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노래 밖에 몰랐던 국립오페라단원들, 이젠 연대 투쟁에 동참

녹색세상 2009. 4. 23. 22:33
 

지난 금요일(17일) 보신각 앞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과 기륭전자 등을 비롯, 비정규 투쟁사업장 공동 문화제가 열렸다. 애초 매주 첫째, 셋째 금요일마다 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오페라합창단 노조가 열었던 촛불음악제를 다른 비정규직 투쟁 단체들과 공동으로 주최하면서 이 날만 보신각 앞으로 옮긴 것이다. 이 자리에는 최근 명지대에서 행정조교로 일하다 집단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원과 학습지노조 등이 참석했다. 기륭전자 투쟁과 이랜드 투쟁 동영상도 상영됐으며, 비정규직 문제에 연대하고 있는 대학 율동패의 공연도 있었다.

 

  ▲ 4월 17일 비정규 투쟁 공동 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전 오페라합창단원들(사진:프레시안)


지난 8일 문광부 앞에서의 결의대회 때에도 무대에 섰던 전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단원 정찬희 씨는 이 날도 거리의 무대에 섰다. 검은 색 정장을 입은 8명의 가수들 사이에 선 여자 가수는 네 명. 정찬희 씨는 그들의 정 가운데에 섰다. 의상도 화려했고 머리와 화장도 공들여 한 모습이었다. 청바지에 노조 조끼를 입고 노래를 불렀던 8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문화제를 연 것이 기쁘다고 했다. “사실 예전에 우리는 노래 부르는 것만 알던 사람이었죠. 막상 해체를 당하고 싸움을 시작하면서야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싸움을 통해 오히려 세상을 알게 되고, 우리의 세계가 넓어진 거죠. 우리보다 훨씬 힘들게 싸우고 계신 분들과 이렇게 함께 하게 돼서 뿌듯합니다.”


최근 오페라합창단은 국립합창단의 연수단원 모집과 관련해 또 한 번 분노를 느껴야 했다. 국립합창단은 지난 4월 14일 공고를 내고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과 관련해 연수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오페라합창단이 문광부와 교섭을 갖기 하루 전이었다. 유인촌 문광부장관은 국립합창단의 연수단원 모집이 오페라합창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오페라합창단 해체 반대에 서명을 해준 국립합창단 나영수 예술감독도 이것은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것이지 오페라합창단 구제책이 아니라고 확인해주었다. 그렇기에 오페라합창단은 당연히 합창단 연수단원 모집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유인촌 장관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이것이 실제로는 오페라합창단원의 구제책인데 오페라합창단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찬희 씨는 문광부 직원들도 “어차피 너희들은 실력이 있으니 너희들이 응시를 한다면 그대로 붙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립오페라단의 이소영 단장과 문광부의 유인촌 장관이 이제껏 이런 식으로 “오페라합창단에게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고용승계를 약속했지만 그들이 모두 거절하고 있다”며 언론을 통한 말 장난을 계속해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국립합창단의 연수단원 모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또 있다. 이것이 오페라합창단원들의 구제책으로 적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연수단원 모집 자체가 장기적인 비전 없이 졸속적으로 비정규직 문화ㆍ예술 노동자를 양산하는 것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 4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대강당에서 민주당 문방위원회 주최로 열린 ‘거리의 프리마돈나 국립오페라 합창단의 희망 음악회’에서 한 단원이 노래를 부르다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연수단원 제도는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모집요강에는 4대 보험이 적용되고 기본급에 공연수당을 지급한다고 쓰였지만 연수단원을 거친 후 정식 단원으로 채용될 가능성은 미지수다. 국립합창단 측에서도 내부적으로 반발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오페라합창단원들더러 응하라고 하는 것은 전문직 경력자에게 신입도 아닌 ‘인턴’을 하라는 얘기와 같다. 오페라합창단원들은 비록 비정규직으로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하고 박봉으로 일해오기는 했지만 정식 단원으로 활동해왔으며, 지금 투쟁중인 노조원들 중엔 경력 7년을 꽉 채운 소위 ‘원년멤버’들이 다수다.


게다가 정찬희 씨의 말에 의하면, 오페라합창단은 매년 말 노래시험이 포함된 근태평가를 통과해야 했고, 실제로 이 과정에서 탈락해 오페라합창단을 그만두어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이소영 단장이 부임한 후에도 그렇게 노래시험과 근태평가를 거쳐 살아남은 단원들이다. 그렇게 7년간, 심지어 현 이소영 단장으로부터도 실력을 인정받았던 이들에게 다시 오디션을 거쳐 다른 국립예술단체의 연수단원이 되라는 것은 현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한다면서 결국 비정규직만 잔뜩 양산하고 있는 것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한다. 결국 문광부는 청년 일자리 나눔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오페라합창단원들은 물론 국립합창단에 연수단원으로라도 응시하고자 했던 다른 이들을 농락한 셈이다.


현재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은 일주일에 세 번 출근투쟁을 계속하는 한편, 매주 수요일엔 문광부 앞에서 집회를 갖고 매월 첫째, 셋째 금요일에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22일 수요일의 경우 문광부 집회 대신 국회 도서관대강당에서 무려 16곡의 레퍼토리로 구성된 희망음악회 무대에 섰다. 정찬희 씨는 그래도 이번 투쟁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게 많다고 했다. “그래도 다른 분들에 비하면 우리 문제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기사들은 물론이고 인터넷의 블로그 같은 델 돌아다니며 글을 읽다가 저희가 오히려 공부를 하곤 해요. 계속 열심히 싸울 거예요. 그리고 다른 분들의 싸움에도 열심히 연대할 거예요. 거리 무대도 좋지만 다시 정식 무대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맞다, 그들의 바람대로 무대에서 노래 부르게 하는 것이 이명박 정권이 입만 열면 떠드는 경제적이다. (프레시안)