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무조건 ‘반MB연합’은 진짜 진보연합을 허문다.

녹색세상 2009. 12. 23. 02:42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진보대연합 주장에 대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반론글을 보았습니다. 정중하게 쓰신 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정희 의원과 상당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보신당 당직자의 글이기도 합니다만, 이정희 의원이 몸담고 계신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정치’ 실현이라는 고귀한 시절을 보낸 한 사람으로서, 진보정당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의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반론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정희 의원의 주장을 제 나름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양대 진보정당의 통합은 국민적인 요구다. 그럼으로, 사소한 차이를 접어두고 통합을 통해 힘을 길러야 한다. 진보신당 내의 반발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지도부가 통합의 대의를 잘 설득해서 극복해야 한다.


둘째,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까지 포함하여 반MB대연합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제다. ‘민주노동당은 그럴 자세가 돼 있다’는 이런 내용으로 파악됩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차례대로 제 견해를 말씀드립니다.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지난 1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2010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진보진영의 전면적인 선거연합’을 제안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진보정당 갈라짐 역사, 감정적 통합주장으론 치유 안 돼


먼저, 진보 양당의 통합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양당의 통합은 야권단일화를 바라는 상당수 국민들의 요구입니다. 벌써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만, 민주노동당이 갈라지고 새롭게 진보신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라보는 상당수 국민들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당 당시 민주노동당 내부의 문제를 잘 알고 있고, 그런 점에서 그 상태로 그대로 있느니 선의의 경쟁을 하라는 분들도 꽤 많았습니다. 더구나 이 분들은 단순히 외부에서 진보정당을 그저 바라보며 평가하는 분들이 아니라, 진보의 대의에 공감하는 적극적인 진보정치의 주체들입니다.


그런 분들의 상당수는 진보의 대의에는 공감하되 민주노동당의 기존 입장에 동의하기 어려웠기에 분당 이후 지금 진보신당에 입당해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 현재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관계도 비슷할지 모르지요. 이정희 의원께서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기 전 일이라서 잘 모르실 테지만, 민주노동당의 갈라짐에는 뼈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그 갈라섬에 대해서는 현재의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게 들으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진보신당에 와 있는 분들에게서 들었다면 좀 다른 얘기를 들으셨겠지요.


그리고, 여기 저기 강연회를 하시면서 다시 두 당이 합치라는 얘기를 많이 들으셨다고 하셨는데 그 글을 읽고 진보신당 당원 한분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진보신당의 지구당이나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단체 등에서 강연회를 했으면 그렇게 쉽게 단정해서 얘기하기는 어려웠을 텐데”라고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정희 의원께서 양당의 통합을 ‘당연한 시대정신’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두 당이 오늘날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규정입니다.


두 당이 갈라서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얘기가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 다시 부연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내용을 서로 끄집어내어 상처주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가 존재하는데도 양당의 차이가 거의 사소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인 규정이라는 점을 이 의원께서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진보정당 통합문제와 관련해 더욱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을 통합의 한 주체로 인정한다면, 진보신당과 이 당의 주체인 당원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40%의 당원과 진보신당이 새로 만들어지고 입당한 60%의 당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진보정치를 개척하고 있는 진보신당 지도부에게, 양당 통합이 무엇보다도 우선하고 두 당의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강변한다고 해도 바뀔 것은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일선 당원들을 무시하고 진보신당 지도부가 통합 선언 같은 것을 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과 마찬가지로 진보신당 역시 당원들이 주인인 정당입니다.


이정희 의원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진보신당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진보정당의 흐름이 큰 틀에서 하나로 가길 희망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진보의 노선이 중요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진정으로 진보정당 통합을 바란다면 이러한 새로운 진보정치 노선을 먼저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진보정치세력이 통합을 향해 나아가려면 어떤 정치적 비전이 필요한지, 그에 근거해서 볼 때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견해가 어떠한지 등을 설득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새로운 진보정치 노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진정으로 진보정치 세력의 재구성이 일어날 것입니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당에서 활동할 수 있겠다’고 하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많이 비슷하지만 아직은 당을 함께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겠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한 연대와 단결이어야지 양당의 다름을 그냥 덮어둔 채로 일단 합당하고 보자고 한들, 어느 진보신당 당원들이 이에 동의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양당의 합당까지 포함하여 생각하신다면,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진보정당에 있어 반MB대연합보다 선결해야 할 과제는


이제 이정희 의원의 주장 중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반MB대연합’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의원께서는 내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승리하기 위해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반MB연합’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한 가지 묻습니다. 이 의원께서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과 소위 지금의 ‘반MB연합“을 어떻게 연결하고 계십니까? 이명박 후보는 투표인 중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고, 거기에 더해 이회창 후보까지 합치면 보수 세력이 받은 지지는 65%에 달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민주화세력’이 이렇게 대중으로부터 격렬하게 심판받은 적이 있을까 합니다. 이것의 이유에 대해서는 이정희 의원도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이 국민대중, 그중에서도 서민들의 삶을 개선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방향은 옳았지만 시간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부족해서였다면 이해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진보신당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방향 자체가 진보와는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점했고 민주노동당도 10명의 의원을 배출하였습니다. 한 달쯤 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무효 판결을 받아 대통령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모두 만족스런 결과였고,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노동당 의원 전원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만찬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대변인이어서 김혜경 당 대표, 10명의 의원과 함께 만찬에 참석하였습니다. 말이 만찬이었지, 그날 자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과의 격렬한 논쟁에 가까웠습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나름대로 자기가 맡은 분야에 대해 대통령에게 할 말을 준비해서 들어갔습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으로부터는 대부분 반대되는 입장을 들었습니다. 그중 유명한 것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이지요. 이라크 파병과 부유세 도입도 그랬고, 비정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문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던 단병호 의원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게 격렬하게 서로 논쟁을 한 때문인지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청와대에 타고 간 버스에 적힌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이라는 문구를 보고 주변 참모들에게 ‘음, 그럼 우리는 쉬는 사람들인가’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참여정부 집권세력과 민주노동당은 사사건건 충돌했습니다. 지금 부자감세로 비판받는 법인세, 소득세 인하가 사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랬고, 쌀 개방과 한미FTA문제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올 여름 노동자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준 쌍용차 사태에서 그 한 원인이 된 ‘쌍용차의 상하이차 매각’ 당시 산자부 장관이 현재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아닙니까. 지방선거라고 해서 그 차이가 조금 덜하면 덜했지 특별히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006년 민주노동당의 김종철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출마했을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강금실 후보의 대표공약은 서울 용산에 16만호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소위 ‘용산플랜’이었습니다. 당시 용산 전체의 주택수가 16만호가 안 됐을 겁니다. 이러한 대규모 도심재개발 사업과 이명박, 오세훈 한나라당 시장이 추진한 뉴타운의 차이가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건설재벌의 배만 채워주는 것 일 뿐 무주택자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이는 주택 문제 해결의 시각 자체가 다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진보적 전망 공유 없는 무조건적 연합은 국민 호도하는 것


국민의 정부가 조금 모습을 바꾸거나, 참여정부가 이름을 바꿔 부활하는 것이 진보정당이 꿈꾸는 세상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이정희 의원께서도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MB대연합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극복해야 한다면 적어도 앞에서 말한 그런 역사가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진보정치세력이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민의 나아진 삶을 위해서 '반MB'를 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미 2007년 심판받았던 정권을 복원하기 위해 우리가 국민에게 '반MB연합'을 하자고 한다면 이만큼 황당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MB’로 모두 뭉쳐야 한다가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반MB’를 할 것인가에 대한 진보정당다운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도 없이 ‘현재 어떤 내용이나 원칙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이명박 정권 극복’이라고 한다면 정말 당황스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는 그렇다 쳐도, 2012년 총선은 어떻게 할 것이며, 대통령 선거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아니 더 나아가 2012년 정권을 소위 ‘민주세력’이 찾아온 이후,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등에서 진보정치세력은 무엇을 해야 하나요.


‘반MB연합’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반MB연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진보정치세력의 존재는 부정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정희 의원의 주장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의원의 주장은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후보에게도 동일한 압력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공식 방침인지도 의문입니다. 경상도에서 자행하는 한나라당의 삽질이 민주당이 집권당이나 마찬가지인 전라도에서는 없는지도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무조건적 반MB연대가 아직 민주노동당의 공식방침이 아닌 이상,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향후 민주당과의 연대, 국민참여당과의 연대, 진보신당과의 연대문제 등이 토론이 될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평가하고 그에 기반한 연대방침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서 그렇게 토론 끝에 나온 연대방침이 지금 노회찬 대표가 얘기한 진보적 연대방침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 이 의원께서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진보정당의 역사는 비판적 지지 강요의 역사


이정희 의원께서 몸담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역사, 진보정당의 역사는 아시다시피 소위 ‘비판적 지지’와의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수구세력 심판을 위해 온건한 보수정당과 연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대부분 진보정당의 후보 양보를 전제로 합니다. 만약, 오늘 이정희 의원이 주장하는 바를 과거에 민주노동당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1997년, 2000년, 2002년, 2004년, 2007년, 2008년 등 민주노동당에 닥쳤던 그 수많은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후보를 내서는 안 됐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보수정치와 다른 진보정치를 일구기 위해 노력했던 민주노동당의 노력은 10여 년 간 헛물을 켠 것입니다.


결국 그런 역사가 반복된다면 민주노동당이나 다른 진보정당은 차라리 당을 해산하고 민주당 내 진보적인 한 분파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아니 그것이 가장 현실적일 수 있으나 미래지향적인 것은 결코 아니기에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 것이지요. 향후 후보단일화 문제가 지금보다 더 첨예한 논란이 될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공통된 평가와 정책 내용의 합의 등, 가까워짐의 과정이 없는 무조건적 야당 연대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역사와 정치는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기에 결국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민주당 등 야권단일후보가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지막에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아닌 다른 보수야당의 후보로의 단일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의 진보적 정책과 노선이 그 생명을 유지하도록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지금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에게 필요한 것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적 정책노선이 국민들의 동의를 받아 주도권을 잡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어야지요.


내용적 합의도 없는 가운데 명백한 보수정당인 민주당을 포함한 일방적인 ‘반MB연대’의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아닙니다. 다수 국민을 위해서도 진보정당이 해야 할 역할은 그것입니다. 이정희 의원과 다른 당에 속해 있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만, 진보정당 국회의원으로서 이정희 의원의 활동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토론과 공동의 전망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반 이명박 전선’을 핑계로 1987년 ‘악몽의 비판적지지’를 다시 강요하는 것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 글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