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쌍용차노동자 ‘아사 작전’은 화려한 휴가의 시작

녹색세상 2009. 7. 29. 01:22

쌍용자동차 공장은 한국판 아우슈비츠 수용소


“전지(戰地)에서 부상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군인은 국적을 불문하고 보호하고 치료하여 주며 그들을 구호하는 요원이나 시설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한다.”

 


전쟁이나 무력분쟁이 발생한 경우 부상자, 병자, 포로 등을 보호해 전쟁의 참화를 줄이기 위해 탄생한 제네바협약의 주 내용이다. 제네바협약은 1859년 이탈리아 통일전쟁 중 솔페리노 전지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한 뒤 국제적십자사를 창시한 앙리 뒤낭의 주창에 따라 생겼다. 제네바협약은 1864년에 처음 제정된 뒤 1949년까지 계속 내용이 확대됐다. 그 중 ‘전지(戰地)에 있는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개선에 관한 조약’은 가장 이른 1864년에 제정됐다. 그로부터 145년이 흐른 2009년 7월 대한민국이 외국의 군대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는데도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새삼 1864년에 제정된 제네바협약을 이야기해야 하는 인권 말살 국가가 되고 말았다.

 


입만 열면 권력과 자본이 들먹이는 국가신인도는 곤두박질치지 않을 수 없다.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함께 살자’는 절규를 무참히 짓밟고 있다. 쌍용차 노조의 점거 농성이 어느덧 70일 가까이 됐다. ‘전쟁 같은 상황’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건 지난 20일부터다. 이때부터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공장 안으로 식량은 물론이고 물과 가스 공급이 중단됐다. 공장 주변은 경찰이 포위했고 일반인 출입은 통제됐다. 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전쟁터 같은 쌍용차 공장에는 145년 전 ‘제네바협약’ 조차 통하지 않는 가장 비인도적인 인권말살지역이 되고 말았다. 쌍용자동차 구사대와 경찰이 합작으로 만든 ‘2009년판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 경찰병력과 쌍용 사측이 동원한 용역깡패가 뒤섞여 진압 작전을 하고 있다. 이는 경찰이 용역깡패를 비호하는 것으로 권력 상층부의 묵인이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래는 용역깡패들이 새총으로 쇠 덩어리를 쏘고 있는 장면이다.


이런 와중에 거의 매일 쌍용차 공장 상공에서 경찰 헬기가 최루액과 최루가스를 수시로 부어 대고 있다. 최루액은 스티로폼도 녹일 만큼 독성이 강하다. 최루액의 독성 논란이 일자 대신 최루가스를 살포하다 다시 최루액을 뿌리고 있다. 사라진지 이미 오래인 최루탄이 이명박 정권 하에서 ‘2009년 평택 하늘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날은 뜨거운데 하늘에서는 수시로 최루가스가 날리는 상황, 한마디로 공장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785명(노조 쪽 주장)의 쌍용차 노조원들은 먹고 자고 싸는 기본 생활도 못할 뿐 아니라 아픈 몸조차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고 있다. 옥쇄 파업 중인 한상균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자신들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강제수용소 그 이상이다. 사람은 물론 짐승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감옥에서도 없는 비인격적인 말살 행태가 쌍용자동차 공장 내부에서 자행되고 있다.”


경찰은 봉쇄 당시 공장 안에 약 20일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창근 쌍용차 노조 기획부장은 “며칠 동안 계속 주먹밥만 먹고 있고, 식수는 모든 물을 모아서 끓여 먹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강제수용소’와 다름없는 상황은 몸이 아픈 사람에게 치명적이다. 공장 안에는 당뇨병과 혈압 환자, 그리고 최루액으로 피부 손상을 입은 다수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근 기획부장은 “약 100명이 병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며 “땀과 최루액을 씻어낼 물도 없는 이들에게 의사 진료는 무척 사치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노조 쪽은 27일 의사와 약품을 요청했지만, 정문을 지키고 있는 비해고 노동자들은 의료진 출입을 막았고 경찰은 최소한의 인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반인권적인 행동을 방조하고 있다. 이들은 “상처 소독만 하고 나오겠다”는 의료진의 하소연을 “점거 풀고 나오면 다 해결된다”는 말로 막았다. 결국 이 때문에 의사 없이 약품만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용산 학살을 자행한 경찰특공대 투입 훈련까지 실시해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자극하는 파렴치함을 보였다.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민중의 쇠파이프’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위한 출입조차 가로 막는 등 상식 이하의 짓을 해대고 있다.

 

▲ 경찰헬기로 살포한 최루액에 의해 부서진 승용차 유리, 승용차 유리는 일반 유리보다 강함에도 불구하고 부서질 정도면 사람이 맞았을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이런 위험한 짓을 경찰은 하루 수십 차례 자행하며 살인 미수를 저지르고 있다.


물ㆍ식량  끊고 의료진 출입도 차단…경찰 작품 ‘2009년 강제수용소’


그렇다면 평택 쌍용차 공장은 1864년에 제정된 제네바 협약도 적용할 수 없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막나가는 현장일까? 언제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모르는 전쟁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확실하다. 포위된 노동자들이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는 것도 꼭 전쟁을 연상시킨다. 많은 사람들은 무리한 공권력 진압은 ‘제2의 용산 학살’을 불러올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사 양쪽은 ‘인도적 실천을 다한다’고 천명했다. 회사 쪽은 이미 지난 24일 “노조가 요청하면 인도적 차원에서 의료진 출입을 허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나 단, “회사가 지정한 병원의 의료진만 출입시키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면서 회사 쪽은 “우리는 이미 환자 치료를 위해 의료진을 들여보내겠다고 밝혔지만, 노조가 요청하지 않았다.”며 “의사에도 좌와 우가 있느냐, 환자 치료만 받으면 되지 뭘 그렇게 따지는 게 많으냐”고 말해 또 다시 노동자들을 자극했다. 회사 쪽의 주장은 ‘우리는 의료진을 보내려 해도 노조가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우리는 이미 언제든 어떤 의사든 모두 환영한다고 분명히 밝혔다”며 “하지만 회사는 자신들의 말과 달리 의료진을 보내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노조는 “회사가 진정으로 인도적으로 생각한다면 왜 굳이 ‘회사가 지정하는 의사’만을 고집하느냐”며 “또 스스로 인도적 결정을 해서 공장으로 들어오겠다는 의사들의 출입을 막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실제 회사는 아직까지 의사를 공장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또 “인도적으로 생각한다면 노조의 요청이 있든 없든 의사를 먼저 보낼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새총 등을 쏘고 화염병으로 위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 그렇지만 회사는 28일에도 약품을 들고 공장 안으로 들여가려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료진의 발길을 정문 앞에서 막았고 경찰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평택 쌍용차 공장은 ‘위생병’ 조차 없는 대한민국 속의 작은 전쟁터고, 이곳에서 인권은 끊긴 식수처럼 하얗게 말라 죽어 있다.

 

 

▲ 용역깡패와 경찰이 뒤섞여 합동 작전을 자행하고 있다.(위 사진) 매일 위험한 상황이 수십 차례 벌어지는 와중에도 옥쇄파업 중인 노동자들은 투쟁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집회를 하고 있다. (아래사진)


법과 인정사정 다 끊긴 현장은 공동묘지로 가는 길


식량ㆍ식수 의료진을 끊는 이른바 ‘아사 작전’은 경찰의 주요 진압 방법 중 하나다. “그렇게 해야 진압할 때 유혈 충돌이 줄어든다.”는 게 경찰의 어이없는 말이다. 회사는 “점거 농성 풀고 나오면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몸도 치료할 수 있다”며 “점거 농성만 풀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쉽고 간단명료한 논리다. 하지만 쌍용차 문제는 이런 쉽고 간단한 논리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게 대화를 하자고 하는 자들의 기본적인 자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녕 쌍용자동차를 살릴 의지가 있다면 대화 이전에 최소한의 인도적인 조치부터 취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모든 국민은 성별, 연령, 민족,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고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멀리 제네바협약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3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쌍용차 공장에서는 노사 대화가 끊긴 뒤 물, 식량, 의료진마저 끊겼다. 서로의 사정을 살피는 인정이 끊겼으니 법이 통할 리 없다. 공장 안 노조원들은 ‘함께 살자’고 밖을 향해 절규하고, 공장 밖 사측은 “너희들만 아니면 살 것 같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그리고 노조원 가족과 의료진은 “최소한 사람은 살게 해줘야 할 거 아니냐”고 절규하고 있다.


최소한의 법과 인정이 끊긴 현장은 공동묘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진압 작전 시기만 노리는 경찰의 파렴치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서울 용산처럼 다시 강제 진압을 한다면 그 보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날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이 만에 하나 평택판 ‘화려한 휴가’ 작전을 실시한다면 그 자리는 노동자들의 죽임과 동시에 이명박 정권과 경찰의 공동묘지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기를 각오하고 올라가 끝까지 싸우겠다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무식한 짓을 당장 멈추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