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맞아 은사님들을 모시는 자리에 갔다. 열 대 여섯 철부지들이 벌써 쉰의 문턱에 들어섰으니 ‘세월 빠르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꾸물거리다 보니 늦어져 혹시 자리라 끝났는가 싶어 전화를 했더니 ‘야야, 선생님들이 안 그래도 네 이야기 하시던 중’이라고 하니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를 알아야 한다’며 신문 사설을 꼭 읽어 보라고 하신 유일한 좌파인(?) 전경일 선생님 덕분에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제자가 진보정당에 몸 담고 있다고 ‘좋은 날 올거라’며 격려를 해 주시는 영원한 사회 선생님이다. 개구쟁이들에게 ‘넌 잘 할 거라 믿는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어머니 같은 이덕순 선생님은 ‘자네가 어떻게 그런 걸 하느냐’며 걱정하시는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아들 같은 제자로 부터 꽃바구니를 받고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3학년 때 담임을 하신 김형기 선생님, ‘자기 의견을 글로 쓰는 게 중요하다’며 글쓰기의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전문 글쟁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글을 쓰며 가끔 독자 기고를 하는 것은 그 때 배운 것에다 조금씩 살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중3때 회의 진행법을 배운 덕분에 갑자기 회의 진행자가 없을 때 대타로 나가곤 한다.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얻어터진 것 말고는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행히 나에게는 그런 악몽보다 ‘좋은 것을 가르쳐 주신 은사님’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사람 복만은 타고나서인지 살아가면서 안부 전화라도 드리는 어른들이 있다니 행복하다. 우리들의 영원한 큰형님이자 오라버니인 박삼선 선생님, 제자가 가는 길을 생각만 해도 걱정이 쌓이건만 격려를 아끼지 않는 고마운 분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좌우가 골고루 있어야 한다’는 정치경제를 가르친 전경일 선생님, 6남매 중의 막내로 모두가 대학을 졸업하셨으니 대단한 집안이다. 백씨 되는 분의 친구가 연루되어 있어 ‘10월 항쟁’의 아픔도 아시는 그 연배에 보기 드문 어른이다. 지금도 멋진 외모에 시원시원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휘어잡는 영원한 큰형님인 박삼선 선생님, 한 동안 연락을 못 드렸는데 ‘당장 서변동으로 와서 전화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지침을(?) 받았으니 조만간 달려가 소주 한 잔 하면서 세상 살아온 이야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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