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천안함 침몰에 군기까지 침몰…A급 경계 속 공군 늑장 출동

녹색세상 2010. 4. 6. 15:11

사고전후 속속 드러나는 군대의 허술한 대응

초병 상황기록 엉망…합참의장과 비상연락망 두절 의혹까지


천안함이 침몰하는 그날 밤 대체 어느 군인이 제대로 근무했는지 의문이다. 천안함 침몰 사고 원인은 조사가 끝나면 밝혀지겠지만 그 전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간 군의 해명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사고 발생 전후 군의 대처 과정을 보면 규정을 무시하고 기강이 흐트러진 정황이 한둘이 아니다. 사고 당일인 26일 밤 군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짚어 봤다. 이기식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은 5일 브리핑에서 “천안함 침몰 즉시 해군 2함대 사령관이 전군에 합동 작전을 할 수 있는 A급 조치를 발령했다”고 밝혔다.

 

▲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서남방 1.8㎞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 옹진군청 제공)


A급 조치는 서풍1로 적 도발 위기에 대비해 작전 예규에 명시돼 있는 가장 강도 높은 조치다. 하지만 서산공군기지(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F16편대가 출격한 것은 오후 10시40분께다. 군이 공식 발표한 사고 시각 9시22분께보다 1시간 이상 늦다. 보통 5분 이내에 출격하는 공군으로서는 이례적이다. 또한 국방부가 이날 배포한 자료를 보면 청주헬기기지(공군 6전대)에서 구조헬기가 상부 지시 후 1시간40분이 지난 11시40분께 사고 수역에 도착했다고 돼 있다.



공군 지휘부의 지시가 10시께야 내려졌다는 얘기다. 합참이 ‘서풍1 발령’ 및 전군 상황 전파를 늦게 했거나, 공군이 합참의 지시를 뭉개다가 시간이 지났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군의 기강이 엉망이란 말이다. 이에 대해 합참은 “서풍1 발령 시각은 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지만 군은 신속하게 대응했다”고 공군에 책임을 떠넘겼다. 반면 공군은 “새떼는 공군 레이더망에 잡힐 정도로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속초함이 미상의 물체를 포착할 때까지 기다리느라 출격이 늦었다”는 입장이다.

 


백령도 해병대 병사들은 정신없다?


하지만 공군이 지난해 5월과 10월 새떼를 오인해 군사분계선(MDL) 인근으로 출동하는 등 비상출격이 잦았던 점에 비춰 보면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 속초함이 미상의 물체를 발견한 것이 10시55분께로 공군 전투기 출격 시각보다 15분 늦은 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말을 감추려다 보니 수시로 말이 바뀌고 앞뒤가 맞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군은 백령도 해안 경비병이 사고 당일 밤 폭발음을 듣고 열상감시장비(TOD) 녹화를 시작했다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TOD는 야간 근무 내내 녹화 상태로 켜져 있어야 하는 장비다. 근무수칙을 어겼거나 군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TOD 화면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최초로 폭발음을 들었다는 해안초소 초병이 진술을 번복한 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4일 “이 병사가 9시45분께 보고하면서 사고 발생 시각을 10시16분께로 잘못 적었다가 지적을 받고 다시 9시16분께로 정정한 것”이라며 “미숙한 점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사안에 대해 초병이 과연 1시간을 틀리게 적어 제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교신 기록이 없다는 대한민국 해군의 통신망


군은 4일 오후 브리핑에서 “사고 3분 전인 9시19분께 천안함이 해군 2함대 사령부와 일상적 교신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통신망을 통한 교신인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저녁 기자간담회에서 “국제상선통신망을 이용한 교신이었다”며 “군 통신망에는 사고 전 교신 기록이 없다”고 설명했다. 군대가 군통신망에 교신 기록이 없다는 말은 사고 자체를 감추어야 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란 증거다.


군 교신 내용은 모두 녹음하도록 돼 있고, 이번 사고의 원인을 해결하는 중요한 단초라고 할 수 있는데도 군은 이런 핵심 증거가 없는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군은 5일 “군 통신망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하나만 볼 게 아니고 다른 것들을 같이 봐야 하기 때문에 검토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 달라”고 말을 바꿨다. 사고 발생 시간부터 수시로 말을 바꾸는 등 군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따라서 사고 당일 군이 교신 기록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이후 조사에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김 장관은 4일 “해군작전사령관이 이상의 합참의장과 연락이 닿지 않아 내게 전화가 왔고, 사격 여부를 물어 보기에 사격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합참은 이에 대해 “당시 이 의장이 대전에서 열린 군 토론회를 주재하고 KTX편으로 상경하는 길이었다”고 했다가 “국방부 지하 지휘통제실에서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고 해명을 바꿨다. 하지만 어느 쪽도 유사시 합참의장이 부재했던 사실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작전 지휘를 해야 할 합참의장은 언제나 연락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긴급한 사정이 생겨 합참의장이 연락을 받을 수 없다면 차장과 통화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비상 상황에 대비를 하지 않았다면 지휘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수시로 말을 바꾸더니 합참도 말 뒤집는 걸 예사로 하며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밥값도 못하는 군인들은 필요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의 지휘 체계를 점검하고 관련자들을 엄중문책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