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앞산에서 보내는 특별하지 않은 인간의 평범한 이야기

녹색세상 2009. 6. 25. 16:03

 

 

흔히 개혁이나 변혁을 이야기 하면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리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동네가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 ‘한 칼 하는 인간’들만 모인 거창한 곳이란 편견이 아직도 있기에 결코 무리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별 달린 사람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그들이라고 특별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우리 현실이지요. 세계적인 신학자 안병무 박사는 불후의 명저 ‘역사와 해석’ 서문에 “개혁이나 변혁은 세상을 뒤집거나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라고 아주 쉽게 정리를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와는 조금 견해가 다르긴 하지만 세대차와 ‘상대의 견해를 존중하는 게 나의 생각도 인정받는 것’이기에 토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변혁이란 말을 국립국어대사전에 찾아보니 ‘급격하게 바꾸어 아주 달라지게 함’이라고 되어 있고, 혁명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라고 되어있네요. 이미 1990년대부터 진보진영에서는 혁명이란 말 대신 변혁이란 표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주객관적인 여건이 혁명을 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변혁운동 진영이 인정한 것이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근본적인 변화인 ‘변혁’이 어려운 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변혁적인 의지로 개혁하자는 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거 하느냐”고 걱정해 주는 벗들이 많이 있고, 은사님들 중에도 ‘자네 고생이 많겠다’면서 염려를 많이 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왜 그런 거 하느냐”는 물음에 ‘내가 살고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는 답을 보냅니다. 우리의 노후가 지금처럼 불안하지 않고 우리 자식과 손자손녀들이 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머리 싸매고 고민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정치를 바꾸어야 하기에 진보정당이란 곳에 발을 들여 놓았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수시로 연수도 다니면서 배우는데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곳은 국회의원 1명 밖에 없는 정당이라 많은 서러움을 당합니다. 민주노동당시절 국회의원 10명이 되니 대단한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았는데 원내교섭 단체가 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수 정당을 무시하는 다수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닌 게 우리 정치 현실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알기를 홍어 생식기로 아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때는 서장 귀 싸대기를 때릴 정도로 국회의원 몸  값은 대단했으나 지금은 영 아닙니다. 전경들이 국회의원을 길바닥에 패대기치고, 칠순이 넘은 사제의 목을 비틀면서도 ‘영감 미쳤네’라고 조롱하고 있으니 막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현실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면 ‘못난 조상’이란 소리 말고는 달리 들을 말이 없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견해나 이해관계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과 몸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의 생각이 같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 그렇지만 ‘같이 살자’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들이 양보를 할 때 피 터지지 않고 서로 타협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게 정치요 경제니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요. 직업 정치꾼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놔두지 말고 감시의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청춘을 자동차 만드는 일만 해온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반발해 옥쇄파업을 한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투기 자본에 매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기술유출의 우려가 높다’며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자유치’라는 말로 포장해 매각한 결과입니다. 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닌 국가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손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당시 산자부 장관으로 매각을 주도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책임있는 대책을 내 놓아야 합니다. ‘해고는 살인’이듯이 ‘정리해고는 집단살인’임에 분명합니다. ‘남들처럼 자기 계발은 왜 하지 않았느냐?’고 나무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으면 자식 학원비 조차 벌지 못하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소리 못합니다.


1월 20일 서울 용산에서 무슨 흉악범이나 남파 공작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찰 특수부대를 투입해 사람을 죽여 버렸습니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 가장 많은 민간인 학살로 책임자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엉터리 수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법원의 ‘수사 기록 공개명령’까지 어기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서 100여 평의 식당을 했으니 사장 소리 들으며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고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을 경찰력을 동원해 유족들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정없이 패 죽였습니다. 5개월이 지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으니 유족들의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지요.

 


이런 인면수심을 그냥 넘긴다면 우리 사회는 자꾸 어둠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서울 용산에서 작은 이웃들이 죽었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지 모릅니다. 이처럼 몰상식과 사회안전망이라고는 전무한 사회에 우리 노후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멀쩡히 공부한 우리 자식들이 월급 100만원도 못 받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것을 어느 부모가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우익(右翼)은 새나 비행기의 오른쪽 날개고, 좌익(左翼)은 왼쪽 날개일 뿐이니 서로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극우 골통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우리네 현실이 많은 편견을 만들었습니다.


이미 21세기에 들어선지 10년이 가까워 오는데 좌우익이란 이런 말에 기운 빼는 것은 비생산적인 일이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헌법 제1조에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요. 얼마나 상식 이하의 짓을 해대고 있으면 중학생들 조차 시국선언 대열에 나섰겠습니까? ‘어린 것들이 뭘 아느냐’고 할지 모르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 가능한 세상이니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습니다. 살기 바쁘니 옆으로 눈 돌릴 겨를이 없지만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다음은 내 차례’가 될지 모릅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했으니 그리 어려운 게 아니지요. ‘같이 살자’는 것을 고민하는 게 정치요 경제이니 우리들의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