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한겨레와 경향’마저 삼성 앞에 작아지는가?

녹색세상 2010. 2. 18. 19:22

권력은 비판하면서 삼성 앞에 움츠린 ‘침묵의 밀약’ 

‘삼성 비판’ 광고ㆍ글 볼 수 없어…내부 반발 움직임도

 


삼성 문제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저서 ‘삼성을 생각하다’에 대한 삼성 측의 압력행사 정황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보수신문뿐만 아니라 진보성향의 신문에서도 이 책을 소개하는 기사나 광고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김 변호사가 지난 1997년부터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법무팀장으로 일하면서 느낀 소회와 지난 2007년 기자회견부터 재판 결과까지의 뒷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조중동 이어 경향까지 광고 거절…한겨레는 3.5배 가격 불러


하지만 지난달 29일 이 책을 펴낸 사회평론 측은 그동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 경향신문, 매일경제와 무료신문인 메트> 등 주요 일간지에 광고 게재를 요청했지만, “책 내용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한 바 있다. ‘한겨레’역시 광고단가를 지나지게 높게 제시하면서, 사실상 광고를 거부했다. 진보성향의 신문까지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에 소극적인 태도를 두고, 2년 넘게 계속 되어온 ‘삼성그룹 광고 중단 사태’가 해빙무드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느낀 부담감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삼성을 생각하다’의 저자 김용철 변호사 (사진: 미디어오늘)


이승필 사회평론 팀장은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한겨레의 경우 ‘2월 첫째 주에 광고가 꽉 차 책 광고가 어렵다’고 했다”며 “1주일 뒤 다시 연락을 하니 ‘민감한 광고이기에 출판광고 단가가 아니라, 기업광고에 적용하는 단가로 받아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기존의 단가에 비해 3.5배나 높은 금액이기 때문에, 한겨레에 광고를 할지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라며 “경향신문에도 지난 주에 광고 게재를 요청했지만, ‘삼성과의 과도기적인 상황이다. 광고가 부담스럽다’며 광고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지난 2일에는 이날 경향신문에 실린 ‘삼성을 생각한다’ 소개 기사가 온라인 홈페이지인 ‘경향닷컴’에서 삭제되고, 포털사이트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에 당시 경향닷컴 측은 “윗선의 결정”이라는 입장을, 경향신문 측은 “경향닷컴과 의사소통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며,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살아 있는 이명박 정권을 향해 비판의 칼날을 세우면서 삼성 앞에서는 알아서 기는 형국이다.


또 최근에는 ‘삼성을 생각한다’를 소개하면서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칼럼 게재를 ‘경향신문’이 거부한 사태도 벌어졌다. 지난해 말부터 3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써 온 기명칼럼이다. 경향신문에서 김 교수가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소개하면서 ‘삼성 및 이건희 전 회장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 신문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된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물론 필자인 김상봉 교수는 거절했으나 경향신문은 끝내 칼럼 지면을 다른 글로 채웠다.


삼성 ‘전혀 간여하지 않았다’


보수신문부터 진보성향의 신문들까지 거대한 ‘침묵의 밀약’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삼성 측은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삼성그룹 홍보팀의 한 간부는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일부 언론사에 이 책에 대한 입장을 전달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으며, ‘삼성이 이 책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낼 것’이라는 세간의 소문에 대해서는 “그럴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에 대해 신문사 내부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의 막내인 47기 기자들은 17일 성명을 내고 “삼성에 대한 편집방침이 무엇인지 소상하게 밝혀주시기 바란다”며 사측의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기자들은 18일 오후 기자총회 열 예정이서, 어떤 논의들이 오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기범 기자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에서 “가진 자들은 '돈줄'을 쥐락펴락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한다”며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신념을 굽히게 되면 내면에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쌓이게 되고, 결국 자존감은 낮아지고 통치자에 맞서지 못하는 비굴한 피지배자, 노예근성이 자라난다.”고 비판했다.


김 기자는 이어 “어느 사회학자가 그랬던가. 노예들은 자신의 생존이 주인의 삶이 성공하느냐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고 말이다”며 “칼럼의 난을 겪고 있는 ‘경향신문’의 앞날과 더불어,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건강성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이다”며 심경을 밝혔다. 광고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왜곡된 신문 시장 현실을 인정한다 해도 정론 보도마저 하지 않는다면 그 동안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독자들로부터 받은 사랑대신 달콤한 사탕을 선택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도덕성 문제 아니라는 의견도


이번 사태에 대해, 해당 언론사의 ‘도덕성’ 문제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를 표방하는 신문에서조차 김용철 변호사 저서 광고가 실리지 않는 상황에 대해, ‘언론 본연의 자세를 잊었다’는 식의 비판을 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사 직전에 처한 신문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자는 변명으로 들린다.


그는 이어 “<한겨레>, <경향신문>도 물적 토대가 있어야 역할을 할 수 있다. 굶어 죽기 직전인 사람에게 도덕성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현재 신문시장은 조중동 등의 족벌언론들에 의해서 황폐화되어 있는데, 왜곡된 신문유통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조승호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정치 권력보다 경제 권력이 우월한 상황에서 진보언론조차 삼성 등 주요 광고주들을 마음 놓고 비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삼성 같은 천박한 자본 앞에 저자세를 취하면 굴욕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레디앙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