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배우 이은주를 통해 돌아본 정신과 질환에 대한 편견

녹색세상 2010. 12. 13. 07:43

‘정신질환자의 소행’이라는 언론의 왜곡 발표


무슨 대형 사고가 나면 언론에는 꼭 ‘정신이상자의 소행’이라고 기자들이 말합니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대구 중앙로역 방화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수사본부장이었던 대구경찰청 수사과장이 ‘정신이상자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가 모 의대 정신과 교수가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주체하기 힘들어 일반인 보다 사고 발생률이 절반 이하다”고 방송을 통해 발표하자 ‘잘못되었다’며 정정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정신과에 치료받으러 간다’면 예전과는 달리 ‘마음고생이 많겠구나’고 위로 하지만 아직도 ‘미친 병’이란 편견이 남아 있어 아픈 사람들에게 다시 상처를 줍니다. 인기가 있던 배우 이은주 씨가 앓았던 우울증은 우리 국민 5명 가운에 1명이 앓을 정도로 흔한 정신과 질환입니다. 20퍼센트가 앓는 병이라면 누구라도 앓을 수 있습니다. 복지제도가 발달한 북서유럽은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항우울제가 많이 팔리고, 우리나라는 내성이 생기는 항생제가 많이 팔린다는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정신과의 약이 많이 팔리는 것은 그 지역의 특성도 있겠지만 마음의 병인 정신과 질환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란 증거 아닌가요? 모든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사지만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은 원내처방을 합니다. 약국에서 구입 할 경우 ‘환자의 정보를 유출할 우려가 있다’는 정신과 의사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값을 통해 일부 수익을 더 남기려는 개원의사들의 이해와 환자 보호가 서로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6년 넘게 앓고 있는 불면증 환자의 고통


저는 6년 넘게 불면증을 앓고 있어 정신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잡니다. 잠을 못자는 만큼 심한 고통이 없습니다.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는 고문이 ‘잠 안 재우기’라고 하죠. 한명숙 전 총리가 ‘비리로 연루되었다’는 엉터리 사건의 증인에게 검찰이 써 먹은 수법이 이와 비슷합니다. 2003년 말부터 잠자기가 불편하고 뭔가 가슴에 막힌 것 같았습니다. 수시로 달고 사는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건조한 계절이면 자주 병원을 들락거립니다.


그런데 주치의사인 후배는 ‘증상이 심하지 않다. 100점은 아니지만 85~90점 정도 되니 약물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는데 제가 견디기 힘들어 하자 다음 해 3월 “형님, 제가 아는 정신과에 가 보시렵니까? 그게 가장 좋은 치료방법 같습니다.”는 후배의 말에 정신과를 찾아갔습니다. 심리검사와 스트레스수치 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 의사는 “스트레스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다. 경과를 지켜보자”며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매주 한 번씩 갔는데 네 번째 가자 “우울증과 외상 후 장애, 공황장애가  일부 있다”며 “개인의 특성도 일부 있지만 사고가 겹치면서 발생한 비율이 매우 높다. 6개월 가까이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며 조심스레 말을 건네더군요. ‘사고가 겹쳐서 발생한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산재신청을 위해 지정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담당의사 역시 “초진 의사의 소견이 맞지만 혹시 다른 원인이 있을지 모르니 검사를 하고 경과를 지켜보자”며 조금 복잡한 심리검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힘들게 받은 산재요양 승인


역시 4번째 갔을 무렵 “겹친 사고로 인해 외상 후 장애와 공황장애, 그로 인한 우울증 때문에 잠도 자기 힘들고, 잠을 자면서 고통을 겪는다”며 산재요양 신청서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경북대병원으로 특진을 받으라는 하더군요. 다른 병은 다 빠지고 ‘우울증 에피소드’라며 초진 3개월 요양을 승인해 주었습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나긴 투병에 들어갔습니다. 산재상담소의 실무자는 ‘이런 경우는 기적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정신과 질환 승인은 힘듭니다.


저를 검사한 경북대병원 정신과 과장은 대구의료원 담당의사의 대학 1년 후배라 동업자인 선배의 소견을 뒤집기 힘들었으리란 생각도 듭니다. 더구나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사를 오래해 산재요양과 관련해 ‘짠돌이’로 소문난 의사였으니까요. 대구의료원에 처음 갔을 때는 “뭐 이런 병으로 왔어요. 아저씨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며 진료를 거부한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남도 아닌 정신과 의사란 자가 환자에게 진료받을 권리마저 거부하는 상식 이하의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의욕이 떨어져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몸을 주체하기 힘드니 모든 일이 귀찮죠. 하루라도 빨리 나으라고 한방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후유증으로 불면증이 남아 있는데 얼마나 더 갈지 몰라 벗 삼아 지냅니다. ‘정신과 치료받는다’고 하면 아직도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확인사살 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지금이라도 약 안 먹고 편하게 잠을 자 보는 게 제 소원입니다. 7년 가까이 되는 지난 세월이 끔찍하기만 합니다.


덧 글: 사회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분석치료라고 부르는 상담이 건강보험 비급여라 돈이 없는 사람은 약물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장기투병으로 이어지는 게 가슴 아픈 의료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