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원인과 대처 방식을 놓고 청와대와 국방부가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지난 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첫 질의자로 나선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의 질문에 “두 가지 다 가능성이 있지만 어뢰 가능성이 더 실질적”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자인 정옥임 의원의 질의에 와서 뉘앙스가 달라졌다. 김 장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 ‘저것은 어뢰, 이것은 기뢰’라는 식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을 바꿨다.
▲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이명박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30일 오후, 천안함 침몰 사건 현장인 백령도를 방문해 실종자 가족이 탑승한 광양함에 올라 장병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신문)
다음날 언론은 ‘어뢰 가능성’을 언급한 김 장관의 발언을 대서특필하면서도 김 장관의 모순된 발언을 지적했다. 두 답변 사이 김 장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카메라에 단서가 포착됐다. 김 장관은 이 때 모종의 메모를 읽고 있었다. 문제의 메모에는 “VIP께서 외교안보수석(국방비서관)을 통해 답변이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 사고원인은 침몰 초계함을 건져봐야 알 수 있으며 지금으로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고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는다고 말씀해 달라”고 적혀 있다.
메모 내용만 놓고 보면 김 장관이 어뢰 피격 등 북한군 개입 가능성을 강하게 언급하자 ‘VIP(이명박 대통령)’가 수위 조절을 주문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지시한 게 아니라 국방비서관이 TV로 답변을 보다가 우려스러운 면이 있어 입장을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국방비서관이 “감히 VIP”를 언급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청와대 해명을 사실로 전제하더라도 청와대 참모진이 국방부에 수위 조절을 요청했다는 것은 청와대가 국방부의 답변 하나하나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를 방증한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이는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든 아니든 청와대와 국방부의 시각차가 그만큼 크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국방부는 어뢰설에 무게를 싣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청와대는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 개입설로 몰고 간다 할지라도 정치적인 부담이 크다는 증거다.
핵심은 북한 개입설의 사실 여부인데 어느 경우에도 청와대와 국방부 둘 중 하나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뢰 피격이 단순한 정황이 아니라 근거있는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사건을 축소한 것이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국방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건을 왜곡한 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이 너무 심하게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거나, 적당히 주물리려다 후폭풍이 너무 커 부담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덧 글: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침몰해 구조작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주무 장관인 김태영 국방장관은 ‘국방발전 심포지움’에 참석해 기조 강연을 했다. 사고 수습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태평스럽게도 강연하러 갔다는 것 자체가 기강이 무너져 있다는 증거다. 김태영에 대해 엄중문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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