전소에서 희생된 한 두 사람의 시체는 특수 아연관을 만들어서 밀봉시켜 묻을 수 있다지만, 많은 양의 우유를 밀봉시킬 특수 용기를 만든다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논란에 논란을 거듭한 끝에 이 우유들을 분유로 분말화 한 후, 석유를 실어 나르는 원통형 기차 화물칸에 임시 보관하기로 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이 이 분유들을 아프리카에 보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어차피 기아로 굶어 죽는 사람들에게 먹게 하는 것이 굶어 죽도록 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걸 보면 독일이라고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주장은 독일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아 중단되었지만 과연 그 분유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믿겨지지 않겠지만 이 오염된 분유 대부분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파는 쪽에서야 처리 비용 때문에 돈을 주고라도 떠넘길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한국 기업가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사실이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지하철과 언론기관 심지어 방송에서까지 핵발전소가 환상의 깨끗한 에너지원인양 선전해대고 있는 현실에서 방사능 물질로 오염된 분유나 식품들이 수입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방사능 물질중의 하나인 세슘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우리보다 못 산다고 하는 필리핀의 경우에도 분유 속에 세슘 기준치는 22베크렐, 태국은 21베크렐, 싱가포르는 0베크렐이다. 어린 아이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세슘이 분유 속에 들어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89년까지 분유뿐만 아니라 모든 수입 식품에 대한 방사능 규제 기준치조차 없었다.

 

그러니 외국에서 방사능 물질로 오염된 식품을 수입해 오는 기업은 지극히 합법적인 장사를 한 셈이다. 게다가 그들은 방사능 물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식수준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광고로 현혹시키기만 하면 얼마든지 팔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은 항상 옳았다. 인기 있는 광고 모델들이 TV에 나와 선전하는 유제품의 품질을 그대로 믿은 소비자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사주었던 것이다.

 

굶어죽는 아프리카 사람들조차 먹을 수 없는 분유를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비싼 돈을 주고 사다가 식구들에게 먹이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물론, 소비자들만 탓할 일은 아니지만, 어머니들의 무지에 의해 방사능으로 오염된 과자나 유제품을 먹은 아이가 몇 년 또는 십 년, 이십 년 후에 암에 걸렸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누가 그 아이들의 소중한 삶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만약 지금이라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방사능 물질에 관한 대책을 철저하게 세워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까지 죽음을 강요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떠밀려가고 말 것이다. (‘환경에 관한 오해와 거짓말이항규,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