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정운찬 씨와 ‘4대강 사업’에서 만납시다.

녹색세상 2009. 9. 8. 00:49

4대강 발언은 밑질 것도 봐줄 것도 없는 싸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이명박 정권의 깜짝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충청권 출신에 야당 성향의 국무총리 후보라는 다목적 인선이다. 정운찬 전 총장의 총리후보자 지명 승낙이 그의 학자로서의 신념과 이론에 부합하는 것인지, 또는 그의 애초 정치적 바탕이 장미꽃인지 벚꽃인지는 기다려 볼 일이다. 이명박 정권의 다목적 구상이 효과를 발휘할지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정운찬 후보자가 지명 승낙 첫 기자회견에서 밝힌 ‘4대강 사업 찬성’ 발언은 이미 격한 논란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낙동강 퍼포먼스. (사진: 진보신당 부산시당)           


한국 경제학계에서 극소수파가 되어버린, 그래서 좌파라는 오인까지 받는 대표적인 케인지언 경제학자로서 그는 이명박 정부의 ‘경기 부양 방식에 수차례 경고’를 보냈고, 한반도 대운하 계획에 대해서도 명시적 비판을 가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해 12월 10일 미국 뉴욕의 한 강연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을 평가하면서, 뉴딜은 제도를 바꾸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둔 것이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 뉴딜한다고 하는데 잠수돼 있던 대운하가 나올까 걱정이다”라고 콕 집어 말한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 정 후보자가 3일 기자회견에서, “대운하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4대강 사업은 수질 개선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쉽게 반대하기 힘든 사안이라고 본다. 4대강 사업을 청계천 발상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더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동시에 4대강 주변에 쾌적한 중소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라고 이야기했으니 말이 많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총리 자리 의사를 타진했을 때, 그가 반대해 온 것을 뻔히 아는 중요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확인하지 않았을 리 없고, 후보자 수락 일성으로 어떤 이야기 정도로 정리하자는 합의가 있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금 대운하와 4대강 사업이 동일하냐 아니냐를 가지고, 혹은 이게 그의 진정한 소신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부질없을 것 같다. 다만 이 발언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데, 4대강 사업이라는 게 결국은 자연 지형을 따라 흐르던 하천을 청계천처럼 양쪽 옹벽을 쌓고 물을 가두고, 가끔씩 오염물질도 긁어가면서 관리하겠다는 발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정운찬이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정작 관심이 가는 것은 정운찬 후보자의 총리 기용이 4대강 정비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냐 아니냐 하는 대목이다.


정운찬 총리는 4대강 사업에 도움이 될까?


무엇보다 대운하 사업에 비판적이던 정 후보자의 발탁으로 4대강 정비 사업이 날개를 달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인 것 같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신망있는 경제학자가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4대강 사업의 경제적, 환경적 가치를 엄호한다면 적지 않는 설득력이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고려대 인맥에 더하여 언론계와 학계에 포진한 서울대 인맥을 통한 여론 관리도 더 잘 될 성싶다. 그러나 정치 여론은 꼭 누구의 계산대로 되는 게 아니라 반대의 측면이 존재한다. 우선 4대강 사업이 정 후보자로 인해 전 정치세력과 전 국민의 관심사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사회적 찬반이 첨예하고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토목 사업은 가급적 조용히 착공해서 밀어붙이는 게 상책인 게 한국의 현실이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그랬고 평택 미군기지 조성 공사가 그랬다. 이미 착공했으니까, 매몰비용이 아까우니까 계속 가야 한다는 게 무엇보다 큰 설득 논리였다. 그러나 정운찬 후보자와 함께 4대강 사업은 대중의 눈 앞에서 훨씬 잦고도 깊은 논의에 부쳐지지 않을 수 없다. 당장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야가 4대강 사업을 두고 격돌할 것이다. 경제학자로서 정 후보자의 소신을 다시 묻고, 4대강 기본계획의 세부 사항이 들춰지고 해부할 것이다. 정기국회와 국정감사에서 정운찬 총리는 자리를 비울 수 없을 것이다.

 


정운찬의 실망스런 발언과 역설의 희망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 일부와 시민사회에서도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총리는 연말의 예산안 심의에까지 4대강 사업 논란의 부담을 벗을 수 없을 것 같다. 빈곤층 지원 예산이 깎이고, 지자체의 사회간접자본 예산이 부족하고, 신종플루 대응이 곤란하고, 심지어 국방예산까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케인지언 경제학자 정운찬 총리는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방어해야 한다. 물론 정 후보자의 향후 행보와 언행은 그 스스로 결정할 일이겠지만. 때문에, 정 후보자의 실망스러운 발언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 저지의 전망과 관련해서는 역설적으로 희망과 기회가 남아있다고 본다.


그리고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도 이 계기를 최대한 활용해서 정 후보자에게 들러붙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운찬 총리를 4대강에서 만나자. 정 후보자는 내정 후 소감문에서 “불안한 거시경제와 어려운 서민생활, 일자리 창출, 사회적 갈등과 지역대립, 남북문제 등 국내외적 상황이 책상머리에서 고뇌를 거듭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했다. 책상머리 총리가 되지 않으려거든 4대강 현장의 사람들과 물길의 소리를 들어라. 사업을 접을 위기에 처한 팔당 유기농 단지의 농민들을 만나고 낙동강 상류의 여울을 먼저 가 보라.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조계사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논리적으로 토론에 나서라. 또한 정운찬 총리는 4대강에서 만나자. 정 후보자가 원했든 아니었든 그의 정치적 명운과 이명박 정권의 명운이 4대강 사업을 고리로 엮이게 되었다. 광우병 정국 이후 이렇게 정치적 초점이 명확해진 적도 없었다. 어중간한 타협지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 후보자가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선택지가 있고, 이 역시 정치판의 관전 핵심이 되겠지만,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로서는 밑질 것도 없고 봐줄 것도 없다. 한 판 붙는 것 말고는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레디앙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