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아직은 ‘노무현을 평가할 때가 아니라’는 유시민 씨에게

녹색세상 2009. 6. 24. 00:15

 

 

추모의 마음은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 누가 말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개인이 아닌 대통령을 역임한 노무현에 대해 더 이상 기억을 다독거릴 때는 이미 지났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옥쇄파업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쌍용차의 원죄는 노무현 정권 때 ‘기술 유출의 우려가 있는 투기자본에 처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매각을 추진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온갖 정책의 대부분은 새로운 것이 아닌 노무현 정권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손 놓은 채 노동자들이 투항하기만을 기다리면서 노사갈등을 조장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노인들의 파스마저 빼앗았다.’는 비난을 받은 유시민 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할 때 건강보험 체계를 뒤흔드는 본격적인 의료 상업화의 시동을 본격적으로 걸기 시작했습니다. 급등하는 자살 방지 대책하나 제대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국립대학 법인화는 김대중 정권 시절 이해찬 씨가 교육부 장관을 할 때 추진한 교육 균등의 기회마저 빼앗은 대표적인 독소정책 중의 하나입니다. 폭등하는 대학 등록금의 첫 단추를 누가 끼운 장본인입니다. 최근 서울대를 시작으로 국립대법인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2003년 시작된 국립대병원 설치법에 의해 모든 국립대병원이 경영 보장과 효율성이란 그럴듯한 말로 돈 벌이로 치달았습니다. 명색이 국립서울대병원이 건강검진센터나 지어 돈벌이에 혈안이 된 짓을 하도록 만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죠.

 


산재보험 개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 정권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방용석이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으로 있을 때 가장 악랄하게 바꾸었습니다. 법적인 효력이 있는 3차 진료기관의 소견마저 무시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억울하면 재판하라고 합니다. 그게 노무현 정권이 수시로 거품 물며 떠든 진보입니까? 순전히 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몸이 낫지도 않았는데 요양 종결을 시켜 얼마나 많은 산재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들었는지 모른다면 입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충분한 재활 치료를 통해 하루빨리 현업에 복귀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단순한 비용 절감에만 혈안이 되어 병든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 몬 노무현 정권의 실책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는 취임 2년을 갓 넘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기억합니다.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자의 말이고 보면 이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한탄이었을지도 모르나 자신 없으면 국정운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 경찰의 보호 하에 쌍용자동차 공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용역깡패들. 사측이 노동조합과 협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짓이 합법의 탈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 민주당과 노무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에 400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를 전달받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의제’라는 보고서인데 정권 출범 6개월 만에 터져 나온 ‘국민소득 2만 달러론’을 시작으로 ‘동북아 금융허브론’, ‘산업연구단지 조성방안’ 등 담겨있던 내용을 줄줄이 참여정부의 정책으로 발표합니다. ‘삼성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국정이 굴러간다’는 말을 자초한 것이죠. 삼성의 포로 노릇을 자처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도, 또 한미FTA 추진을 통해 신자유주의 기조로 완벽하게 돌아선 것도 어쩌면 다른 선택을 뒷받침할 만한 정책 역량이 준비돼있지 못한 국정 운영 능력의 부재 탓으로 봐야 합니다. 취임 전까지 “미국에 당당하게 대응”하겠다던 노무현은 취임 한 달도 안 돼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 결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그 때 유시민 씨를 비롯한 386의장님 출신 의원 나리들은 이라크 파병을 찬성했지요. ‘국가이익 때문에 파병해야 한다’며 입에 거품을 물던 송영선 국방연구원(현, 친박연대)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슨 국가 이익이 대단하고 챙길 게 많기에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해야 하는가요?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3년 2월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리겠다는 통보를 해옵니다.

 

주식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원-달러 환율도 1,200원을 넘어 치솟기 시작합니다. 불안감을 느낀 노무현 정부는 당시 재경부국장, 국방부정책실장 그리고 반기문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 등을 무디스 본사로 급파해 대미정책의 변화를 약속하며 두 달 뒤로 예정된 노 전 대통령의 방미 때까지 시간을 줄 것을 요청까지 하는 굴욕적인 로비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라크 파병을 선언해 버립니다. 참여정부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미 기간 동안 존 루더펄드 무디스 사장 등과의 간담회에서 “개방, 규제완화,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등을 병행 추진해 나가겠다.”며 경제운용의 4대 원칙을 제시합니다. 이는 참여정부가 두 달 전 신용등급 유지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약속을 지킨 것이자 출범 석 달 만에 스스로 월가를 찾아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천명한 것입니다. 만일 노무현 정부가 무디스의 신용등급 조정 위협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무디스의 신용에 의문을 제기하며 맞서는 게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지난해 전 세계를 뒤흔든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 이후 무디스를 비롯한 미국 신용평가회사의 신용은 곤두박질쳤습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온갖 파생상품에 신용등급을 높여가며 시장에서 팔리도록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2003년 3월 신자유주의가 한창 거품을 만들어내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출범한, 그것도 한 달이 채 안 된 풋내기 정부에게 5년 뒤에 닥칠 금융 위기를 예측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르나 최소한의 대비는 하는 게 국정 운영의 기본 아닌가요?

 

당시 노무현 정부의 수준은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세력의 수준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한미FTA 문제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정부가 무엇이 이익인지 손해인지조차 따질 역량도 없고, 줏대도 없고 애국심도 자존심도 없는 그런 정부는 아닙니다....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닙니다. 먹고사는 문제입니다.”라고 협상 타결 대국민 담화문에서 밝혔습니다.

 


만일 담화문에 담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심을 인정한다 해도 당시 정부에게 필요했던 것은 ‘한미FTA’를 대신할 자극적인 선택을 대신할 그 무엇이었을지 모르나, 그렇게 자존심 강하고 줏대 있는 정부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을 회담장 근처도 못 하게 경찰 병력으로 가로 막은 채 풍찬노숙을 시킵니까? 노동계에서 그렇게도 반대한 비정규직 관련법은 결국 비정규직 양산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적은 월급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지경인데 무슨 내수 시장이 활성화 될리 만무하죠. 이랜드 사태 같은 노사분규에 경찰 병력은 투입시키지 말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세들의 묵인 하에 경찰은 수시로 개입해 노동탄압에 앞장섰습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계엄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 병력을 투입해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감행한 것에 대해 무슨 말로 답할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작전을 세운 국방부 장관은 분명 “군 병력을 투입한 작전은 없다.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해 놓고는 비무장 상태의 국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감행하는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국무총리로 작전 계획서에 서명한 한명숙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명확히 답변해야 합니다. 

 

 

▲ 용역경비들이 도로를 막고 쌍용자동차 공장 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방치하고 있다.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용역경비를 통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민중들의 삶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이래도 전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기억을 다독거려야 하는지 유시민 씨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눈물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이 늘려있습니다. 1월 20일 경찰특수부대 투입으로 억울하게 죽어 차가운 냉동실에 누운 채 장례조차 지내지 못하는 용산철거민들과 유가족들, 사생결단의 각오로 옥쇄파업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하는 게 더 급합니다.

 

제2ㆍ제3의 용산학살의 시한폭탄은 곳곳에 늘려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옥쇄파업 중인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에 이젠 경찰의 보호 하에 용역깡패까지 투입시켜 인터넷 끊어버리고, 음식물과 약 반입까지 차단하는 횡포를 저지를 정도로 악랄한 짓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경찰 현장 지휘관의 상식적인 판단만 있으면 가능한 일도 상부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게 현실입니다. 다 노무현 정권 때 버려 놓은 짓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야 할 경찰이 방치하는 것을 넘어 용역깡패 보호에다 최소한의 인도적인 조치마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고가 살인이듯이 ‘정리해고는 집단살인’임에 분명하니 노동자들이 옥쇄파업으로 투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런 상황인데 아직 ‘노무현에 대한 기억을 다독거리는 것’은 민중들의 처참한 삶에 비하면 사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시민 씨를 비롯한 민주당이 정녕 살려면 이런 곳에 눈을 돌려야 하지만 기대조차 하지 않기에 제발 조용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