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민주주의 발전을 망친 신자유주의

녹색세상 2009. 8. 8. 13:31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무려 77일간의 옥쇄파업을 마치고 ‘협상타결’이라는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살인 면허증을 가진 경찰특공대의 잔인하기 그지없는 진압에 밀린 노동자들은 선택의 폭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사회안전망이라고는 전무한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몸뚱이라 하나로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행운이다. 그렇지만 밀려나는 순간 삶은 벼랑 끝으로 추락하고 말기에 사생결단으로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 쌍용차의 원죄는 ‘기술유출’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면서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산자부 장관일 때 ‘외자유치’라는 미명 하에 자행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중재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족쇄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 세계 13위라고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초보적 민주주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중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구현된 것은 불과 15년 밖에 되지 않는다. 어쩌다 탄생한 지금의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 정권이라 할 수 없다. 일부 잘못된 민주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너무 안이하게 반민중적 정책인 신자유주의를 채택함으로 어렵게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인하여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염원하는 시대정신이 후퇴 할 수 밖에 없는 비극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지금의 현 정권의 반대에 있는 소위 민주주의를 말하는 일부 세력 중에 아직 지금 같은 상황을 가져 온 원인에 대한 자성에 매우 인색하다는 것이다. 애당초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없는 적대적 개념의 관계이다. 노무현 정권의 오류는 분명 인정해야 한다. 분열적이고 자기 모순적 현상에 빠진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마치 어렵게 이룩한 한국의 민주주의 때문이라는 대중적 착각이 만들어 낸 정권이 지금의 이명박 정권이다. 상상을 해보라. 지금 노무현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 해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또 다시 민중들로 부터 외면당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게 하는 정책 특히 경제 정책을 만들어 내는 정권이라면 그 정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없다. 향후 한국 사회가 불안한 분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모순이 드러났고 거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데도 여전히 이 나라는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조차 파악하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결말은 극단적인 빈부의 양극화 현상이다. 그런데 한국처럼 사회 안전망이 확보되지 않는 나라도 극히 드물다. 신자유주의 횡행 속에 사회 안전망이 붕괴 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사회적 불안이 일어 날수 밖에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 세력은 적어도 이 나라의 미래에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를 희망한다면 먼저 신자유주의부터 부정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 반이명박 정권에 있는 사회적 모든 영역을 통합하려는 거국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민중이 궁핍하고 당장 생계에 곤란을 받아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경제적 시련을 외면한 그런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야 한다. 한심한 것은 아직 노무현 경제 정책에 대한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뚜렷한 친민중적인 이념적 노선도 없이 마치 정치를 연예인들처럼 하려는 세력이 있다.


그렇게 해서는 뿌리 깊은 한국 사회의 수구 세력을 이길 수 있는 동력이 없다는 것은 지난 노무현 정권의 오류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념과 정치 노선, 각자의 입장의 차이를 뛰어 넘어 민중의 삶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가치를 한국 사회에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요, 국민은 바로 민중이다. 민중이 주인인 이 나라를 사리사욕으로 독식하려는 소수의 무리들 때문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페달을 밟은 노무현 민주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 민중의 생존 문제를 찾아야 우리가 산다. (한토마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