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용산참사 100일…이젠 짱돌을 들고 이명박 정권과 싸워야 한다.

녹색세상 2009. 4. 30. 13:20
 

“하나님, 일터 지켜달라는 새벽기도 들리지 않았습니까?”


4월 29일 저녁 7시 서울역 광장,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불타죽은 고인들의 영혼들은 극락으로, 천국으로, 천당으로 갔다. 참사 100일째를 맞은 추모제에서 불교ㆍ기독교ㆍ원불교ㆍ천주교 종교인들이 각자의 종교방식으로 추도의식을 열었다. 이 날 추모제에는 800여 명의 시민들이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그러고도 자리가 모자라 서울역 계단에 앉아있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추모제인 만큼 검은색 옷이 눈에 많이 띄었지만, 대열 앞쪽에는 다양한 무채색이 이어졌다. 검은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흰색 옷의 신부들과 원불교 교무들, 연한 남색 옷의 수녀들, 회색 옷의 승려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연도의식을 마친 문정현 신부는 참가자들에게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용산 남일당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문 신부는 건강도 좋지 않은 노구를 이끌고 벌써 한 달째 매일 저녁마다 남일당 앞에서 추모미사를 열고 있다.

 

▲ 용산 철거민 참사 100일째를 맞은 4월 29일 오전 희생자 유족들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사고 현장에서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 앞에 묵념하고 있다. 참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철거현장 뒤로 우뚝 선 주상복합 건물이 보인다. (사진:한겨레신문)


전국목회자 정의평화실천위원회 부의장인 정태효 목사는 추모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새벽기도마다 일터를 지켜달라는 아비의 음성, 죽은 아비의 한을 풀어달라는 딸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습니까?”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냈다. 또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가섭 스님은 “밤이 깊을수록 등불은 밝다”면서 유가족들을 격려했고,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 소속 정상득 교무는 “자본 중심의 세계질서를 벗어나 나눔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형제(고인)들이 가르쳐주셨다”고 강조했다.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유가족들은 내내 고개를 숙이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안에도 이들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가끔씩 울음을 터트리며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는 무대에 올라 다음과 같은 유가족 호소문을 읽었다.


“당신들을 양지 바른 곳에 묻고 잔디로 따뜻하게 덮고 주변에 민들레를 심고 싶습니다.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간절히 호소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거리를 헤맬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저희 남편, 저희 아버지, 저희 할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처를 구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안식을 기도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의 간절함이 여러분의 간절함이기를 호소 드립니다.”


무대에 선 백기완 선생은 추모사를 통해 “이명박 정권은 도덕적으로 역사적으로 인류문화사적으로 죽었지만 우리 동지들은 학살당했어도 살아있다.”면서 “죽은 정권과 살아있는 동지의 관을 바꾸자, 생명 없는 정권을 이제 땅에 묻어주자.”고 외쳤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추모제에 참가했지만,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추모제가 끝난 뒤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선거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국회에서 용산특검법을 통과시키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쉽지 않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격려했다.

 


올해는 유모차 없이 촛불든 가족들


애초 이날 추모제는 서울시청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경찰의 원천봉쇄에 밀려 행사 2시간 전에 급하게 서울역광장으로 장소를 바꿨다. 그러나 추모제는 말 그대로 ‘종교행사’로 평화롭게 치러졌다. 프로그램은 각 종교의 추모의식과 문화공연이 대부분이었고, 광장 앞을 지킨 경찰들과 참가자 사이에 마찰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날 추모제에서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수유동에서 3살ㆍ5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현선도 씨는 “사건 초반에 현장에 잘 못 나와서 100일인 오늘 나왔다”면서 “사람들이 자기 살기에 바빠서 용산참사를 잊고 지내고 언론도 관심을 잘 안 보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늦어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활동 중인 고병권씨도 4살배기 딸과 함께 추모제를 지켜봤다. 그는 “1년 전 여름에는 유모차를 끌고 촛불문화제에 나왔는데, 지금은 아이가 제법 잘 뛰어다닌다.”면서 “딸이 사회 현장을 보고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역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발길을 멈추고 추모제를 지켜봤다. 한 40대 여성은 “나도 기독교인이라서 기도를 하고 가려고 지켜보고 있다, 사건 내용은 정확히 모르지만 사람이 죽었지 않냐,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역 롯데마트에 장을 보러 나온 장아무개 씨 역시 “세입자로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철거민들 마음을 이해한다, 용산 4구역에서 살았다면 용역들이 무서워 도망갔을 것 같다.”면서 “멀리서나마 그들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용산참사가 아닌 학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없기에 우린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가장 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짜 놓은 대로 서둘러 덮어 버리기에 급급했다. 경찰이나 검찰이 알아서 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수사 방향이나 진행이 너무 빨라 분명 윗선이 있다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한 사람을 두들겨 패서 죽인 당사자들은 물론이려니와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고는 결코 고인들을 묻을 수 없다.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서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년처럼 어설프게 경찰의 폭력에 ‘비폭력’을 외치며 밀리지 않고 최소한의 방어를 위한 자구책을 분명 마련해야 한다. 우리들의 투쟁의 수위도 국제화 되어 한층 더 높이지 않으면 또 밀리고 만다.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처럼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권력은 민중들을 얕잡아 볼 것이고 우린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오마이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