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앞산을 빼앗긴 사람들과 용산 유족의 아픔

녹색세상 2009. 9. 3. 10:15

 

대구의 허파이자 어머니 산인 앞산을 파괴하는 것과 용산을 강제 철거하고 살인 진압한 것이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압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초록배움터에서 전국녹색위원회 첫 모임을 갖고, 다음 날 뒤늦은 문상이라도 하는 게 예의일 것 같아 서울에서 온 당원들과 같이 갔습니다. 지하철 타는 방식이 2년 전과 달라져 서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체계를 구축하면 원가 절감도 가능한데 고시 출신의 똑똑하다는 공기업 사장들이 좋은 머리를 그런데 사용하지 않는지 모를 일입니다. 부산도 또 바꾸는데 시민들의 편리가 아닌 오로지 ‘비용절감’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 1월 20일 경찰 1명을 포함해 6명의 소중한 생명이 억울하게 죽은 남일당 건물, 자기 건물이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5명의 세입자들이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무참하게 죽었다.


신용산역에 내려 학살 사건이 벌어진 남일당 건물을 찾아갔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곳곳에 널린 게 사복 경찰뿐이었습니다. 이건 전두환ㆍ노태우 군사독재 정권 시절 보다 더 심한 전쟁터에 와 있는 것 같더군요. 서울은 그야말로 연일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나 ‘이런 곳에서 저런 꼴을 보면서 어떻게 사느냐’는 걱정이 앞섭니다. 무슨 일인지 상복을 입은 유족들이 도로를 막고 항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곳곳에 낯 익은 얼굴들이 있었으나 먼저 조문을 하는 게 예의라 ‘1월 20일’ 새벽에 억울하게 가신 분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늘린 게 전경들이고 들려오는 건 수시로 상황을 알리는 무전기 소리가 사정없이 귀를 때렸습니다. 사람이 죽고도 8개월이 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한 건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몰상식의 극치입니다. 최소한 몇 명이라도 재판에 회부해 실형을 선고 받고 난 뒤 남들 모르게 빼 주긴 했으나 이명박 정권은 그 머리마저 돌아가지 않으니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요. ‘무식한 게 용감하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염치라도 있다면 시신을 냉동고에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 대구를 방문한 용산참사 유족들, 용산학살이 묻히지 않고 전국적으로 알리게 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던 중 대구 중구 대백 앞 집회에 참석하셨다.


제가 간 8월 23일도 경찰 한 명이 유족의 입을 때려 피가 흐르자 현장에서 잡았습니다. 그런데 현장 책임자는 현행범을 체포하기는 커녕 달아나게 해 버렸습니다. 이에 화가 난 유족들이 도로를 막고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유족들 가운데 대구에 오신 분들이 있어 조용히 다가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연수 왔다가 염치없이 이렇게 조문만 하고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멀리서 와 준 것만 해도 고맙다’고 하시니 부끄럽기 그지없더군요. 최소한 하루 밤이라도 묵으면서 아픔을 함께 하는 게 예의인데 그냥 오려니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멀쩡히 등기부등본에 있던 우리 집이 철거당해 봤기에 그 아픔이 얼마나 크고 서러운지 잘 압니다.


서울 용산에서 실평수 100평의 식당을 했다면 어지간한 사람 부럽지 않지요. 그 돈으로 지방으로 왔더라면 건물 사서 걱정 없이 살아갈 분들이 자기 건물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가 앉게 되었으니 몸부림치지 않는다면 이상하죠. ‘재건축 끝날 때까지 가수용 상가라도 내어 장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그 소박한 요구마저 삼성건설과 포스코를 비롯한 건설자본과 이명박 정권, 그 잘 생긴 외모의 변호사 출신의 오세훈 시장은 ‘나 몰라라’ 해 버렸습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이렇게 무겁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장성한 조카들과 자식 손  잡고 같이 문상 갔다 오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