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ㆍ정운찬ㆍ정몽준ㆍ김문수 그리고 이명박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처하라’고 했다. 세종시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주문은 흡사 50년대 한일전 원정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향한 감독의 말과 같다. 뒤에 숨겨진 말은 행여나 ‘승부가 틀어지면 함께 죽자’쯤 될 것이다. 합리적인 토론과 절차적인 정당함에 근거하여 추진하면 그 뿐일 정책 수행 과정이 ‘의연’과 ‘당당’이라고 하는 지사같은 비장함으로 과포장되는 상항은 그렇다. 세종시가 이미 합리성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 지난 12월 27일 전국 35개 방송사에서 생중계된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 모습(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역사와의 대화, 국가의 백년지계를 유독 강조하고 있는 MB의 수사는 그 자체로 이성에서 많이 일탈한 초조한 자기감정의 과잉된 고백일 뿐이다. 언젠가 MB의 세종시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어쩔 수 없이 정치 공학 차원의 전개와 결론을 맺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상황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 박근혜를 견제하기 위해 세종시를 던지고, 정운찬을 ‘일회용 구원투수’로 기용했던 것인데, 그 전장은 이제 김문수와 정몽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MB주최 ‘세종시 쟁탈배’ 정치의 속셈대회가 열린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MB는 물론 누구도 최소한 당분간은 세종시를 해결할 수 없다. 세종시를 어정쩡한 상태로 두고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사태를 이젠 이명박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막을 수 없다. 시간이 없다. 정운찬은 선거에 털끝만큼의 도움도 되지 않을 테고, 정몽준은 표를 몰아올 능력이 거의 없다. 박근혜는 MB에 협력할 명분을 잃었고, 김문수는 벌써 ‘표로 심판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금 아귀의 전쟁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수도를 지키게 된 수도권이 환호작약하고 있는가, 그건 또 천만의 말씀이다. 폭설에 대한 대응 체계의 후진성을 절절하게 체감한 서울과 그 주변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뇌까리고 있다. ‘서울에 사람이 너무 많이 산다.’ 노무현의 대연정이 그러했듯, 세종시 원안 백지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시도였다. 온전히 대통령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남 탓 할 수 있는 일방적으로 대통령에게만 좋은 정치 상황을 꿈꾸는 것 까지는 자유일지 모른다.
그 현실적 대가가 가혹하다 할 만큼 냉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일 테다. 막이 오른 세종시 대회전, 퇴로가 없는 그 가파른 벼랑 끝에서 MB, 박근혜, 정운찬, 정몽준, 김문수는 오로지 생존을 위한 활강에 돌입했다. 벼랑 끝에 떠밀린 모두가 이런 치명적 정치 상황이 이렇게 일찍 왔는지 되묻고 싶겠지만 어쩔 수 없다. 싸우고 말고는 자신들의 몫이다. 집권 3년차를 임기의 한 복판이라 고쳐 부르는 이명박의 가장 큰 적은 누가 뭐래도 시간이다. 뭐라고 부르던 시간은 공정히 흐르는데 지방선거 국면이 이제 채 2달도 남지 않았다.
그나마 MB를 지켜주던 지역의 분할 구도가 야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에 의해서 갈라질 참이니, 가뜩이나 협소한 지지층을 가진 그로썬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 찾아올 고립과 권력 누수가 벌써부터 뼈저리게 와 닿을 것이다. 원칙을 지킨다는 득점을 하긴 했지만, 박근혜 입장에서도 세종시는 찾아오지 말았어야 할 쟁점이었다. 친이계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박근혜에게 묻자고 덤벼들 것이다.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수첩공주가 독해하기엔 복잡한 국면이 찾아올 수도 있다.
반면, 뜻하지 않게 운명공동체가 되어버린 정운찬과 정몽준은 함께 꾸는 큰 꿈이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자칫 세종시의 삽질에 묻힐 수도 있는 기회 박탈의 기로에 서 있다. 김문수의 경우 아직은 오리무중이라 조금 묘하기 한데, 그는 아직 경기도지사 재선이냐 아니면 대권으로의 직행이냐를 결정하지 못한 것 같다. 만약 그의 그림이 후자에 있을 경우 ‘표로 심판하겠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세종시에 의한 세종시를 위한 세종시의 투사로 만들지도 모르겠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건 이인제의 운명이 되겠지만. 세종시를 두고, 종편 사업자 선정은 미뤄둔 채 4대강 삽만 뜬 상태에서 맞는 지방선거라, 한나라당 선거 전략팀의 과로가 벌써 염려스러워진다. 한나라당 내 역학관계는 물론이려니와 친박연대를 감안한다면 수첩공주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밑져봤자 본전인 박근혜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챙길 이익이 많기 때문에 ‘세종시 원안 고수’를 말한다. 후폭풍은 친 이명박 계보와 큰 꿈을 꾸는 정운찬이 가장 심할 것 같다. (미디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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