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노무현의 죽음으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녹색세상 2009. 5. 26. 22:14
 

추모와 별개로 냉정한 역사적 평가 진행되어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아침 경남 진영 봉하 마을 자택 뒷산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임기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고 전직대통령으로서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다가 검찰 수사로 최근 뉴스의 초점이 되던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온 국민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죽음의 직접적 원인으로 거론되는 수사 압박 관련 책임기관인 검찰과 청와대는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그날 바로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수사 종결을 선언하고 뒤이어 구속 중인 형 건평 씨를 석방했고 부인 권양숙 여사의 소환을 취소했다. 또한 노대통령을 불구속 처리 할 계획이었다는 말도 흘렸다.

 

▲ 조문을 마치고 분향소를 나서는 진보연대 오종렬 고문. ‘노무현은 민중후보’라고 추켜세웠다. 아무리 문상 길의 말이지만 큰 실언을 했다. (사진:프레시안)


정부는 다음날 노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르기로 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빈소를 찾아 직접조문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그들 모두 이 사건으로 인한 후폭풍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결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비리 사건에 대한 정상적인 법적 처리임을 주장하며 원칙을 강조하던 때와 확연히 다르다. 사실상 정치적인 이유에 따른 것임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 된다. 만약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면 피의자의 사망에 따른 통상적인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정치보복이요 표적 수사라고하며 이번 조사의 부당함을 강조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측 지지자들은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함께 청와대, 검찰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다. 빈소에 보내진 이명박 대통령의 화환이 내동댕이쳐지고 빈소를 방문한 김형오 국회의장이 물세례를 받고 쫓겨나야 했다.


일방적 추모 분위기에 역사적, 사실적 평가 가려져


그런데 노대통령의 죽음 전까지 팽팽하거나 검찰 쪽으로 쏠리든 분위기가 그의 죽음 이후로 확 반대편 쪽으로 쏠리는 분위기다. 노대통령의 대통령 재임시절 부터 연일 그를 비판하기 여념이 없던 보수언론도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그의 추모 게시판이 인터넷 판 신문에 오르고 그에 대한 비판 기사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정부 여당을 비롯한 보수 측 인사들도 속내야 어떻든 한결같이 그에 대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고 심지어는 최근까지 독설을 퍼붓든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도 군더더기 부치지 않고 그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한때 그와 각을 세웠던 진보 측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에 관계하는 의원이나 대표들은 물론 각종 언론에 진보적 논평을 써는 논객들도 하나같이 그를 애도하고 그의 업적을 추켜세웠다.


그래서인지 진보적 언론매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민주노동당 인터넷 판에는 얼마 전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둘러싼 저항을 하다가 결국 죽음을 택한 박종태 씨의 영정을 메인화면에서 내려버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적어도 그의 죽음과 관계없이 그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유명 논객으로는 보수논객 조갑제씨와 김동길 씨 외에는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나라가 온통 노사모 판이고 노빠들로 가득한 것 같다. 2004년 탄핵 역풍 때와 같다. 아니 그때 보다 훨씬 노무현 열기가 뜨겁다. 보수 세력도 이렇게 눈치를 살피니 말이다.


인간 노무현이기에 앞서서 정치적인 인물 노무현


그런데 잘 한번 보자. 그의 죽음과 함께 새로운 무엇이 밝혀진 것이 있는가? 말하자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을 확 뒤집을 만한 어떤 자료나 사실이 밝혀진 것이 있느냐 말이다. 그의 죽음 외에 따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적어도 아직까진 아무것도 없다. 사실 보수정치인들이야 특별히 망자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고 망자를 모독하는 것을 매우 부도덕한 것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태도변화를 취하는 것이니 그렇게 나무라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사회적 생명으로 삼고 있는 논객들이 쉽게 태도를 바꾸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진보적 사상과 가치를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해는 하지 말라. 인간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서 애도하는 것을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야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서 정치적 신념 관계를 떠나서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한 인간적 덕목에 속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흉악한 범죄자에게 행해지는 사형조차도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 개인으로 봤을 때는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하며 또 인간적 의리도 대단한 것 같다. 그래서 그와 그런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인 노무현 이전에 정치적인 인물로서의 노무현이다. 그가 차지하는 사회적 비중과 책임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언론매체들을 통해 노무현전 대통령을 추모, 찬양하거나 비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동조를 구하고자 할 때는 그의 정치적 업적이나 행위와 연관 지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부른 검찰의 조사에 대해 정치보복, 표적 수사라는 주장 그리고 뇌물 증여와 관련한 비리라는 주장은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예전 같으면 대통령이 그 정도 받는 것이야 아무런 문제 삼을 것도 없는데, 정치적 이해 때문에 현 정권이 문제 삼은데 대해서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대단히 억울할 것이고 이번 사건에 있어서 그 측면이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또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부정이나 비리도 앞으로 뿌리 뽑아져 없어져야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분명하다.


반민중적 정책으로 민중세력을 탄압한 대통령 노무현


또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아니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그가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행한 업적에 대한 정치적 평가이다. 알다시피 그는 재임기간 내내 심지어는 임기가 끝나고서도 보수적 언론과 시종일관 부딪쳤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진보성과 개혁성을 증명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그가 재임기간 동안 한 것을 큰 틀에서 보면 아마 한나라당이 집권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했다. 이라크 파병, 미군기지 이전 문제, 한미FTA를 비롯한 시장 개방 문제 등 민중들의 생존권과 민족의 자주와 관련된 문제에서 그는 일관되게 반민중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그에 대한 저항과정에서 노동자, 농민 등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몰아내고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들을 상대로 군 특수부대 병력을 투입해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실행한 것은 명백한 위헌 행위요 불법이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고 자신이 없기에 계엄도 아닌데 국민을 상대로 군대를 투입시켜 전쟁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효순, 미선 양의 죽음을 부른 장갑차 사건에 힘입어 당선되었고 말 때문에 보수 세력과 대미 관계를 둘러싸고 무수히 부딪쳤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그 어느 정권보다도 친미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가오는 6월 달에 국회에서 정치적 쟁점이 될 한미FTA도 그가 터를 닦아 놓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껏 유리한 싸움을 벌여 나갈 수 있었다.


비록 이런 그의 정치적 행위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와 관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고 대통령 한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구조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사람을 썩 좋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그의 업적이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에서 권위적 풍토를 없애고 민주적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하면 지역의 역할을 높이고 균형적 발전을 꾀하는 등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예열을 하고 이명박 정부가 그것을 토대로 가속 페달을 밟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은 긍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민중들에게 그 아픔이 크다.


비극을 낳은 구조를 청산해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인권변호사로 용기 있는 개혁적 정치신인으로 그리고 대통령에 까지 올랐다가 진보, 보수 양쪽으로 비판받으면서 제도권에서는 개혁, 진보로 몰리고 현실에서는 어정쩡한 보수에 머물렀다가 결국 보수 세력의 정치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은 그야 말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그러나 이런 비극을 낳게 한 구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어정쩡한 노무현 예찬론으로서는 안 된다.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상임고문은 ‘노무현은 민중후보’라고 추켜세우며 ‘장렬히 산화했지만 다시 우리 품에 돌아 올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극찬까지 한 프레시안의 기사를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사를 가리듯이 개인 노무현과 전직 대통령으로서 민중들의 생존을 억압한 것을 구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문상 중에 한 말이지만 너무 심한 엉터리 진보가 많다. 진보를 떼던지 너무 심하다는 말을 들어 마땅하다고 본다. 개인 노무현의 죽음을 인간적으로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은 별개로 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 노무현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둘러싼 잘못된 구조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이런 비극을 제대로 청산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지배 계급의 분열’일 뿐인 지금의 상황을 너무 미화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본다. 이런다고 ‘차가운 머리만 있는 인간’이라고 욕할지 모르나 남의 말조차 막는 것이야 말로 예의가 아니다. (레디앙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