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비 내리는 앞산에서 꾸는 발칙한 꿈

녹색세상 2009. 4. 27. 18:41
 

 ▲ 앞산꼭지들의 작은 성인 18미터 높이의 ‘나무 위 농성장’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썰렁했던 겨울과 달리 이미 녹음으로 우거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긴 했으나 가뭄 해갈은 커녕 땅을 적시다 말았다. 강원도는 눈이 내려 차량이 거북이 운행을 할 정도였다는데 같은 한반도 남녘땅에 왜 이리도 불공평한지 모를 일이다. 한심한당의 텃밭인 대구는 정녕 버려진 땅인지 헷갈리기만 한다. 정말 하느님 원망만 떠오른다. 일요일 밤 당번이라 농성장을 지키는데 비가 많이 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농성장 천막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체감 온도까지 떨어져 몸에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전열기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날씨가 풀렸다고 천막 지붕 쪽의 막은 것을 털어 놓았는데 솔솔 새는 찬바람이 제법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비가 그치고 나면 낮 최고 기온이 23~24도 가량 된다고 하니 급격한 기온 차로 감기 걸리기 딱 좋다. 감기 걸려 고생하는 앞산꼭지들도 많은 것 같다.

 

 ▲ 언제나 밝고 활발했던 하외숙 꼭지의 든든한 아들 우현이의 4년 전 모습,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천막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무차별 사격을 해대며 달비골을 향해 쳐 들어오는 소리 같아 아주 귀에 거슬린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장비로 마구 파헤쳐 놓은 달비골은 쳐다보니 속이 상해 있어 그런지 더 그런 것 같다. 우리 사회 곳곳을 파헤치고 파괴하는 배후에는 건설자본이 권력과 끈끈하게 밀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뒷돈을 챙겨 주고 배가 부른 정도가 아니라 고도비만증에 걸려 치료가 힘든 중증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마구 집어 삼키고 있다. 사회가 투명하지 못하니 당연히 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부동산과 전 국토에 길 내는데 돈을 갖다 부으니 국가 성장 동력이 잠식당하지 않을 수 없다.

 

 

입만 열면 떠드는 ‘경제발전’과는 너무 거리 먼 이 헛발질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 갈 길이 없다. 자연을 지키는 것은 내 자신을 지키는 것이지 남을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 들으면 아무 것도 아닌 몇 방울 떨어지는 비 소리지만 아름드리나무가 잘려 나가고 숲이 파헤쳐진 달비골 천막에서 들으니 심장을 마구 치는 것 같다. 비가 오니 차가 덜 다니긴 하지만 바퀴 소리는 더 요란해 달비골을 향해 사정없이 쳐 들어오는 용병들의 소리처럼 들려 오늘 밤 잠자리가 편할지 걱정이다. 이래저래 불면증이 더 괴롭히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보다 적극적으로 장비 앞에 드러눕고 현장 사무실을 점거 하면서까지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는 영국의 대처 정권 시절 환경운동가들이 부럽다. 만약 앞산꼭지들이 그렇게 했더라면 ‘업무방해’에다 손해배상 가압류란 꼼짝달싹 하지 못하는 반갑지 않은 선물만 날아오고 말았을 것이다. 차라리 시원하게 국립호텔 보내준다면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련만...... 수위 높은 투쟁을 한 그들이 부럽고 그런 저항을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네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이래저래 갑갑하고 처량한 밤이 될 것 같다. ‘넌 철들려면 아직 멀었다’는 친구 녀석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정확히 본 것 같아 고맙긴 하지만 내가 철이 들면 망조가 들 것 같아 차라리 안 드는 게 ‘노망난 꼰대’라는 소리 안 듣는 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