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지지 기반인 강남 한복판에서 쓴 소리 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좌파 주지’ 발언으로 뚜렷하게 불거지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불교계에 적대적 태도를 보인 사례는 적지 않다. 조계종 총무원의 핵심 관계자는 “흔히 종교 편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편향이란 그나마 중심을 어느 정도는 유지한 채 한쪽으로 쏠린 것을 말한다. 이명박 정권은 편향된 것이 아니라 개신교와 불교를 명백히 차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교계의 불만이 압축적으로 표현된 발언이다.
이명박 정권과 불교의 불화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안 원내대표가 서울 봉은사를 특정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안 대표는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그대로 놔둬서야 되겠느냐”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 잡은 봉은사는 794년 통일신라 때 세워졌다. 명진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것은 2006년. 봉은사의 규모는 그때부터 빠른 속도로 커져갔다. 신도 수도 약 20만 명에서 25만 명까지 늘어,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최대 규모의 사찰로 꼽힌다.
정치적으로는 수구 우익에, 종교적으로는 개신교에 뿌리를 둔 이명박 정권이 볼 때 봉은사는 확실히 이질적 공간이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특히 주지인 명진 스님은 여러 신도가 모인 자리에서 거침없이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조계종 종단 개혁의 선봉장답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쓴 소리를 했다. 그는 봉은사 사태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3월21일 봉은사 일요법회에서도 안 원내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나라가 세종시로, 4대강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데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국회의원이 남의 종단 수장을 불러내 주지를 바꿔라 마라. 시정잡배도 이런 짓 안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명진 스님은 정권의 종교 차별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물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반도 대운하, 용산 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그때마다 단호하게 정권을 비판해왔다.
봉은사 핵심 관계자는 “봉은사 직영 전환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청와대 안팎으로부터 봉은사에 압력이 들어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며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회 각 분야에서 좌파 척결을 강조해온 현 정권이 볼 때 강남 한복판에 있는 봉은사가 보기 싫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의 시각에서 봉은사가 이질적 공간이라고 말한 또 다른 배경도 있다. 이명박 정권의 핵심 지지층 밀집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서울 강남에서 봉은사처럼 ‘정권 비판의 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곳은 거의 없다.
‘대한민국 정치ㆍ사회 지도-수도권편’을 보면, 수도권에서 종교 인구 비율과 정당별 득표율이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2004년 17대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 518개 동네 가운데 '한나라당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의 종교 형태를 살펴보면 천주교 신자(26%)와 개신교 신자(24%)가 절반을 차지했다. 불교 인구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반대로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에서는 천주교 비율(15%)이 크게 떨어졌고 불교 신자 비율(18%)은 올라갔다. 개신교 비율(21%)도 강남보다는 낮았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민주당 지지가 높은 지역으로 갈수록 불교 신자가 많고, 한나라당 지지가 높은 지역으로 갈수록 불교 신자가 적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한나라당 입장에서 ‘표가 되는 쪽’은 기독교 신자이지 불교 신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불교 신자의 연령층이 높고 영남 출신이 많아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다는 속설과는 다른 결과다. 그런 탓인지 농촌지역의 한나라당 조직도 기독교인들이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뜩이나 지지율 낮은 불교계에서…
1월26일 불교미래사회연구소(소장 법안)가 발표한 ‘조계종 교구 활성화 방안 연구’보고서도 주목할 만하다. 보고서를 보면 서울의 경우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은 모두 236개였다. 보고서는 강북 인구(500만여 명)보다 강남 인구(520만여 명)가 많은데도, 사찰의 71%가 강북에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강남에 있는 사찰은 69개 뿐이다. 이상효 불교미래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서울 25개 구의 종교 인구 비율을 분석해보면 동대문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개신교보다 불교 인구가 적게는 3%포인트, 많게는 18%포인트 적게 나타났다”고 했다.
“특히 서울의 빅4 지역으로 분류되는 서초구와 강남구, 송파구, 양천구 등 부가 집중된 지역에서는 개신교뿐만 아니라 천주교까지 불교를 추월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서울 서초ㆍ강남ㆍ송파ㆍ양천구 등에서 불교가 특히 약세를 보이는 이유를 종교 인구와 직업의 상관관계에서 찾고 있다. 2009년 7월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서 발표한 ‘2009년 상장사 임원 현황’ 자료를 보면 2009년 7월1일 현재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은 모두 1029개사였고 재직 임원은 7750명이었다.
전체 대표이사의 35.4%가 서울에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고, 이 가운데 강남구 거주자가 가장 많았다(18.2%). 보고서는 “천주교는 직업 대분류에서 의회의원, 고위 임직원 및 관리자, 전문가, 기술공 및 준전문가, 사무종사자 등 직업군에서 다른 종교인보다 높은 비율을 점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비춰볼 때 지역과 지역, 종교 간의 상관관계에 따른 계층적 분화가 더욱 고도화될 것으로 예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개의 보고서를 종합하면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 그 가운데서도 강남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가진 이명박 정권이 볼 때 강남의 불교세는 기독교보다 미약하고 사찰도 많지 않다. 게다가 2007년 대선 때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지지를 보낸 개신교와 달리 불교 신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에서는 여당 지지율이 낮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의 대표적 사찰인 봉은사에서 정권 비판의 메시지가 꾸준히 흘러나오니 여권 핵심 인사에게는 불편했을 수 있다.
수경ㆍ월정…또 다른 표적은?
봉은사 핵심 관계자는 “사회 전방위적으로 좌파 척결 바람이 불며 불교계에서는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가까운 월정사 정념 스님, 4대강에 앞장서서 반대해온 화계사 수경 스님, 한나라당의 텃밭인 강남에서 정권을 향해 가장 날선 비판을 가해온 봉은사 명진 스님이 타킷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며 “이런 와중에 갑작스레 조계종 총무원으로부터 봉은사 직영 전환 방침이 전달된 것이어서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한나라당, 조계종 중앙종회는 모르쇠와 뭉개기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조계종의 바로 세운 의로운 승려들을 솎아내려는 음모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동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권으로부터 압력을 받았거나 모종의 거래가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 종교의 정체성마저 부정당하는 처지에 침묵하는 불교 조계종 실세들의 처신이 의아스럽기만 하다. 자승 총무원장 선출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니 짐작가는 구석이 한 두 곳이 아니다.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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