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앞산을 지키는 사람들

녹색세상 2009. 4. 30. 01:37
 

‘지금의 남의 땅’ 건설자본이 빼앗아간 앞산의 숲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는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이 남긴 유명한 작품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전 대학에 군인들이 주둔하던 시절 이 시는 불온한 것이라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교정에도 봄은 오는가’라며 숨 졸이며 막걸리 마시다 울분을 터뜨리던 기억이 난다. 대구 성 안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갔다 와 신천변에 있는 교남학교(대륜중고)에서 교편을 잡던 그는 수성들을 지겹도록 밟아야 할 정도로 땅 많은 대지주의 아들이었다. 

 

 ▲ 두류공원에 있는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의 시비, 2.28학생의거 기념비 뒤에 자리 잡고 있다.

 

‘마돈나 나의 침실로’라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보듯, 식민지 땅의 먹물들 처럼 허구한 날 기생집 들락거리다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큰 형님을 만나고 와서 이 시를 발표하고 바로 대구형무소로 잡혀갔다. 그 후 이상화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교남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권투부를 만들어 합법적으로 일본학생들을 두들겨 패도록 했다. 달빛이 곱고 아름다워 예로부터 ‘달빛고운마을’이라고 부른 대구 인근의 청정지역인 달비골에 아름드리나무가 잘려나갔다.

 

이른바 ‘앞산터널’ 공사를 위한 벌목작업이 달비골에서도 시작되었는데 공사현장과 500미터도 안 되어 직접 피해를 받는 인근 주민들이 저지하고 나서자 태영건설은 용역경비라 부르는 용병들이 투입시켜 벌목용 체인톱을 보호하는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졌다. 아마도 벌목용 톱을 경호하기 위해 용역경비를 투입하기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아닌가 싶다. 이 모두가 건설자본의 탐욕과 검은 돈에 눈알이 뒤집힌 권력이 야합해 만든 개망나니 짓거리다. 공사를 하면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들이 서로 만나서 머리를 맞대며 대화를 하는 게 상식이다.

 

공사 시작 전에 미리 설명회도 갖고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지, 어떤 문제를 우려하고 있는지 설명도 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대구시와 태영건설은 이런 상식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대구판 ‘용산철거’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엄청난 환경재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하지만 빚내어 길 내는 대구시는 묵묵부답이다. 달비골을 통과해 반대편 파동 용두골까지 4.5킬로미터 터널을 통과해 파동을 지나 범물동 법니산까지 포함하면 10.5킬로미터로 무려 25리가 넘는 엄청난 공사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멍청한 사람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도심에 이렇게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를 만든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이명박도 서울 도심의 흉물로 전락한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엉터리지만 청계천 복원을 했다. 부산도 곳곳에 남아 있는 고가도로를 대부분 걷어 내었고 나머지도 철거예정인데 유독 대구만 거꾸로 가고 있으니 이런 통탄할 일이 어디 있는가? 전국 광역시 가운데 꼴찌를 기록해 부채가 최고 많은 대구답게 엉뚱한 짓만 계속 해대고 있다.

 

벌목은 끝나고 토공작업이 시작되어 수천년의 세월이 만든 달비골 계곡의 크고 작은 아름다운 바위는 제거 대상이 되어 보존은 커녕 장비로 긁어내기에 정신없다. 벌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달비골 들머리 상수리나무에 의지해 앞산꼭지들의 작은 성을 짓고 한 겨울의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나무 위 농성’을 시작했다. 한 겨울 ‘나무 위 농성’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앞산을 아끼고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 한 자락 보태는 심정으로 온 사람, 몸이 못 가서 미안하다며 정성을 보탠 이름 모르는 이들, 골바람이 센 달비골 ‘나무 위 농성’이 언론의 조명을 받으니 얼굴 팔러 온 뺀질이 등 온갖 사람들이 왔다갔다.

 

 

 ▲ 건설자본에 의해 빼앗긴 앞산달비골은 아름드리나무가 잘려나가고, 조상들의 숨결은 사라지고 마구잡이로 파괴당하고 있다.


벌목 저지 싸움을 할 때 새벽부터 나와 수고한 사람도 있고, 남들 고생하고 난 뒤 눈도장만 찍고 바로 사라진 인간들도 있다. 나무 위에서 있었으니 누가 오갔는지 눈에 선하다. 모두 떠나고 셈에 어두운 앞산꼭지들이 남아서 달비골을 지키고 있다. 아무런 이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이들을 난 ‘멍청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사연은 각자 다르겠지만 앞산을 지키는 것이 남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아끼고 지키는 것임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벌목을 저지하는 와중에 앞산꼭지 6명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를 당해 조사받기도 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검찰공안부로 넘어가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했다고 사회 위험분자처럼 다루는지 모를 일이다. 관할인 달서경찰서 정보과 형사는 수시로 달비골을 드나들며 동태를 염탐하고 있다. 앞산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질 줄 알면서도 자신의 몸을 던진 앞산꼭지들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 적막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이 앞산을 떠날 수 없다. ‘나무 위 농성’을 시작할 때 ‘지는 싸움 왜 하느냐’며 입방아 찧던 무리들이 언론을 타기 시작하자 더 설치며 모든 투쟁은 자신이 하는 양 훈수를 두곤 하는 장면을 기억한다.

 

자기 몸은 던지기 싫고 얼굴은 팔고 싶어 안달이 난 인간들이 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고생하는 사람들 김 빠지지 않도록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련만 그런 부류는 입이 간지러워 가만있지를 못한다. ‘대중으로부터 배우라’는 운동의 기본조차 모르는 반거충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리하던 저리하던 괜찮으니 남아 있는 사람 긁어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많던 사람들 다 가고 없는 지금 남은 것은 각자의 몫을 하기 위한 순박한 이유 때문이다. 부족한 내게도 할 일이 있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거창하게 예수의 표현을 빌리면 ‘내가 져야할 십자가’라 피할 수 없어서이고, 누구 말처럼 ‘아닌 것에 대해 마지막까지 저항’하기 위해서다.


추 가: 교남학교(대륜)는 지금 대봉교 건너 수성구 수성동 신세계아파트가 있는 곳에 있다가 만촌동으로 이사 갔다. 이상화 선생의 시비는 달성공원에 있었으나 지금은 두류공원에 있다.  예전의 대구형무소는 경대사대부고 건너 경대치대 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