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타워크레인과 한강다리에 올라 간 독문학도의 피눈물

녹색세상 2010. 4. 10. 00:13

한강다리와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독문학도들


지난 4월8일 중앙대 약학대학 신축공사장의 타워크레인에서 독문과 학생이 고공농성을 벌였다. 바로 전에는 한강대교 위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던 학생들이 모두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날은 중앙대 재단이사회가 교수와 학생, 대학평의회의 격렬한 반대에도 대학 구조조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날이기도 했다. 대학이 ‘취업학교로 전락’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20대 청춘들은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던졌다. 아직 우리 청년학생들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다.

 

▲ 8일 오전 중앙대학교 학생 2명이 한강대교 남단 첫 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는 구호가 적힌 대형 펼침막을 내걸고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사진: 오마이뉴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대학이 기초학문을 내팽개치고 오직 취업을 위한 기능인 양성소로 전락하도록 방치한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기초학문이 없는 대학은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문사회적인 소양이 없는 학문은 자본과 권력의 이익 추구에만 골몰할 뿐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는 차가운 인간을 만들어 낸다. 한강대교는 바람이 불면 강으로 추락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곳이다. 오죽하면 위험을 각오하고 그 위에 올라갔을지 짐작이 간다.


중앙대 내 건물 신축공사장의 타워크레인은 무려 30미터가 넘는 고공이다. 바람이 잦은 봄이면 거기에서 일하는 기사들조차 겁을 내는 곳이다. 그 곳에 올라간 독문과 학생의 영혼은 절망으로 범람했을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중앙대 독문과는 기묘한 학문적 수난의 무대가 되고 있다. 학문적 역량과 무관하게 진중권 겸임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발군의 연구업적을 축적했던 독일연구소가 학진 공모사업에서 배제되더니, 이제는 학과마저 해체될 상황에 빠져 있다.

 


농성한 학생에게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중앙대재단


독문학도의 작은 몸부림에 신축사업단장은 “점거 농성으로 공사가 중지 된 것을 파악해 당사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말을 뱉었다. 대학에서 학생을 상대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항의의 표시로 점거 농성을 할 때 자본이 써 먹는 ‘손해배상 가압류’ 수법을 대학이 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망발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건희에게 학위장사 하는 것을 항의한 학생들을 영원히 학교에서 추방하기 위해 ‘출교’를 한 고려대학교와 똑 같은 짓이다.


두산재벌이 인수한 후 지침만 내리면 기계처럼 움직이는 천박한 기업경영 방식을 대학 운영에 도입했다. 선출제인 총장도 이사장의 한 마디에 임명제로 바뀌는 등 대학의 민주주의는 실종하고 말았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인 학내 언론은 지원금을 끊어 원천봉쇄 시켜버렸다. 눈에 보이는 건물만 올라갈 뿐 대학이 가진 기본 소양과 구성원 상호 간의 소통은 사라지고 말았다. 정보산업화 시대에 콘크리트에 돈을 퍼부어 대는 천박한 자본의 미친 칼춤이 판을 치고 있다.

 

외환위기 전후인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대학이 가진 교양의 이념은 거세되고 인적자원 논리가 국가와 기업의 호위 속에 대학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직업훈련 개념의 대학교육과 연결되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기에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지난 10년의 민주정부가 자본에 사로잡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며 국립대법인화까지 들고 나왔다. 대학 죽이기는 김대중 정권 때부터 시작되었고 참여정부는 더 심했음을 기억한다. 지금은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다.


덧 글: 노무현 정권 때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바꾼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전 국민의 지식인화’를 내건 프랑스 교육부와는 달리 국가가 사람을 자원으로 보고 있음을 노골적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