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후 일본과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더 한 폐허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60년대 중반 이미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여 2차 대전의 상흔을 말끔히 씻어 내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경제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 보다 몇 배의 경이로운 발전을 했다. 그럼 우리 말고 이런 나라의 ‘경제 성장이 어느 정치인의 공이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것이 어느 정치인만의 덕이다 하는 말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일본이 성장한 것이 어느 수상이 잘해서 그렇다는 말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독일과 일본이 부흥한 것이 아데나워, 요시다 시게루 기시노부스케등의 당사국 수상들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공히, 독일(일본) 국민이 폐허와 굶주림 속에서 참고 견뎌낸 결과이다. 히틀러의 명령을 2번이나 거절하고 숨어 살았던 아데나워에게 다시 쾰른 시장으로 복귀해달라는 미 연합군 사령관의 뜻을 전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나치에 부역하지 않은 깨끗한 이력이 미국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과 다른 정치철학을 지닌 나치와 타협하지 않은 그의 신념이 그를 다시 독일 국민 앞에 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아데나워가 69세의 나이에 화려한 제2의 정치인생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옛 서독) 초대 총리에 취임했다. ‘아데나워시대’라 일컫는 치정 14년간 일관되게 친미ㆍ반공 정책으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 서독을 경제ㆍ군사적으로 부흥시키고 국제적 지위를 확립하는 데 힘썼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여러 나라에 대하여 협조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소련 등 동유럽 여러 나라에 대하여는 ‘힘의 정책’을 고수하여 그들로부터 ‘보복주의자’라고 불렸다. 그러함에도 아데나워는 모든 것을 참고 견뎌준 독일 국민에게 잊지 않고 감사를 돌렸다.
특히 일본은 국토 및 통치기구의 존속과 산업기반시설의 보존된 상태에서 미군정이 경제성장을 주도했고, 통산성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 관료중심의 착실한 경제성장 정책과 더구나 한국전쟁으로 어부지리를 얻는 것처럼 외부상황에 의해 급성장 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노래 ‘상록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위 국가성장의 미명 아래 자신의 꿈과 노동이 볼모가 되었던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 낸 것이지 결코 특정인의 뛰어난 재능이나 지도력이 아니다. 결국 일반 국민의 꿈과 노동이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정치인들과 그들과 주눅이 맞았던 재벌들의 꿈을 이루었지만. (한토마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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