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일본왕 가면은 보호’하고 ‘살림챙긴 오병윤’은 체포영장

녹색세상 2010. 2. 9. 09:11

압수수색 당시 하드디스크 2개 빼돌린 혐의


전교조ㆍ전공노 조합원의 정치활동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9일 민주노동당 서버를 압수수색할 당시 당원들의 투표 내역 등이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빼돌린 혐의(증거인멸 등)로 오병윤 민노당 사무총장에 대해 법원에 체포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았다. 쉽게 말하면 자기 살림살이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물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감춘 것이다. 살림살이 책임자로서 조직원들의 비밀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한 것이지 ‘빼 돌렸다’는 말은 경찰의 무식하기 그지없는 억지다.

 

 

▲ 새날희망연대와 동아시아역사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진흥재단 앞에서 ‘일왕 방한 반대 시민사회단체 연대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경찰이 한 회원이 쓰고 있던 아키히토 일왕의 사진 가면을 빼앗아 가고 있다. 이들은 일왕에게 방한에 앞서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ㆍ반성하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즉각 돌려줄 것을 촉구했다. (사진:한겨레신문)


경찰에 따르면 오 사무총장은 지난 4∼7일 경찰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 KT 인터넷데이터센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때 서버 관리업체 S사 직원한테서 전교조ㆍ전공노 조합원들의 당직자 투표 여부를 보여주는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 2개를 전달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미 직접 인터넷데이터센터 4층 서버관리실에 들어가 하드디스크를 빼돌린 서버 관리업체 직원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서버 관리업체 직원 역시 자신들이 관리 책임이 있으니 주인에게 준 것이다.

 


경찰은 하드디스크를 건네받은 오 사무총장 외에 A씨에게 증거인멸을 직접 지시한 민노당 관계자가 2∼3명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이들의 신원을 확인해 체포영장 신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당 사무실에 난입해 당원들의 명부와 각종 투표 결과 등 모든 내용을 강탈해간 경찰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빼 돌렸다’는 억지를 쓰고 있다. 정당의 압수수생은 헌정사상 유래없는 것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법원도 비난을 면할 수 없다.

 

▲ 경찰은 지난 7일 오전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당직자의 저항을 뚫고 당 주요 정보가 담긴 서버의 강제 압수수색을 실행했다. 이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사진: 진보정치)


더욱이 정당의 사무총장이면 신원이 확실한데 체포영장까지 발부한 것은 법 이전에 상식 이하의 짓이다. 법원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고 있다는 증거다. 사법부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것이란 비난을 면치 못하게 생겼다. 경찰은 지난해 말 민노당 투표사이트 접속을 통해 전교조ㆍ전공노 조합원 120명이 민노당에 가입한 사실을 파악한 데 이어 이들이 민노당 당직자 투표에 참여하는 등 정치활동을 했는지 확인하고자 압수수색을 한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을 저질렀다.


아직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은 일본왕 방문 반대 시위 때 가면까지 빼앗아 친절하게 보호하는 경찰이 정당을 침탈한 폭거는 너무 대조적이다. 공안검찰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불리하자 충견 노릇을 하려고 저지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다.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한나라당 내부 논란의 여론도 잠재우고, 시끄러운 야당도 손보자는 속셈이 빤히 보인다. 이런 무식한 수사가 오히려 똘똘 뭉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니 표창을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