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

앞산꼭지의 고령 주말 농활

녹색세상 2009. 9. 27. 21:17

 

 

고령군 성산면에 귀농한 이주현ㆍ이경렬 부부 집으로 향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자전거로 잘 닦인 국도를 따라 갔습니다. 이른바 ‘잔차질’이죠. 상인동에서 출발하니 2시간 걸립니다. 시내를 벗어나기 전까지 차가 막힐 뿐 화원 나들목을 지나면 막힘없이 달릴 수 있습니다. 껍데기는 조금 녹도 슬어 엉성해 보이지만 속은 집 나간 자전거 보타 더 알찬 ‘24단 기어’라 잔차질은 한결 편합니다. 논공읍에 도착하니 1시간 가까이 되어 마른 목도 축이고 잠시 쉬었습니다.


위천 삼거리를 지나 낙동강을 넘어 성산면으로 들어섰습니다. 성산면 소재지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 가까이 와서 시간을 제법 잡아먹었습니다. 옥포에 들어서면 공기가 다르지만 낙동강을 넘어서면 또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낍니다. 성산면은 주 작물이 메론이라고 합니다. 메론은 연작 피해가 심해 비닐하우스를 걷어내고 벼를 꼭 심습니다. 비닐하우스 농사로 수익을 올리니 예전처럼 알뜰하게 김을 매지 않습니다. 목적지인 용소리까지 들어가는데 온 들판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 귀농하기 전부터 하던 천연염색 옷과 소품, 유기농산물 인터넷 판매를 하는 이주현 씨. 솜씨가 좋아 입소문을 타고 찾는 고객이 많습니다.


아무리 농사 일이 기계화되었다고 하지만 생활하기 불편한 것은 분명합니다. 50대 중반의 중년이 ‘가장 젊은 사람’이니 노인들 뿐이죠. 어릴 때부터 살아온 곳이라 노인들이 부탁하면 거절할 수 없는 게 농촌 정서라 농번기 때는 ‘안면몰수’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부탁하는 분의 심정이야 알지만 한 두 집 해 주다 보면 진작 자기 일은 하지 못하니 차라리 한 번 거절하며 돌아서는 게 편하지요. 이주현ㆍ이경렬 부부 집에 도착하니 여느 시골집처럼 집안 곳곳이 여러 가지로 늘려 있습니다. 이제 시골 사람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촌에 가면 일을 하는 게 예의라 어설픈 손으로 고추 꼭지를 따고, 유기농업으로 지은 쌀에 생긴 벌레도 골라내는 등 잠시 몸을 움직였습니다. 이주현 씨는 천연염색을 해서 옷을 만드는 일도 하는 솜씨가 제법 좋습니다. 집을 새로 옮긴지 오래되지 않아 물들인 천을 말릴 곳을 아직 만들지 못해 마을회관 마당에 늘어놓았습니다. 아들인 근엽이는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얼마나 신나게 노는지 집에 올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엄마 아빠의 간섭에서 벗어나 맘껏 노는지 제가 올 때까지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먹고사는 게 문제라 초보 농사꾼인 이경렬 씨는 올해 가을에 비닐하우스에 무엇을 심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처남(이주현 씨 동생)의 친구 집이 가까이 있고, 어른이 같은 집안인데 아제 뻘 되는 분이라 음으로 양으로 조언을 많이 해 주신다고 합니다. 농사 기술지도도 해 주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죠. 낯선 농촌에 가서 이 정도면 기본 점수는 따고 들어가는 셈이죠. 새로운 사람이 정착하기까지 어려움을 겪는데 ‘집안 조카’라며 챙겨 주시니 큰 배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주현 씨는 광우병 정국을 지나면서 촛불을 들었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삽니다. 후덕하게 생긴 얼굴처럼 넉넉한 인심에다 천연염색으로 옷을 비롯한 여러 소품을 만든 지 오래 됩니다. 작게 농사지었지만 농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어르신들이 판로를 못 찾아 걱정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농산물 ‘인터넷 판매’도 시작했습니다. 아직 누리집(홈페이지)을 공사 중이라고 합니다. 이주현ㆍ이경렬 부부가 하는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설픈 손으로 작은 일이라도 거들고 나니 밥맛도 좋고 기분도 좋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