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정운찬 아내의 그림 값에 놀란 전업화가

녹색세상 2009. 9. 27. 11:27

 

3년간 4~5점의 그림을 팔아 세금 한 푼 안내고 6천만원을 가볍게 번 정운찬 내정자 배우자에 대한 청문회 질문에서 “그림을 사간 사람들이 원천징수하듯이 세금을 자기들이 냈으며, 그림이 재산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천경자와 같은 화가도 그림1점에 11000만원 정도인데 이해가 안 간다는 질문에는 “아내가 미대출신이어서 기본적인 소양이 있고, 국전에 몇 번 입선한 경력도 있다. 팔린 그림은 100호정도(160cm x 120cm내외)의 사이즈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전에 입선한 적 있는 아마추어 작가인데 100호가 1600만원이라니 전업화가들 머리에 뿔 날 일임에 분명하다.

 

▲ 오는 사람 정운찬인 국무총리 내정자가(오른쪽)가 9월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총리실을 방문해 한승수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전은  더 이상 화가들의 등용문이 아니다. 요즘 좀 나간다는 화가를 비롯하여, 신진화가들은 국전에 그림을 내지 않는다. 국전은 주로 나이 많은 초보 화가들, 이름 없는 지방 작가들의 장이 된지 오래다. 게다가 입선 정도라면 어느 정도 그림일지 대강 짐작이 간다. 그런데 100호가 1600만원이라니 기절할 노릇이다. 그림을 사간 사람이 세금을 냈다는 것으로 봐서, 갤러리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거래를 한 모양이다. 그런 경우 사업자 소득이므로 정운찬의 배우자는 사업자 신고를 하고 세금신고를 해야 한다.

 

교직과 같은 다른 수입원을 가지지 않은 채로 작품을 팔고 하는 작가들은 그래서 사업자등록을 한다. 그런데 “정운찬은 그림이 재산인지 몰랐다”는 엉뚱한 답변을 했다. 세상 물정을 이리도 모르는 사람이 총리 내정자라니 국민들이 받을 고통이 너무 커 정말 열 받는다. 하기야 뇌물과 같은 1천만원을 ‘궁색하게 살지 말라고 준 용돈’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그림자체가 재산이 아닐 수는 있으나, 그림을 팔고 돈을 받았다면 그 받은 돈은 재산이 아니면 무엇인가? ‘서울대 3대 천재’중 한명이었다는 정운찬에게서 나온 답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궁색하다.

 


아마추어 작가의 100호가 1600만원에 팔릴 수 있는 세상이 미술 세상인지, 도대체가 궁금하지만, 일반인들이 미술시장의 세계를 속속 알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도록 베일에 쌓인 게 그림 값이다. 그러기에 고가로 거래된 그림이 정치판에 등장하면 무성한 의혹만 남기고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음악과는 달리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인 미술품은 세금 등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 정치적인 뇌물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하기 편하며 고상하게 노블리스의 외향을 완성시켜 줄 수 있기에 상류층은 미술품을 선호한다.


홍라희가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715만 달러에 구입했다는,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사실, 리움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미술품들 중 새발의 피일 뿐이다. 홍라희의 미술품 사랑은 꽤나 극진해서, 삼성은 미술품을 구입하다 못해 넘치는 미술품을 합법적으로 소유하기 위해 ‘리건희의 뮤지움’이라는 뜻의 ‘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관을 지었다. 그림을 사고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공간인 '갤러리'와 달리, 홍라희가 선심 쓴답시고 지은 ‘뮤지움―미술관’은  ‘전시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기관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국내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장한 미술품자료를 공개하는데 적극적인 국립이나 시립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 등 다른 미술관에 비해, 리움미술관은 미술품을 꼭꼭 숨겨놓기로 너무 유명하다. 보여주는데 그렇게 인색할거면 왜 미술관을 지었는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러한 예까지 들지 않더라도, 상류층 간의 미술품 사랑은 정치적 의도를 위장한 순수함의 외향으로 노골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에 대해 ‘그림 값이 너무 비싸다. 그림 값의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는 원론적인 재제는 어찌 보면 거칠고도 단순한 일차적인 접근이다.

 


실제로 몇몇 스타급 작가나 유명 작가들을 제외한 일반 화가들의 그림 값은 100호 기준 ‘중고자동차 한대 값’ 정도라고 보면 된다. 중고차 가격도 천차만별이니, 이 또한 정확한 예라고는 볼 수 없다. 붓질이라는 ‘육체적노동’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부가가치’에 대한 가격이라고 보면, 이에 대한 정확한 가치를 숫자로 매기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소나타 중고차는 세상에 널려있다. 그러나 특정 작가가 만든 작품은 유일하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에게, 그림 값은 비싼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중고차 가격의 그림보다는 벽걸이 텔레비전 하나의 가치가 더 높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이 그림 값은 비싼 것이라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 만큼 그림의 가격책정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시장가가 형성되어 있긴 하지만, 실지로 자신의 작품에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을 매기는 경우도 많다. 유명작가임에도 생각보다 그림 값이 비싸지 않은 경우도 발견이 된다. 모든 그림이 팔리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다보니 그렇다. 한 예로, 상업적으로 자신의 그림이 거래되고 평가되는 것이 싫었던 ㄱ작가는 아트페어에 그림을 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거절할 수 없어 그림을 제작한다.


작가는 아주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작업실에 굴러다니는 먼지를 모아 풀로 붙여 소나무가 있는 풍경화를 만들었다. 일명 ‘먼지그림’이다. 그리고는 그 그림에 어마어마한 가격을 붙였다. ‘이래도 살 거냐?’는 심보다. 그런데 그 아트페어를 주관했던 모기업 회장이 아트페어를 공개하는 날, “이 아트페어에서 가장 크고 비싼 그림을 사겠다”고 하여 그림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그림을 사버렸다고 한다. 웃자니 너무 속 쓰린다. 그렇다면 “그림 값은 그야말로 엿장수 맘대로 이고 부르는 게 값인 것이냐?”라고 맥 빠져 얘기할 수도 있겠다.


납득할 기준이 없는 그림 값이라면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찝찝한 구석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작가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서로 암묵적으로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양심적으로, 자신의 경력이나 활동정도, 유지비와 평가 등을 비추어 스스로 책정한 가격이다. 유명작가들에게 형성된 과도한 작품 값은 처음부터 스스로 내놓았던 것이 아니라 시장에 의해 형성된 가격이다. 정상적이든 비정상적이든, 한번 경매 등에서 비딩이 붙어 엄청난 가격이 형성되고 나면, 그 수준에 맞추어 작품의 평균값을 올려야 시장의 혼란이 생기지 않으므로 작가가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작가 자신이 그림 값을 올리지 않더라도, 그 그림을 샀던 사람이 다시 그 그림을 시장에 내놓을 때 더 비싼 가격에 내놓게 되므로, 한번 몸값이 올라간 작가의 그림 값은 내려가지 않는다. 몇 년 전 홍콩 경매에서 억대에 팔려 뉴스에 실렸던 20대의 작가는 유명세에 힘입어 그 이후 국내 경매에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구매자들이 몰렸으나, 그 이후 단한 번의 개인전도 열지 못하고 있다. 개인전을 열지 않는 작가는 개인 시집을 내지 않는 시인과 비슷하다. 이럴 경우는 평론가나 작가들이 암묵적으로 책정하는 가격대와 시장가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에 속한다.


사실 그 작가의 경우, 홍콩경매시장에서의 한 번의 히트 이후 국내시장에서의 평가는 그저 ‘저 작품이 억대에 팔렸던 작품이래~’로 거래되는 거품이라 보인다. 그러나 그림시장에서 거품은 가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시장에서는 ‘공개된 그림 값’ 또한 작품과 더불어 부가가치의 한 부분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공개되어있는 그림 값은 실거래가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물론, 시장은 가끔 좋은 작가들을 발굴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안목으로 투기성 거품과 정말 좋은 작가를 구별하는 것은, 시장에서 일반 상품을 고르는 것보다 훨씬 깊은 안목과 인내심과 정보,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정운찬에게 보험 들거나 아부할 생각이 없고는 초보 화가의 그림 값이 그리 비쌀 수 없다.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로 ‘뉴스 메이커’라는 사람으로부터 공직자가 1천만원을 받고도 ‘궁색하게 살지 말라고 준 것’이라며 얼굴색 하니 변하지 않았다.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명색이 유명 국립대 총장을 지낸 사람이 ‘예스24’의 모델료로 1억도 못 받았으니 정운찬의 출연료는 너무 싸다. 자신의 몸값이 너무 떨어지니 초보 화가인 아내의 그림 값이 그리 비싼지 모를 일이다. 정운찬 노는 게 너무 얄팍하고 치사하다. (어느 화가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